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회복’ 가능한 사회로

‘5.18민주화운동과 성폭력 진실규명의 현안과 과제’ 국회토론회

박주연 | 기사입력 2024/05/25 [19:22]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회복’ 가능한 사회로

‘5.18민주화운동과 성폭력 진실규명의 현안과 과제’ 국회토론회

박주연 | 입력 : 2024/05/25 [19:22]

국가폭력에 의한 성폭력을 최초로 조사하고 진상 규명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가 최근 공개된 이후, 그 의의를 짚고 향후 과제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5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논의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무엇보다 이 사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 5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토론회 - 5.18과 성폭력: 진실규명의 현안과 향후 과제〉 현장 모습 ©일다

 

세 범주가 중첩된 ‘5.18 성폭력’ 피해의 복합성 이해해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토론회 -5.18과 성폭력: 진실규명의 현안과 향후 과제〉는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하고, 광주광역시의회 5.18특별위원회,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진선미‧강은미‧권인숙‧윤미향 국회의원, 그리고 국회 여성아동인권포럼 주최로 마련됐다.

 

진상규명 조사에 참여하고 결과를 분석, 연구한 신상숙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과 장임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윤경회 5.18조사위원회 팀장이 발제를 맡았다. 이어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전진숙 22대 국회의원 당선인, 이재일 전 국회 입법조사처 성폭력 전담조사관, 김명권 광주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사회는 정다은 광주광역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맡았다.

 

먼저, 피해자들의 진술 결과를 분석한 신상숙 연구원은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은 ‘특수한’ 상황을 이해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5.18 성폭력은 무력이 동원된 국가폭력이며, 여성에 대한 젠더 기반 폭력이고, 진상규명이 필요한 과거사 폭력이라는 세 가지 범주가 중첩되고 교차하는 위치에 있는 폭력”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 폭력을 어느 한 범주의 폭력으로 환원을 해서 접근하는 건, 5.18 성폭력 피해자가 느껴야 하는 고충과 억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국가폭력의 전문가, 젠더폭력 전문가 또는 과거사 전문가라고 해서 이 고충을 다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 5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토론회 - 5.18과 성폭력: 진실규명의 현안과 향후 과제〉에서 신상숙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이 ‘5.18성폭력’에 대해 설명했다. ©일다

 

국가 폭력, 젠더 폭력, 과거사 폭력은 사실 다 증명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사법적인 정의에 의한 해결 또한 쉽지 않다. 그런 연유로, 이런 사건들은 법정이 아니라 진실규명위원회나 과거사위원회에서 해결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 신상숙 연구원은 “보통의 폭력 입증 방식과 5.18 성폭력의 입증 방식이 동일해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나아가 “폭력의 입증이 과거 생애사의 트라우마를 포함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그 폭력이 거칠었냐가 아니라 ‘그 폭력으로 인해서 그 생애사 동안에 어떤 피해를 겪었는가?’라는 질문이 새롭게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성폭력은 여타의 폭력과 달리, 목격자나 객관적인 증거가 남기 어렵기에 피해자의 진술이 중요”한데, 그 진술을 듣고 해석하는 사람이 “이른바 ‘피해자다움’의 정형화된 기준에 의존한다면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상숙 연구원은 특히 “과거사 성폭력 사건의 경우,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불식되지 않거나 개인적·집단적 트라우마와 외상 기억에 대한 의미 해석의 지평이 열리지 않으면, ‘해석학적 부정의’(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의미와 자원이 불평등하여 체계적인 편견을 야기)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진상규명 과정에 ‘젠더 관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장임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진실위원회의 성폭력 및 젠더폭력 대응 사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루, 티모르-레스테, 시에라리온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5.18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의 방향성을 제안했다.

 

▲ 장임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발제 자료 중 ‘해외 사례’ 관련 ©일다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는 실패 사례로 언급됐다. “여성에 대한 젠더기반 폭력을 다루지 못했고, 그것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진실화해위원의 젠더 관점에 대한 부재가 지적됐다”는 것.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는, 위원회를 설치하기 위한 법률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부터 여성의 참여가 없었으며, 위원회 구성에 있어서도 남성중심성이 강했다는 점에서 여성의 경험이 위원회 과정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고 짚었다.

