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끈질기게 차지하고 있는 그녀들

[청년 페미니스트, 내 머리맡의 책]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조영은 | 기사입력 2024/04/23 [08:04]

내 삶을 끈질기게 차지하고 있는 그녀들

[청년 페미니스트, 내 머리맡의 책]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조영은 | 입력 : 2024/04/23 [08:04]

[필자 소개] 조영은. 청주에서 직장인 겸 활동가로 살고 있다.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에서 활동하고 있다.

 

▲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회원들의 소풍. 그림대회를 열고 있는 모습. (필자 제공)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내 인생은 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청주 행정구역상, 서원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는 뜻인데, 갑갑한 마음과 나의 인생의 반경이 얼마나 제한적인가 하는 자조가 섞여있다. 딱히 청주에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유치원부터 학교, 활동하던 단체, 지금 다니는 회사, 앞으로 이사 갈 집까지 서원구에 붙박여있다.

서울에서 만난 엄마와 아빠는 물가와 집세에 쫓겨나듯 이모들과 형제들이 있는 청주로 이사 왔고, 우연하게도 그들의 딸이었던 나도 청주에 살게 되었다는 정도가 지겨운 청주살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에는 소설의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분리된 벽…추방당한 흑인 빈민가, 평생을 서로를 돌보는 여성들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은 나보다는 더 굴곡진 삶의 과정을 거쳐 브루스터플레이스에 다다랐다. 이 책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일곱 명의 흑인 여성의 삶의 질곡을 다루는 소설이다. 그녀들은 각자 다른 여정을 거쳐 사회의 경계선 밖으로 내몰렸고, 그렇게 정착한 곳이 바로 도시에서 추방당한 부르스터플레이스라는 흑인 빈민가였다. 이곳은 높은 벽으로 도시에서 분리되면서 급격히 쇠락한 지역으로, 더이상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의 터전이 되었다. 브루스터플레이스에서 그녀들은 ‘결연한 마음으로 분주히’ 자신의 일상을 살아낸다.

 

그녀들의 일상은 돌봄노동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이들의 돌봄을 이렇게 묘사된다.

“일어나 젖은 빨래를 널면서 자신들의 꿈도 함께 내다 건다. 그 꿈들은 한 줌의 소금과 섞여서 수프를 끓이는 냄비 속으로 들어가고, 기저귀를 채우는 아기의 곁에서 맴돌기도 한다. 꿈이란 것은 밀물과 썰물 같아서 넘쳐흐르다가 점차 희미해질 때도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녀들이 행하는 돌봄은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나 도움이 아니다. 나의 일상을 구성하고 삶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꿈이 담겨있는 행위다. 이러한 돌봄은 그녀들의 일생에 거쳐 지속된다.

 

▲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글로리아 네일러 저, 이소영 역, 민음사, 2009) 표지 이미지. 원제: ‘The Women of Brewster Place’, Gloria Naylor, 1982


이 소설에는 “결연한 마음”으로 일생에 거쳐 누군가를 돌보는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브루스터플레이스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인 매티 마이클이다. 비혼모였던 매티는 집에서 아이가 쥐에 물리는 모습을 목격한 후 아이를 안고 뛰쳐나왔지만, 흑인이자 비혼모인 매티에게 집을 내어주는 곳은 없었다.

 

아이를 안고 거리를 배회하던 매티를 집 안으로 들여온 사람은 흑인 노인 이바 터너였다. 이바는 매티를 자신의 집에 들였고 그녀들은 이바의 집에서 함께 살아간다. 이바와 매티는 아이들을 키우고 집을 가꾸고 서로에게 조언과 걱정을 주고받는다. 이바는 “자신만큼 그 집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영혼이 그곳에 머물 수 있길” 바라며, 매티에게 집세 대신 집을 사기 위한 저축을 권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후에도 매티가 이 집에서 안식을 취하며 안정적인 삶을 지속하길 희망한다. 이러한 이바의 바람에는 자신의 여생과 죽음, 자신이 죽은 후에도 지속될 매티의 삶이 얽혀있다. 그녀들이 서로를 돌보고 같은 일상을 살아내며 만든 관계에는 함께 일궈낸 공동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열망이 녹아있다.

 

이후 매티는 아들이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르면서, 아들과 이바에게 이어받은 집 전부를 잃고 브루스터플레이스로 이사한다. 그리고 자신처럼 사회에서 내몰린 흑인 여성들을 만난다. 매티는 이바가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그녀들의 버팀목이 되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이어간다. 매티는 아이를 잃은 시엘의 몸을 흔들고 씻기며 죽음과 같은 슬픔에서 꺼내놓고, 에타에게는 자신을 기다려주는 유일한 누군가가 되어준다. 그녀는 숨 쉬듯이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며 자신의 삶을 버텨낸다.

 

청주에서, 내 삶을 차지하고 있는 여자들

 

나는 이런 삶의 태도가 낯설지 않다. 매일 늦게 들어오는 딸에게 언제 집밥을 먹일 수 있는지 가늠하며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가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음식과 생필품을 챙겨서 찾아오는 이모들이 있다. 그들은 제발 쉬면 안 되느냐며 자신들을 들들 볶는 딸들을 가뿐하게 무시하며 날이 따뜻해지면 나물을 캐다가, 티비를 보며 다듬고, 양념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운전을 하고, 이모의 딸은 같이 나물을 다듬고, 다른 이모의 딸은 무쳐진 나물을 배달한다. 그녀들은 놀랍게도 스스로를 내어주고 주변의 사람을 살뜰히 살피며 자신의 일상을 구성한다.

