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세력’ 취급받는 대학 페미니스트 A로부터

대학 내 성폭력 담론을 다시 묻다② 인하대는 지금

익명의 학생 A | 기사입력 2023/02/05 [11:00]

‘외부세력’ 취급받는 대학 페미니스트 A로부터

대학 내 성폭력 담론을 다시 묻다② 인하대는 지금

익명의 학생 A | 입력 : 2023/02/05 [11:00]

최근 몇 년간 대학 내에선 학내 청소노동자 문제를 두고 우려스러운 상황들이 여럿 연출됐다.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을 때마다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vs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라는 대립 구도가 형성되어, 사실을 호도하는 상황이 재현되곤 했다.

 

여자대학교 학생과 ‘외부’ 노조의 대립?

 

최근 덕성여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두고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일부 학생들에 의해 ‘노동자 OUT’이란 내용의 대자보가 붙고,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하고 파업에 나선 청소노동자를 향해 과도한 요구를 한다느니, 총장님을 폄하하지 말라느니, 학습권을 침해한다느니 하는 말이 대학 커뮤니티에 떠돌았다. 불합리한 하청 고용 구조를 외면하고, 총장과 학교 담화문 말만 믿고 “학교는 고용 주체가 아니니 책임이 없다”는 식의 낭설도 떠돌았다.

 

여학생이 주인인 덕성여대에서 마치 학생 페미니스트와 외부 노조(남성)가 대립하는 듯한 상황들도 연출되었다. 단적인 예로,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덕성여대 동문이 한 말을 두고, ‘외부 노조 남성’이 한 말로 둔갑하여 회자되기도 했다. ‘여대 특성상 생리대가 많이 나오고, 또 대학생들이 커피를 많이 마셔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나와 노동 강도가 높은 측면이 있다’고 말한 내용을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시위 과정에서 여성 혐오, 차별 발언을 했으니 학생들은 노동자와 연대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낭설,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리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리고 여기에 연대하는 학생들에게 씌워진 편견은 부당한 측면이 많았다. 이러한 여파로 학교 측이 교섭에 보다 불성실하게 임해서, 하루만으로도 벅찬 파업 투쟁을 몇 달째 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글에선 무엇보다 논의의 ‘구도’에 주목하고 싶다. 적지 않은 수의 덕성여대 학생들이 ‘여대만의 특수성’을 이야기하며, ‘외부업체 소속’인 노동자들이 ‘외부’의 노동조합 사람들을 끌고 와 ‘여대를 침범하여 안전을 해치고, 대학입시결과 등으로 민감한 상황에서 학교의 명예를 폄하’했다고 주장했다.

 

여대라는 장소에 대해 남성들이 벌였던 여성혐오적 가해 장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대학생’과 ‘외부인’을 나누는 구도는 대학 페미니즘 운동에 득보다 실이 크지 않을지 나는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지금 인하대학교에 서 있는 페미니스트로서 그렇다. 그러한 구도가 인하대에선 대학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소거하는 데 쓰이고, 더 나아가 성폭력 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데도 쓰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인하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여집합’은 2022년 9월 15일 인천시청 앞에서 열린 인천여성연대 주관 ‘차별 빼고 평등 더하기 성평등 문화확산 캠페인’에 참여했다. (출처: 인스타 @inhamoksori)

 

인하대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외부인들?

 

나는 인하대에서 나타난 몇몇 정서가 덕성여대에서 나타난 정서와 유사한 대목이 적지 않다고 봤다.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인하대 같이 극악무도한 여성혐오적 폭력이 벌어진 곳의 정서와 여대의 정서를 비교할 수 있냐고 말할 수 있다.

 

인하대는 ‘부실대’ 사태로 인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경험이 있다. 정확히는 일반재정지원대학 선정에 탈락한 일 말이다. 학생들은 꽤 상처를 받았다. 인천이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입결(대학입시 결과)이 하락하고 저평가받는다는 열등감이 평소에도 자글거리던 학교였다. 부실대 사태로 인하대는 명예와 입결 등에 극도로 민감해졌다. 그래서 코로나19 와중에도 학생들은 ‘과잠’(학과 잠바) 시위까지 하며, “어떻게 이승만 박사님이 세운 명문사학을 부실대로 지정하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승만 동상을 때려 부순 학교에서 이승만이 다시 소환될 만큼 절절했던 호소, 그리고 여러 노력 덕에 인하대는 최근 ‘부실대’에서 벗어나게 됐다.

