‘야한’ 장면을 수업에서 만났을 때

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⑦

두리번 | 기사입력 2023/01/01 [16:15]

‘야한’ 장면을 수업에서 만났을 때

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⑦

두리번 | 입력 : 2023/01/01 [16:15]

[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춘향에게 실망하는 학생들

 

10여 년째 여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학생들의 반응이 가장 급변한 작품을 꼽아보라 한다면 『춘향전』을 들겠다. 그때도 지금도 춘향전은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수록 작품이고, 우리 전통의 풍자와 해학을 배울 수 있는 작품이다. 교과서에 싣는 데에는 반대 의견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정전이다.

 

10년 전, 한 학급에 대여섯 명은 꼭 ‘춘향에게 충격 받았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어린 나이의 춘향이 결혼도 하지 않고 몽룡과 밤을 보내는 모습에 충격받았고, 실망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춘향이 몽룡과 보낸 밤은 양가 어른을 모신 식을 올리지 않았다뿐이지, 혼인에 준하는 것이었다. 몽룡이 백년가약을 제안했고, 춘향의 엄마 월매가 의심 끝에 결국은 이를 허락하였고, 사위 맞이 특별 상차림이 거하게 나오고 난 후에 첫날 밤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백년가약을 맺는 시기로서도 이팔청춘은 당대에는 이른 나이도 아니다.

 

작품 속 춘향은 이렇게 조선 후기의 성 관념에 비추어 보아도 주인공으로서의 지위에 ‘손색 없는’, ‘죄 없는’ 존재로 변명을 모두 갖추고 첫날 밤에 임하고 있음에도, 21세기에 대한민국 교실에서 꼭 일부 학생들은 자신과 동년배의 춘향이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에 질려 버린 나머지, 작품 초반부의 첫날밤 장면에 압도되어 뒷부분의 수많은 감상 포인트도 놓친 채, 춘향에게 실망했다는 감상을 적어 내곤 했다. 요즘 말로 ‘엄근진’(엄격+근엄+진지) 학생들이 아닐 수 없었다.

 

▲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작가 미상, 전국국어교사모임 기획, 유현성 그림, 휴머니스트) 표지 이미지


겹쳐서 쓰러진 점순이와 ‘나’가 불편해

 

한편,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에서 만난 중학교 선생님들은 수업 중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장면으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의 마지막 장면을 꼽았다.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 담부턴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 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인젠 안 그럴 테야.”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겹쳐서 쓰러지며’가 성적 행동이라는 것을 알 만한 나이가 된 중학생들은,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우~!’ 하는 야유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거나, 아니면 아예 침묵한다. 전자는 친구들 앞에서 ‘센 척’하며 어색해지지 않게 부러 강한 표현을 하는 것일 테고, 후자는 친구들 앞에서 성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데에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둘 중 어느 쪽이든, 해당 부분이 성 행동임을 아는 순간, 학생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불편해진 것이다.

 

▲ 중학교 선생님들은 수업 중 ‘갑분싸’ 장면으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마지막 장면을 꼽았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동백꽃』(전국국어교사모임 지음, 영민 그림, 휴머니스트) 표지.

 

‘성’에 따라붙는 금기, 규범, 거리낌

 

성은 가부장 사회의 윤리 의식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핵심 규범이다. 연애에서 결혼으로, 결혼에서 출산으로 이어지는 가부장적 가족관계 안에서의 성은 한 인간의 통과의례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 안에서 특히 남성에게는 성 행동이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성취해야 할 하나의 성장 과정으로 권장된다. 하지만 그 규범을 벗어난 성 -이를테면 여성의 혼외(혼전) 성 경험, 동성애 관계에서의 성, 청소년들의 성-은 일탈로 여겨지고, 정상이 아닌 것으로 배제된다.

 