 

▲ 엄마가 나물 다듬고 있는 모습. (출처: 조영은)


그뿐인가. 엄마와 자매들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로 평생을 살았다. 여성에게 주어진 비정규직 노동은 대부분 돌봄 노동이다. 엄마와 막내 이모는 청소노동자고, 큰이모와 셋째 이모는 장례식에서 음식을 하고 치우는 노동을 한다. 돌봄으로 돈을 벌어 삶을 유지하고 그 삶을 다시 돌봄으로 채우는 그녀들을 보면 지겹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우리의 삶이 유지하기 위한 전반의 행위 자체가 돌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는 나에게 꾸준하고 끈질기게 결혼과 출산을 권유하고 있는데, 결혼과 출산이라는 정상성 아래 숨겨진 엄마의 진심은 나의 딸이 딸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심지어 엄마는 나에게 자매를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다. 엄마의 삶에서 여성과의 상호돌봄적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아직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지만, 나에겐 혈연이 아닌 청주라는 지역으로 묶여 내 삶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2021년 11월,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가 만들어졌다. 백래시가 공고한 시대에서 계속해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바꿀 힘을 만들자는, 거창하지만 간절한 바람으로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활동하는 과정은 누가 학교를 졸업했는지, 누구네 강아지가 잘 지내고 있는지, 요즘 누가 많이 지쳐 보이는데 괜찮은지를 살피는 일들과 함께였다. 힘들어 보이면 밥을 챙기고 과로하는 이에게는 잔소리가 끊이지 않고 각자의 활동과 상황이 끊임없이 공유됐다. 이게 참 자연스러웠다. 나의 징글징글한 청주살이가 계속되고 있는 건, 이런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내 삶에는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들이 차지하고 있다.

 

▲ 2021년 11월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창립총회. 우리는 백래시가 공고한 시대에서 계속해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위해 연결되었다. (필자 제공)


함께, 벽을 부수는 꿈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이라는 이중적인 억압이 초래한 절망적인 순간에 그들이 생명력을 잃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이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나고 버림받고 매도당하는 순간, 서로에게 살길이 되어주는 그녀들의 관계가 희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등장인물인 로레인이 결국 무너지고 소설에서조차 사라지는 모습이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로레인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동네 폭력배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브루스터플레이스 담벼락에 유기되고 정신착란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이후 회복도, 고통의 과정도 드러나지 않고 소설에서 퇴장한다. 처음에는 로레인을 왜 영원히 비극에서 구하지 않는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곧 그런 마음조차 민망해졌다. 2024년 한국에 살고 있는 나도 성폭력, 교제 살인, 집단 강간의 소식을 들으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성폭력과 살인이 일어난 이후 브루스터플레이스에는 계속 비가 내린다. 그들은 거센 비 때문에 각자의 집에 갇힌다. 모두가 고립되어 있는 중에 매티는 꿈을 꾼다. 꿈에서는 브루스터플레이스의 권리를 대변해줄 변호사 선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주민들이 준비하고 있던 구역파티가 즐겁게 진행 중이었다. 사람들과 즐겁게 파티를 즐기고 있는데, 한 소녀가 브루스터플레이스에 세워진 피 묻은 벽돌을 하나 빼 매티에게 가져간다. 담벼락에 피가 묻어있는 걸 확인한 매티는 손으로 피묻은 벽돌를 파내기 시작한다. 그러자 “여자들이 담벼락으로 달려들어 칼, 플라스틱 포크, 뾰족한 구두 굽, 심지어 맨손으로” 벽돌을 파내고 결국 벽이 무너진다. 그리고 매티는 꿈에서 깨어나 그친 비를 보며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구역파티를 준비한다.

 

브루스터플레이스의 벽은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을 고립시키고 차별하는 억압이었다. 그 담벼락은 여성이 강간당하고 유기되는 장소였다. 이렇게 참혹한 벽을 부수기 위해서는 커다란 망치도, 힘이 센 사람도 필요 없다. 여성들이 누구를 먹이기 위해 드는 칼, 플라스틱 숟가락, 뾰족한 구두 굽이 필요할 뿐이다.

 

▲ 엄마와 이모, 강릉 여행. (출처-조영은)


벽이 무너지는 순간이 벅차오르면서도, 이 순간이 소설 안에서조차 꿈에서만 가능하다는 게 안타까웠다. 동시에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꿈을 꾸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에게 손을 뻗고 먹이고 챙기고 돌보는 행위들이 세상을 바꿔낼 거라는 꿈을 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꿈이 브루스터의 여자들이 빨래를 내걸며 꿈을 함께 내걸고 한 줌의 소금에 꿈이 섞여들어 가는 것처럼, 희미해질 때도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 곁에 머물길 바란다. 그럴 때 우리가 “결연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능하다면, 내 삶과 일상을 끈질기게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과 함께 그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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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리 2024/05/04 [14:46] 수정 | 삭제
  • 걔네.. 위트있는 이름이네요. 지역 페미니스트들 네트워크 응원합니다!
  • 루트 2024/04/25 [11:19] 수정 | 삭제
  • 어머니와 이모들의 관계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와닿았어요. 어찌보면 소설 속 흑인여성 커뮤니티와는 너무 다른 환경속의 이야기인데, 딸과 비혈연자매들의 위치에서 연결망과 존중과 힘을 이야기하는 글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 지방시 2024/04/24 [15:06] 수정 | 삭제
  • 아니, 이렇게 애정 묻묻 글이라니.. 좀 감동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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