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에는 한국에서 ‘여성파업’이 예고되었다. 30여개 여성/노동/사회단체들이 2024년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를 결성해 유급/무급 여성노동 실태와 ‘구조적 성차별’을 알리며 여성파업을 준비 중이다. 여성파업을 반기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편집자 주
비수도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지연(가명) 님은 자취를 시작했다. 주위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생활비와 대출 이자, 관리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보습학원 파트타임 강사로 일했다. 초등학생부터 재수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며,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일지를 작성하는 일도 함께했다.
“수업은 학생과 1대 1로 진행을 많이 했어요. 제 교실도 따로 배정되었고, 그 교실에 학원 학생이 1명에서 3명 정도 시간대별로 들어왔어요. 학생이 들어오면 수업하고, 문제를 풀라고도 해요. 한 달 치 강의 계획서도 썼고요. 학생들 수준을 보고 교재 선정을 해줬고, 시험지도 제가 따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월초나 월말이 되면 학생들 일지를 다 써줬어요. 일지 같은 경우 ‘학생 수준이 어떻다’든지, ‘지난달에 비해 이만큼 성장했다’든지,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 등 학부모한테 보여드리기 위한 내용으로 써줘요.”
지연 님은 학업, 가사노동과 병행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선호했다. 최근 일한 학원에서는 화요일과 목요일, 하루 3시간씩 일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 출퇴근 시간, 대기시간, 수업 준비 시간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단은 학교 시간표를 고려해야 했죠. 학교 수업이 적은 날에 출근할 수 있는, 그런 게 이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메리트였던 것 같아요. 그다음에 시간이 짧은 거? 그래야 다른 일과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니까요. 특히 저는 1인 가구고, 자취하고 있어서 집안일을 하는 시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소정 노동시간이 짧다.’라는 건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주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노동자의 경우, 주휴일, 연차, 퇴직금, 건강보험과 국민연금보험 직장 가입 예외가 된다. 지금 다니는 학원을 포함해 여러 학원에서 초단시간 노동자로 일했던 지연 님 역시 4대보험이나 연차, 주휴수당 무엇도, 어디에서도 제공받지 못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
얼마 전, “일주일 후부터 나오지 마세요.”라며 예고 없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언제까지 계속 일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초단시간 노동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춰 노동시간 등을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는 무색해진다. 임금에 대한 협상도 마찬가지다.
“모집 공고에 기재되어 있던 시급은 15,000원이었어요. 그런데 들어가서 면접을 볼 때 말씀하기를 4주간의 수습 때는 11,000원, 그 이후에 학생 수에 따라 13,000원에서 시작하고, 일정 수가 넘어가면 1명당 1,000원씩 올려 최대 15,000원을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실질적으론 13,000원 정도 받았어요. 성과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는데, 구두로 ‘시급 올려드릴게요.’라고 들었던 거 같아요.”
몇 년 전, 다른 학원에서 일할 때는 더욱 부당한 이야기도 들었다.
“원장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 ‘아무래도 알바를 뽑을 때 용모를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여자 선생들은 좀 용모를 많이 보게 된다.’라는 식으로 흘리듯이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게 몇 년 된 이야기지만, 저는 계속 학원 일을 하는 걸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지 계속 그 말이 따라다니는 것 같아요.”
20대 초반의 지연 님은 스스로를 사회초년생,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주들은 지연 님을 ‘자기가 요구하면 일단 따라야 하는 여학생’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여겨도 된다는 법적, 사회적 인식이 근로계약서 작성을 포함해 일터와 삶터에서의 시간표 전반에 작동하고 있었고, “그건 힘들 거 같아요.”라는 목소리가 나올 틈을 차단했다.
“원장 선생님들도 저한테 잘해주셨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저를 노동자보다는 학생으로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그게 은연중에 계속 묻어나기도 하고. 계약서를 쓸 때도 저에게 ‘이렇게 할 건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라고 묻기보다는 그냥 냅다 ‘사인하세요.’ 이렇게 많이 말할 때도 있었고요. ‘변동이 있을 수도 있는데 거기에 네가 맞춰라.’라고도 말씀하셨고.”
원장이 말하는 ‘변동’ 사항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
“요일이나 시간 같은 거요. ‘그런 변동이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네가 알아서 잘 조절해.’라고 많이 말씀하셨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데의 경우, 오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라고 공고에는 나와 있었는데 ‘5시부터 시작하거나 10시에 끝날 수 있다, 근무 도중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항상 그걸 염두하고 일을 해달라.’라고 했죠. 그렇게 했고요, 저도. 거기서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점,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아프면 쉴 권리는 어디로?
지연 님은 20대 초반의 여성이다. ‘건강한 나이대’라고 여겨지는 몸을 지닌 지연 님을 비롯한 많은 청년 노동자는 아프지 않고(아픈 것을 티 내지 않고) ‘성실히’ 노동하길 상시 요구받고 있다. 그렇게 ‘정상성’의 표상에 몸과 일상을 맞출 것을 요구받지만, 실제 우리 몸은 그렇지 않다. ‘언제 아플 것이다.’라고 예측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라는 이유로 사업장은 유급 병가나 연차, 휴직을 안내조차 하지 않기에, 그 간극을 메꾸는 건 오로지 지연 님의 몫이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입장에서 아파도 그런 제도(병가 등)를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인터뷰 질문을 받고서야 이런 것도 생각할 수 있구나, 뒤늦게 알았어요. 학원에선 그런 거에 대한 안내도 전혀 없었고요.”