수많은 문학 작품이 이와 같은 가부장적 성 규범을 상징으로 삼아, 또 그 규범 자체를 주제 의식으로 삼아 창작되었다. 돈을 대가로 자신의 성을 내어준 복녀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결말은 ‘윤락’을 벌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김동인의 『감자』), 계모 허 씨가 배 좌수의 두 딸을 몰아내기 위해 장화가 혼인하지 않은 몸으로 임신을 했다고 거짓을 꾸며내고, 결국 의붓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에선(『장화홍련전』) 당대의 성 규범이 무고한 여인들까지도 위협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벌 받지 않는 성도 많다. 김훈의 『화장』에서 젊은 여성을 보고 느끼는 중년 남성의 성 욕구는 혼외의 것이고 연령 차이가 큰 일탈적 욕구임에도, 음흉한 욕망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인생의 뒤안길에 접어드는 쓸쓸한 중년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순원의 『19세』에서 옆집 누나를 보고 일상적으로 자위 행위를 즐기는 청소년의 모습은 시종일관 귀엽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는데, 남성의 성이 적극적으로 탐색해고 경험해야 할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으로 그려진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이 같은 행동을 할 때, 또는 그 행동의 주체가 트랜스젠더 청소년일 때, 동성애 관계일 때... 그 작품은 이미 설정과 시도 자체만으로도 사회 규범에 대한 도전이 된다. 성을 즐길 수 있는 사람과 방법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바람직한 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해보고 알아보고자 하는 대화는, 그러한 규범을 의심하고 넘나드는 것이기에 공론장에서 다루어지기 꺼려진다. 성을 가르치는 곳에서조차, 성의 위험성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며 성의 즐거움에 관한 대화는 금기시된다.

 

폭력적인 성과 행복한 성

 

성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들을 포괄하기에, 조심스러운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어찌보면 그런 지극히 개인적인 성을, 단지 동일한 연령이라는 이유로 수십 명이 함께 생활하는 교실에서 교육한다는 것 자체로 어떤 학생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성교육이란 한 걸음 한 걸음, 돌다리 두드리듯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의 성교육은 돌다리 두드리기 귀찮아 무성의하게 허공에 쏟아내는 모양새다. 많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자신의 몸에서 생리혈이 나오는 부위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 12년간 매년 일정 시간 이상 성교육이 의무인데,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한 기초적 성 지식도 얻지 못한다. 오직 성을 경험해서도, 알고자 해서도 안 된다는 사회적 메시지, 성을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로 삼기보다는 자기 과시 도구로 사용하거나 아예 금기시하는 법만을 배우게 되는 학교 교육. 이런 암묵적 규범 때문에 올바른 지식과 정보의 유통은 꽉 막혀 있다.

 

때문에 문학 작품 속에 있는 성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고 교사들도 다루기 까다롭다고 여긴다. 괜히 잘못 다루었다가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지나 않을까, 몸을 사린다.

 

하지만, 춘향전의 첫날 밤 장면이 즐겁고 행복한 장면이라는 것은 바뀔 수가 없는 진실이다. 이팔청춘 둘이 만나 ‘업고 놀자’고 노래하고, 서로를 보고, 만지고, 즐거워하는 에너지 넘치는 장면이다.

 

10년이 흐른 지금, 교실의 학생들과 춘향전을 읽고 감상문을 받으면, 이제는 대다수가 춘향에게 다른 이유로 실망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작품 중반의 이몽룡의 모습이 부모에게 휘둘려 춘향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춘향에게는 좋은 상대방을 고르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변 사또에게도 맞섰던 그런 멋진 춘향이 자기 인생을 개척하지 못하고 이몽룡과 결국 결혼한다는 결말 때문이다. 당대로서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으로 저항적 의미를 담아냈지만, 오늘날의 눈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크다는, 학생들의 날카로운 감상에 종종 나도 동조한다.

 

춘향전에서 변 사또는 권력을 무기로 춘향의 성적 결정권을 박탈하려 하고, 운영전에서 안평대군은 궁녀들의 성적 권리를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통제한다. 오늘날에도 권력을 휘두르는 도구로 약자의 성을 통제하고 괴롭히는 변 사또들은 건재하다. 불편하게 여기고 거부해야 할 모습은 바로 이런 폭력이다.

 

성교육 내용 중 빠지지 말아야 할 관점은, 뚜렷한 차이가 나는 권력 관계 아래에서 행복하고 평등한 놀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놀이가 될 수 있는 평등하고 행복한 것이 성 경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행복으로, 폭력은 폭력으로 해석할 줄 아는 눈은 성을 넘어서 인간관계에서도 정말 중요한 관점이니, 교사들은 작품에서 성이 언급될 때 폭력이 되는 성인지 행복한 성인지 구분하는 법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며 수업을 풀어가면 어떨까. 첫날밤 춘향의 마음, 동백꽃 속에 파묻힌 ‘나’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연습을 하며 말이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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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오 2023/01/05 [20:33] 수정 | 삭제
  • 춘향전 판소리 버전으로 듣고 그 매력에 푹 빠졌는데... 학교에선 엄근진 분위기 요즘도 없진 않을 거 같아요.
  • 2023/01/03 [16:00] 수정 | 삭제
  • 수업 이야기 너무 재밌어요. 요즘 여학생들이 다르긴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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