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소개] 김고은. 공부하는 인터뷰어.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20대를 꼬박 보냈다.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동양고전을 공부하며, 일상에서 사람들에게 배운다는 게 뭔지 알게 됐다. 거기에 우리가 나눠야 할 무언가가, 우리를 연결시켜 줄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공동체와 책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서 생산해보고자 30대는 인터뷰어로 살고 있다. 공부의 끈을 여전히 놓지 않은 채 동양고전 공부와 인터뷰 활동을 동시에 이어나가는 중이다. 『어쩌다 유교걸』(2023), 『함께 살 수 있을까』(2023)를 썼고, 『다른 이십대의 탄생』(2019)과 『낭송 사자소학』(2018)을 함께 썼다.
“페미니즘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데,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밝히기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최근에 ‘저자와의 만남’에 초대받아 다녀온 대안고등학교에서, 학생으로부터 받았던 질문이다. 내가 쓴 책 『어쩌다 유교걸』의 부제 ‘페미니스트의 동양고전 덕질기’를 보고 한 말일 테다.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른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0년 전, 대학에서 처음 페미니즘을 접하고 별세계에 눈을 뜬 것처럼 희열을 느꼈고, 가부장제에 반기를 들겠다고 주위에 선언하고 다녔음에도 말이다.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만나고 3년 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 일로 평생 페미니즘을 싫어할 것처럼 굴었던 나의 여성 친구들까지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내게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늘어난 건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마치 세상이 둘로 쪼개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를 가나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밝힐 것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편인지 아닌지 검증하지 않는 곳은 동창회가 유일했다. 하룻저녁 만나 옛 추억을 회상하고 싶은 이들만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물론 세상이 둘로 쪼개진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전투 의지를 불태우며 싸움을 축제로 만드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분노를 에너지원으로 쓸 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페미니즘의 불길이 일었을 때 속수무책으로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게 질문해 주었던 친구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을 때만 어설프게나마 웃으며 대면할 수 있는 시간, 정체를 밝히면 밝히는 대로 어색하고 밝히지 않으면 그런대로 이상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질문을 받은 현장에서 나는 시간 문제상 “어쩔 수 없었다”고 짧게 대답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며칠 내내 저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혼맹’의 위험과 ‘또 다른 자기’들
페미니스트라고 확언한 시간보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던 시간이 더 길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게 된 건, 『숲은 생각한다』라는 인류학 책을 읽고 나서였다. 아마존에서 4년간 생활했던 저자 에두아르도 콘이 아마존에 살고 있는 루나족이 어떻게 숲을 만나는지를 담아낸 낸 책이다.
그런데 만일 눈을 마주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엎드려서 자면 재규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으므로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태에 빠지는 것을 ‘혼맹’이라고 부르는데 혼을 인지하는 능력이 쇠퇴한 상태, 즉 관계를 알아차릴 수 없는 무능력의 상태를 의미한다. 만일 ‘또 다른 자기’들을 인식할 수 없다면, 그러니까 누군가를 알아차릴 수 없어서 관계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면,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히 눈이 멀게 된다.
이 책을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함께 읽은 뒤 에세이를 발표하던 날, 10년간 지낸 공동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면서 내 에세이를 낭독했다. 그간 마음이 묻어두고 있었던, 세상을 먼저 등진 친구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나는 ‘자살’이 너무 황폐한 단어라고 느끼고 있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사회적으로 자살을 비극적인 개인의 선택이라고 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를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이 책을 따라 친구의 죽음을 ‘혼맹’으로 부름으로써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게 됐다.
혼맹은 이 세계에 실존하는 위험이다. ‘또 다른 자기’들의 생태학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은 죽음을 부를 수 있다. 누구나 혼을 통해서, 그러니까 관계 맺기를 통해서 삶을 가꾸어간다면 거꾸로 그로 인해서 죽을 수도 있다. 내 친구의 죽음은 단지 한 개인의 비극적인 서사라고만 부를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내재해 있는 것이 그의 삶 역시 위태롭게 한 것이다. 그의 죽음이 혼맹이라면, 그가 죽은 것처럼 다른 누구도 죽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 생각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일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내 주변 여자 친구들이 내게 자신들이 어딘가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섭식장애와 같은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 연예인들이 스러지듯이 죽어 나갔다. 자살 시도를 한 여성 청소년들의 기사가 올라왔다. 이 사회에서 혼맹은 너무 흔한 일이 되었다. 내 친구가 죽은 것처럼, 누구라도 그렇게 죽음 가까이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페미니스트가 받는 시선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분투가 힘겹게 느껴진다. 최근에 ‘2030 남성 그룹’ 유권자가 ‘코어 보수 그룹’ 유권자보다도 젠더 문제와 차별금지법 이슈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기사를 봤다. 내가 어떤 이들과 함께 살아나가야 하는지, 막막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건, 정말이지 별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든 기도할 일이 생기면 나는 ‘누구든 덜 아프고 덜 죽게 해주세요’ 하고 빈다. 그러나 만년 기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 중 하나다. 그럼으로써 나의 ‘또 다른 자기’, 그러니까 가까운 친구들부터 이름모를 어떤 여성들까지 그 옆에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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