 

당시 논의 구도를 보면, 재단의 방만한 운영 등 다양한 문제점이 ‘인천 차별’, ‘명문사학’ 따위 구호 아래 뭉개졌다. 학생들은 ‘외부의 개입 없는 학생들만의 순수한 시위’ 따위를 강조하며 오직 인하대만의 구제를 말할 뿐이었다. 즉 우리만의 명예와 입결만 내세우며 내부집단과 외부집단을 가른 것이다.

 

이런 구도는 성폭력 사태 이후 더 굳어졌다. ‘안 그래도 시끄럽고 일 많은 학교에서, 입결 떨어지니 갈등을 일으키지 말자’는 엄단이 성폭력과 불평등한 문화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이기 전에나 후에나 억척스럽게 쏟아졌다. 마찬가지로, 덕성여대를 비롯한 여대의 주류 정서 또한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학내 노동자와 학교 당국, 그리고 학생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한 비판적 물음 없이 ‘여대라서 명예, 입결과 인식이 저평가된다’는 점에 천착하는듯싶어 우려스럽다.

 

인하대학교는 비판을 무마하고, 외부를 적대시하는 데에 ‘안전’ 키워드를 동원했다. 사건 이후 인하대는 총장 선출을 진행했는데 부실대 사건, 학내 성폭력 사건에 책임이 있는-그래서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던 조명우 총장이 다시 출마를 강행해 논란이 됐다. 교수회, 총동문회는 당연히 이에 반발했고 후보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그런 와중 선출직이 아닌 ‘수석국장 직무대행’ 한 명만으로 운영되는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여론 수렴도 없이 ‘학생질의서’를 조 총장에게 발송했다. 민주적 원칙을 훼손한 질의서였다. 내용도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질의서 ‘안전’ 파트에서 총학 비대위는 ‘개방형 캠퍼스’ 운영이 외부인을 출입을 허용해 분란을 일으켜 안전 문제가 벌어진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대학 내부의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문화를 돌아보자는 언급도 없이, 문제의 초점을 외부인으로 돌린 셈이다. 총장도 야간 출입을 통제하고 CCTV 및 치안설비 강화, ‘학생자율순찰대’를 강화하는 수준의 답변을 내놨을 뿐이다.

 

▲ 2022년 7월 15일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10일이 지난 25일, 인하대 내 게시판에 “당신의 목소리를 키워 응답해주세요” 대자보를 붙였다.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한 페미니즘 담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출처: 인하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여집합’)

 

‘외부 여성단체, 여초 커뮤니티, 빨갱이들’이 벌인 공작?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은 여러 차례 나타난 학내 성폭력 등 불평등한 문화를 제때 시정하지 못해 벌어진 ‘내부’의 문제다. 또, 사건 이전까지 야간 경비인력을 학교 측이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을 맡기고, 인원도 대폭 축소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비대위는 문제의 초점을 ‘개방형 캠퍼스’와 ‘외부인의 출입 문제’로 잡았다. 심지어 개방형 캠퍼스 정책은 인하대가 인천 지역사회와 인천시의 지원을 받는 것을 담보로 시행한 것이었다. 대학이 지역사회에 가져야 할 사회적 역할을 포기하는 건 물론, 안전 문제의 원흉을 지역사회로 돌리는 파렴치가 아닌가.

 

이후 학내 커뮤니티와 〈인하대신문〉도 사건의 초점을 ‘외부인 출입 문제’로 끌고 갔다. “본교에서 일어난 ‘재학생 사망 사건’ 이후 안전한 캠퍼스를 만들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면서 “그간 본교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개방된 캠퍼스’로 평가받아 왔으나, 잦은 외부인 출입으로 인해 구성원의 치안 문제가 증가해왔다”고 진단했다.

