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혼인평등의 길’ 한걸음씩 내디디면 된다

대만에서 온 활동가들과 함께 한 『비 온 뒤 맑음』 북토크

박주연 | 기사입력 2024/04/17 [09:02]

한국도 ‘혼인평등의 길’ 한걸음씩 내디디면 된다

대만에서 온 활동가들과 함께 한 『비 온 뒤 맑음』 북토크

박주연 | 입력 : 2024/04/17 [09:02]

“우린 국민투표의 실패(2018년 11월 지방선거와 동시 실시된 투표로, 동성 결혼과 성소수자 인권에 반대하는 안에 찬반 여부를 물었다. 결과적으로 찬성이 높았다)를 맛보고 난 후에도, 혼인평등권을 어떻게든 입법하려고 했어요. 2017년의 ‘민법의 동성 결혼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 이후 2년 내에 입법을 해야 한다는 게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집중했죠. 입법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심지어 며칠 전까지도 발의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어요. 그 때 우린 육교 위로 올라가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은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요.”

 

▲ 책 『비 온 뒤 맑음』(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 지음, 강영희 옮김,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 감수, 사계절, 2022) 중 p.147 사진 “2019년 5월 16일, 우리는 충샤오시로의 육교와 입법원 앞에서 글자가 쓰인 하얀 천을 들고 플래시몹을 벌였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서 열린 『비 온 뒤 맑음』 북토크엔 TEC(대만평등캠페인 Taiwan Equality Campaign, 전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의 조이스 텅 대표, 웡웡 활동가가 참여해 대만의 혼인평등권 획득 과정과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혼이 법제화된 나라’라는 타이틀을 가진 대만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여러 난관을 거쳐 ‘맑음’을 만들어낸 대만 활동가들은 북토크에 참여한 한국 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했다.

 

이 북토크는 한국에서 혼인평등 운동을 하고 있는 ‘모두의 결혼’과 TEC가 함께 마련한 자리로, 모두의 결혼 활동가인 류민희 변호사가 사회를 맡았다.

 

10TB 용량의 기록을 남긴 대만의 혼인평등 운동

 

책 『비 온 뒤 맑음』은 대만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2019년 이후, 2021년에 출간됐다. 조이스 대표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가 이 운동을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했다는 걸 남기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됐다”며 “구체적인 과정을 알고 싶으면 책을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현 대만평등캠페인 Taiwan Equality Campaign)에서 쓴 책 『비 온 뒤 맑음』 표지

 

혼인평등 운동의 역사가 담긴 이 책의 절반은 사실 사진이다. 운동의 현장에서 있었던 일의 장면들과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얼굴과 표정까지 담겨있다. 조이스 대표는 “이 책은 사진기록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운동을 한번 정리해 기록해 보자고 했는데, 사진과 영상이 정말 많았다. 얼마나 많았냐면 10TB(블루에이 영화 한편의 용량을 30GB라 한다면 약 300편 이상의 영화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고화질 사진 한 장 용량을 24MB라 한다면 43만장 이상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사진과 영상 이미지를 통해 당시의 정서와 마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랬다. 또한 이 운동에 참여한 성소수자들이 ‘내가 여기 있었구나, 이 운동에 함께 했구나’ 기억하길 바랬다.”

 

책엔 일련의 과정이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고, 다방면의 지지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이 운동을 돌아보는 소회도 담겨 있다. “이성애자 앨라이(Ally, 지지자)로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 목사로서 운동에 함께 한 사람, 성소수자 자녀를 둔 어머니 그리고 유명 배우, 국회의원과 행정원장 보좌관까지.”

 

조이스 대표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는 책이고, 사회가 진짜 바뀐다는 걸 알려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며 “한국에서도 좋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덕담도 건넸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할 수 있어

 

▲ 4월 6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엔피오피아홀에서 열린 『비 온 뒤 맑음』 토크쇼. 왼쪽부터 한국 ‘모두의 결혼’ 류민희 변호사, TEC(대만평등캠페인) 조이스 텅 대표, TEC 웡웡 활동가 ©일다

 

북토크에 참여한 한국 시민들은 대만이 마침내 혼인평등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해했다. 사회복지와 사회운동을 전공했으며, 다양한 활동을 해온 TEC 웡웡 활동가는 자신이 이 운동을 통해 배운 것은 세 가지라고 했다.