아파서 쉬고 싶을 때는 ‘대타’를 구해야 한다.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든 출근해야 한다. 지연 님 역시 “대타를 못 구할 가능성이 너무 무서워서” 한 번도 쉬지 못했다.
“대타 구하기도 너무 어렵죠. 이번 학원은 선생님들 간의 교류가 아예 안 돼요. 일부러인지 모르겠는데, 교실도 다 분리를 해둬서 서로 교류가 아예 안 되고 있어요. 이번에 해고 통보 받기 전에도 제가 몇 번 아팠었는데, 크게 아픈 건 아니지만 수업하기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는데, 대타를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그냥 약 사 먹고 출근했어요. 대타가 못 구해질까 너무 무서워서, 그냥 그런 가능성 자체를 안 만들려고 무리해서라도 출근했어요. 그런 날은 퇴근하고 기억이 잘 안 나요. 너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퇴근했고, 그런 상태가 며칠 갔기도 했고요.”
무리해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퇴근한 후, 누적된 피로를 회복하는 것 역시 오로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다른 선생님도 여기 되게 오래 다니셨는데, 수술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결국에는 학원을 그만두고 수술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대타를 구할 수가 없어서.”
만성적인 고용 불안정…단절된 스케줄과 수입
지연 님은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을 수행해왔다. 아르바이트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라는 점 역시 잘 알고 있다. 고용불안과 긴장은 업무에도 당연히 영향을 끼친다. 지연 님 역시, 학생들의 일지에 썼던 내용이 혹시 자기에게 안 좋게 작용할지 걱정하고 눈치를 봐왔다.
“제가 쓰는 일지가 그대로 학부모님께 전달이 되고, 직접적으로는 아니고 실장님을 거친다고 하지만, 그렇게 간다는 점이 부담이었죠. 주관적인 어떤 저의 언행 같은 게 언제든지 저를 자를 수 있다는, 그런 요인이 되는 거? 그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매 순간 눈치를 봐야 하고요. 제가 만약에 잘릴 위험이 없는 위치라면, 학생이 조금 부진한 컨디션을 보인다든지 했다면, ‘누가 요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성적도 떨어지고 있고 과제 수행률도 좋지 않다. 가정에서 신경을 써 주시고 학원에서도 염두하겠다.’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데, 제가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위치다 보니까 부진해도 부진하다고 말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성실하게 잘하고 있다고 적을 때도 있었고요. 만성적으로 불안한데, 일지 쓰는 매뉴얼도 없는 상황 속에서 제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먼저 우선순위에 두고 써야 하는지, 그런 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학원은 갑자기 해고 통보했다.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지연 님은 시급 일부를 따로 빼서 비상금으로 마련해 놓는 등 아르바이트 노동의 불안정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해고로 인해 단절될 시간과 경력을 혼자 감당하긴 어렵다.
“제가 이번에 당한 것처럼 갑자기 잘리면, 어쩔 수 없이 공백기가 생기잖아요. 그 단절된 시간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그게 개인적인 힘으로는 되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잘리면 집에서 좀 쉬어.’라고 주변에선 얘기하는데, 생활비 부담 측면도 있지만 잠깐이라도 아르바이트를 쉬면, 특히 제가 계속 종사하고 있는 부분이 교육 쪽이다 보니 공백기가 있으면 같은 직종으로 다시 들어가기 힘들 거 같다는 불안감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정한 고용과 변동되는 노동시간은 하루의, 일주일의 스케줄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다른 일을 구한다 하더라도, 그 임금 및 시간의 불안정함은 만성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잘려서 다른 일로 바꾸더라도, 같은 시간대 같은 요일에 똑같이 일할 거라는 가능성이 너무 낮고, 그럴 거란 보장도 없어요. 그런 부분에서 문제가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 (이번 학원으로) 일을 바꾸면서, 운동을 다니던 거를 못 가게 되어 건강 측면에서 문제가 좀 생겼고요. 임금 면에서도 일주일 뒤에 마지막 임금을 받고나서는 그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그런 게 좀 많이 걱정되기도 하고요.”
우리의 시간은 노동‘만’으로 채울 순 없다
젠더, 계급, 국적,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존재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절대값이 있다면 ‘시간’이라는 자원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은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을 임금 노동에 쓰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시간은 노동‘만’으로 구성될 수 없다. 출퇴근할 시간이, 자기를 돌볼 시간이, 공부할 시간이, 쉴 시간과 여가를 즐길 시간이 필요하다.
2024년 3.8여성파업 조직위원회가 실시한 여성노동자 실태조사에서 지연 님은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법정 근로시간인 ‘1일 8시간,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돌아가는 노동시장에 대해서, 심지어 노동시간을 더 늘리려고 하는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서, “사람이 일만 하며 사는 건 아니잖아요.”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일하고 밥 먹고 자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여가 시간도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조금 더 쉬어야 되는 거고요. 그런 걸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정해져 있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럴 여유와 시간이 더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노동 일수라도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는 세계여성의날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를 알릴 ‘여성파업’에, 초단시간 노동자인 지연 님도 당당히 참여해 함께 목소리 높일 예정이다.
[필자 소개] 조건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기사 좋아요 6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노동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