 

반면, 학내에 게시한 대자보, 여성주의 동아리의 액션 뿐만 아니라 학내 커뮤니티에서 발언하는 여성, 페미니스트 학우들의 목소리는 “외부 여성단체, 여초 커뮤니티, 빨갱이들이 아이디 사서 벌인 집단적인 공작”이란 소리를 들으며 차단됐다. 심지어 가해자에 대한 선처 탄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학내 동아리 ‘여집합’이 가해자 엄벌 탄원 연서명을 모으자 ‘외부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건을 이용’한다며 공격을 일삼는 이들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덕성여대의 경우 총장 담화문에서, 학교 측이 직접 나서야 해결될 수 있는 이번 청소노동자 파업의 본질을 호도한 채 ‘노동자들은 외부 업체 소속이니 근본적으로 이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며 선을 긋고, 더 나아가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사실상 평온을 해치는 외부인 취급을 했다. 이에 화답하듯 많은 학생이 ‘총장님’과 학교를 폄하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인하대의 사례를 보더라도, 대학 내 성폭력을 비롯한 공동체적 문제가 터졌을 때 모든 원흉을 가상의 외부로 돌리고, 또 외부라 여겨지는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파장을 가져오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를 볼 때 ‘순수한 구성원만의 문제 해결’ 방식, 또 외부를 위험한 적으로만 보며 경계하는 방식은 사실상 내부의 부실함과 문제점을 감추는 데 사용될 뿐이었다.

 

내부와 외부 나누는 폐쇄적 대학문화 넘어서야

 

인하대에 서있는 페미니스트로서 ‘우리 대학의 명예’란 사실 남성과 자본을 위한 명예라는 점을 폭로하는 페미니즘, 대학의 기득권적 경계를 해체하고 대학은 사회와 연결된 곳이란 점을 강조하는 페미니즘, 사회와 연결된 존재로서 대학생의 책임을 물으며 대학을 여성, 노동자,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주는 페미니즘. 그런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봤다.

 

페미니즘 동아리 ‘여집합’은 그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자보를 썼다. ‘그들만의 명예’를 위해 외부와 내부를 칼처럼 나누는 상황에 맞서, 학생이 아닌 시민, 노동자를 오히려 평등과 안전의 운명을 공유하는 연대의 대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우린 성폭력 문제를 비정규직 노동자, 또 학교 바깥의 여성 시민의 문제로 확장하고자 노력했다.

 

우리는 학내 안전관리 노동자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인하대가 인천 관내 대학 중 임금 및 처우 측면에서 제일 열악했고, 이로 인해 안전사고가 계속 벌어져 왔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제 외부로 불렸던 ‘저들’과 연대해야만, 학교와 사회를 보다 평등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거라 믿으며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남이라도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덕성여대를 비롯해서 꾸준히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될 대학 페미니스트들에게 인하대 페미니스트로서 제안하고 싶다. 서로의 공통점만큼이나 차이를 보는 일을 겪더라도, 학생과 노동자, 시민이 서로 갈라치기 하는 것이 아닌 모두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학교를 위한 연대로 나아가자고. 페미니스트로서의 용기와 연대는 우리가 공유하는 것만큼이나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고, 심지어는 그로 인한 다툼 속에서도 치열하게 서로 다른 우리가 어디서 함께할 수 있는지 꾸준히 묻고 답하는 과정 속에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의 응답이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연대의 손길을 보내주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는 것으로, 인하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이 평등하고 안전한 곳이 되도록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으로 돌아올 수 있길 바란다. 그 미래를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활동해보려 한다.

 

[필자소개] 대학이 학생과 노동자, 시민 모두에게 평등하고 안전한 열린 공간이 되길 바라는 인하대학교 학생입니다. 작년 7월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 당시 페미니스트 학우들과 함께 “당신의 목소리를 키워 응답해주세요”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작성했습니다.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등 우리 사회 비주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 운동을 지향하는 인하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여집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blog.naver.com/yeo_zipop. 트위터/인스타 @inhamoksori)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