 

“첫 번째는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 소통은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두 번째는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노력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 사회운동은 한 명, 한 명 다 영웅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믿음 혹은 지지하는 바를 자신의 일상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는 게 사회운동이지 않나 싶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폭넓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웡웡 활동가가 강조한 마지막은 ‘휴식’이었다. “먼 길을 잘 가기 위해선 휴식이 필수”라는 것. “많은 경우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을 연소해 가며 일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운동을 더 이상 이어가기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또한 (혐오세력과의 마주침, 언쟁 등으로) 트라우마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이때 서로에게 어떻게 버팀목이 될지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웡웡 활동가는 “우리가 먼저 넘어지면 상대방이 이겨버리게 된다”며 ‘쉬어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만의 동성혼 법제화 과정에 영향을 미친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만의 성평등교육법(2004년에 통과. 모든 학교에선 매 학기 최소 4시간의 성평등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한국에서도 학교에서 성평등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 내용의 한계가 있다고 털어놓은 성평등 교육 강사에게, 조이스 대표는 “대만 역시 내용이 보수적일 수도 있다. 교육 전에 ‘혹시 성소수자 관련 이야기는 안할 수 없나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번 찾아보자는 거다.

 

“그럴 때 어떤 동료들은 ‘그런 요구라면 아예 교육 안 하겠다’고 해요. 또 다른 이들은 ‘아, 뺄게요’ 하고선 막상 교육할 땐 슬쩍 마지막 슬라이드에 집어넣어요.(웃음) 각자 자기에게 맞는 전략으로 대응하는 거죠. 한국도 파이팅 입니다!”

 

정치 활동, 입법 운동은 계속 중요하다

 

2019년 특별법을 통해 동성혼이 법제화되었지만, ‘특별법’이었기 때문에 추가 입법이 필요한 공백이 있었다. 예를 들어, 국제 커플의 경우 동성혼이 안 된다거나, 오히려 싱글인 상태에선 입양이 되는데 동성 커플이 되면 입양이 안 된다거나 하는 등. 대만 활동가들은 이 부분을 바꾸기 위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

 

웡웡 활동가는 “지금도 계속해서 입법 관련 일들을 하고 있고, 선거 관측과 관찰을 하며 정치가 조금 더 우리에게 우호적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며, “성소수자들의 정치 참여는 중요하다”고 짚었다.

 

▲ 한국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혼인평등연대에서 제작, 배포 중인 “혼인평등의 여정에 함께 할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와 굿즈 ©일다


정치와 관련된 활동, 특히 입법과 관련해 계속 노력하는 건, 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조이스 대표는 “혼인평등법이 통과된 후 사회가 점점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했다.

 

“TEC에선 매년 사회인식 조사를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여자와 여자 혹은 남자와 남자가 키스하는 걸 봤을 때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해 ‘있다’는 답변 비율이 조금씩 상승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부모가 그렇게 (동성혼을) 지지하진 않았는데 막상 자녀가 결혼을 하고 나면, ‘너희 세금은 어떻게 되는 거냐?’라며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동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고. 조이스 대표는 “법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법이라는 건 사람들의 사안이나 생각, 사회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토크 패널은 아니었지만, 역시 대만에서 온 활동가이자 유튜버 리오 활동가는 “국민투표 당시 캠페인을 위해 퀴어 유튜버, 앨라이 유튜버가 함께 모여 연서명을 받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는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사회 변화를 위해선 ‘같이’ 움직여야 한다. 한국에서도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에선 혼인평등권이 다소 멀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지만, 변화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동성 부부인 소성욱, 김용민 부부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달라”며 진행 중인 행정소송의 2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바 있다.(관련 기사: 혼인평등으로 가는 길, 첫 단추가 꿰어졌다 https://ildaro.com/9597) 한국에서 ‘비 온 뒤 맑음’을 볼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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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4/04/18 [14:25] 수정 | 삭제
  • 건강보험공단 상대로 승소했군요!! 생활동반자법 통과되길 희망합니다.
  • 두리안 2024/04/18 [11:28] 수정 | 삭제
  • ㅎㅎ 비가 개이지 않으면 모두가 힘들죠. 우리도 언젠가는 맑은 날이 올 것입니다.
  • 2024/04/18 [03:31] 수정 | 삭제
  • 평생 비만 보면서 살도록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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