 

이에 반해 페루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과정에 젠더 관점을 통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고, “위원회에서는 조사과정에서 피해자의 기본적 권리, 즉 범죄의 맥락과 원인, 상황과 책임자에 대해 알 권리, 법적 절차에 접근할 권리, 배상과 재발방지에 대해 보장 받을 권리를 충족할 수 있는 의사소통 모델을 조사방식으로 선택”했다. 더불어 “조사 지침뿐만 아니라 조사관들 대상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여성 피해자들의 조사 참여를 이끌어 냈고, 여성 대상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높이기 위한 캠페인도 전개”했다.

 

시에라리온 진실화해위원회는 “회복적 정의에 초점을 맞추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드는데 힘을 썼다”는 점이 눈에 띤다. “공개적인 진실 말하기라는 과정을 진행, 이 때 피해자의 증언을 어떤 판단을 가지고 듣는 게 아니라 증언을 통해 피해 내용을 파악하고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이는 위원회가 “법정언어가 아닌 구술증언을 통한 치유와 화해 능력에 집중하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편 티모르-레스테 진실화해위원회는 “젠더기반 접근을 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 구성에 있어 30% 이상 여성 참여를 의무화하고, 여성폭력 영역에서 활동하는 NGO 활동가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조사자와 피해자 지원 담당자의 다수를 여성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지점에선 한국의 5.18조사위원회에도 한계 지점이 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5.18조사위 전체 위원 구성을 보면, 9명 중 여성위원은 단 1명뿐으로 태생부터 성인지 관점을 갖기 어려운 남성 독점적 구조. 특히 상임위원 3명 중 여성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점은 매우 유감스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2차 피해’ 예방하고, 피해자 치유 과정에 관심 필요

 

윤경회 5.18조사위원회 팀장은 “기존의 과거사 조사는 특정한 쟁점 사항의 진위 여부와 책임 소재를 밝히는 데 논의가 집중된 결과, 피해자들의 고통과 생애사적 진실에 무관심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피해자와 가족이 겪는 삶의 고통이 5.18민주화운동의 피해 실상에 대한 부인과 은폐·왜곡 시도와 더불어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적 통념에 의한 복합적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윤경회 5.18조사위원회 팀장의 토론회 발제 자료 중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 관련 ©일다


윤경회 팀장은 “국가는 5.18 성폭력 사건의 피해 실상을 부인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에 관하여,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이자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시도로 보고 단호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기 위해선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8조(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금지)에 조문 추가가 필요하다는 것.”

 

더불어 “5.18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의 치유를 위한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피해자들이 계속 증언을 반복하는 과정을 겪지 않도록, “「5.18진상규명법」에 의거 ‘진상규명 결정’된 피해자들이 「5.18보상법」에 따른 조사·심의 과정에서 별도의 조사 없이 5.18 관련자로 인정되고, 사건 후 복합적 후유증에 부합하는 ‘보상급 등 지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신상숙 연구원 또한 “광주시, 5.18조사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 관련 단체가 협력해서 피해자가 또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일이 없도록, 피해자에게 재차 질문이 가는 일이 없도록 간곡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재일 전 국회 입법조사처 성폭력 전담조사관은 앞으로 이어질 조사 등을 위해서 “부동의간음죄 도입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강제추행죄 구성 요건(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한다)는 지점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강력한 ‘입증’을 요구하는 탓이다. 이재일 전 조사관은 “독일은 ‘행위자가 공포스러운 상황을 이용한 경우’에, 일본은 ‘예상과 다른 사태에 직면하게 하여 공포스럽게 또는 경악하게 하거나, 또는 그 사태에 직면하여 공포 또는 경악하고 있는 경우’를 규정하여, 공포스러운 상태 하에서의 간음 또는 추행 행위는 피해자의 자유 의사가 없는 간음 또는 추행으로 보고 형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윤경회 5.18조사위원회 팀장의 토론회 발제 자료 중 ‘5.18 성폭력 피해자의 명예회복’ 관련 ©일다


정다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조사위원회에서의 진상규명 절차는 마무리됐지만, 피해자들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트라우마 치유 과정에도 지원이 필요하며, 보상 그리고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사건의 경우 형사 절차도 진행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위해선 사람도 필요하지만, 제도도 필요하다. 토론회 끝까지 자리를 지킨 전진숙 22대 국회의원 당선인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강구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혼자서 할 순 없을 것이다. 5.18 성폭력 피해자, 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 모두 지치지 않도록, 우리 사회와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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