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과 반려묘와 나 ‘우리는 가족입니다’

차별 없는 가족구성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해파리 | 기사입력 2023/02/20 [21:47]

동거인과 반려묘와 나 ‘우리는 가족입니다’

차별 없는 가족구성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해파리 | 입력 : 2023/02/20 [21:47]

-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10월 25일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임시로 같이 사는 친구가 아니라 ‘가족’입니다

 

저는 4년째 동거인과 고양이 율목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겪게 되는 된 차별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은 정부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하는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요. 신혼부부가 아닌 그냥 ‘청년’이 이렇게 방 한 칸이 아닌,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집에 처음 이사오면서, 저는 동거인의 세대원으로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관리사무소에 문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법적 배우자이거나 직계존비속까지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저의 법적 가족은 우리 세 식구에 대해 임시로 주거를 함께할 뿐이라고 여기지,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어요. 언젠가 제가 결혼해서 ‘정상가족’을 이루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습니다. 얼마 전 남동생의 결혼식이 있어 동거인과 함께 참석했지만, 다들 제 동거인을 가족이라기보다 ‘함께 사는 친구’로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와 같은 ‘비정상 가족’도 가족으로 인정받고, 서로를 편안하게 가족으로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2018년부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율목이와 식물들. 동거인과 함께 서로와 율목이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 ©해파리


우리 세 가족 구성원 중에서 가장 귀여운 율목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율목이는 길고양이로 힘들게 살아와서 아픈 곳이 많았어요. 고양이인 율목이는 법적으로 가족은커녕 보호자의 재산, ‘물건’이기 때문에 의료보험 적용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매번 부담되는 액수의 병원비와 약값을 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가족이 아픈 걸 모른 척할 수 없기에 율목이가 건강해지기만 바라면서 병원에 다녔습니다.

 

이런 돌봄으로 율목이가 건강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더 애틋함을 느끼면서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픈 율목이를 돌보는 것을 ‘시답지 않은 것’으로 혹은 유난스러운 것으로 보는 시선도 많습니다. 가족을 돌보는 게 그렇게 유난스러운 일은 아니지 않나요?

 

제가 만약 죽게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기도 했어요. 제 동거인은 유족으로서 추모의 과정에 함께하기 어려울 겁니다. 법적인 가족도 아닌 이의 장례식 때문에 동거인의 직장에서 긴 휴가를 주지는 않을 테니까요. 제 재미없는 농담도, 짜증도, 푸념도 들어주면서 같이 밥 해 먹고 일상을 함께 보내는 동거인이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족’이라면, 이런 걱정까지는 하지 않았겠죠.

 

아직까지는 다행히 저와 동거인 중 누구도 응급실에 가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만일의 위급한 상황에서 서로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것도 걱정스럽습니다. 최근에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때는 법적 가족이 아니어도 약을 타다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라도 아플 때 잘 돌보고 돌봄 받기 위해선 법적, 사회적 가족의 상(相)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가 약화되고 서로를 돌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법적 가족이라는 틀을 넘어 서로를 돌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이득이 아닌가요? 정부가 나서서 방해는 말아야 하지 않나요? 우리처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이루면서 사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배제당하는 일 없이, 모든 시민들이 권리로서 가족을 꾸리고 행복하게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가정기본법이 어서 개정되면 좋겠습니다.

 

차별 없는 가족구성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도 열심히 일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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