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어요”

[청년 페미니스트, 내 머리맡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강경민 | 기사입력 2024/06/05 [11:03]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어요”

[청년 페미니스트, 내 머리맡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강경민 | 입력 : 2024/06/05 [11:03]

[필자 소개] 강경민. 대구를 거점으로 지속가능한 보통의 삶을 이야기하는 복합문화공간/브랜드 THE COMMON을 운영하고 있다. ‘MANKIND IS KIND/우리는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어요.’라는 슬로건으로, 우리의 현재 살고 있는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하는 열쇠는 나와 주변을 돌보는 마음인 다정함에 있다는 메시지를 다양한 프로젝트와 커뮤니티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미술을 전공하며 나를 둘러싼 것들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졸업 후 상업/광고 영역에서 시각디자인 일을 하다가 사회적 경제 영역의 디자이너로 전환을 하며 기존에 관심 있던 동물권, 환경 이슈를 넘어 사회의 다양한 이슈로 시각이 넓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인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삶과 사회에 대해 내가 즐거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 강경민. 대구 거점의 복합문화공간/브랜드 더커먼(THE COMMON) 운영자. ‘MANKIND IS KIND’(우리는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어요)라고 적힌 포스터 앞에 선 모습. ©장혜진

 

더커먼 공간 오픈을 준비할 때, 내 방에 몇 년 동안 걸려 있던 ‘MANKIND IS UNKIND’라는 메시지의 디자인 포스터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이 포스터는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팀 Experimental Jetset이 디자인했던 포스터인데, 동물권을 주제로 ‘인류는 잔인하다’라는 메시지가 그려져 있었다.

 

동물권에 관심이 많아서 공장식 사육을 주제로 한 툰을 그리고 있던 나에게 이 포스터는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고 꽤 공감이 되는 메시지였다. 그렇지만 잔인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끝난다면 우리는 바뀔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 메시지보다 결국 긍정적 메시지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기에, 이 메시지를 반대로 해석하면 내가 그리는 더커먼의 슬로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UN’을 삭제하고 울상 짓는 입 위에 웃는 입을 덧대어 ’MANKIND IS KIND’라고 메시지를 변형하고, KIND를 번역할 때는 ‘친절’이라는 단어 대신 ‘다정’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친절’은 노력이 포함된 느낌이라면 ‘다정’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는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쳐 그린 포스터를 공간에 걸며 2020년 중반 더커먼을 오픈하고,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어요.’라는 슬로건으로 더커먼을 운영해오고 있다.

 

▲ 대구를 거점으로 지속가능한 보통의 삶을 이야기하는 복합문화공간/브랜드 THE COMMON 입구 사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제는 함께하는 직원이 떠나도 웃으며 이별할 수 있지만, 2020년 가을, 내 생에 처음 고용했던 파트타이머 미루 씨와 갑작스레 이별했을 때 처음 겪는 감정에 며칠을 혼자 울었다. 그 후 다시 만났을 때 따듯한 메시지가 적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표지만 봤을 때는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마음이 따듯해지는 과학책 같은 느낌이었다. 책은 다윈의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나 역시 적자생존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로 받아들이며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인류가 지구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다정함’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저/이민아 역/박한선 감수, 디플롯. 원제: Survival of the Friendliest)


인류가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만드는, 친화력 이면에 공존하는 배타적인 비인간화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도 이야기한다.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비인간화할 때 우리는 한없이 배타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음을, 유대인 학살 등 역사적 사건들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혐오를 바탕으로 한 많은 이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더 교류하고 접촉하며 다양성을 접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자신과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인용

 

더커먼은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고 싶다. 종종 다양한 출신, 배경, 인종, 나이의 사람들과 동물들이 섞여 다양한 이야기를 테이블에서 나누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볼 때 흐뭇하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양성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배타심과 혐오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꾸리는 공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행히 그동안 운영을 하면서 만나는 손님들은 대부분 사려 깊고 많이 다정해서 내가 오히려 손님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손님들이 온다면 그들을 대하는 내 마음이 힘들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구분 짓거나 경계를 만들지 않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이 공간에서 작은 것이라도 알게 되거나 느낄 수 있도록 돕는 포용하는 다정한 공간으로만들어 가자.

 

▲ 더커먼(THE COMMON)에서 열린 공연 사진.


먼저 나에게 다정하기

 

태국 치앙마이의 산에서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시는 은퇴한 스님에게 가서 5일간 머무르며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아침, 저녁 식사 때는 불교 철학에 대해 이야기 들었다. 무엇이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인자하신 스님에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우리가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는지, 스님은 현재 우리가 처한 이 상황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대뜸 나에게 “Save yourself!”라고 하셨다. 다 같이 물에 빠져있다면 너부터 먼저 물 밖에 나와야 다른 사람들을 구해줄 수 있지, 같이 허우적대면서 어떻게 남을 구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당시엔 어리둥절했는데, 어느 날 나는 스스로에게 전혀 다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스님이 한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린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보게 되었고, 이런 마음으로는 다른 존재에게도 표면적으로는 다정할 수 있지만 결국 마음 깊이 다정할 수 없겠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마음이 편하고 내가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일 때 타인의 완벽하지 않음도 받아들일 수 있고 다른 존재를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아직도 때때로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고 완벽해지려 몰아세우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될수록 커먼에서 말하는 ‘다정’도 더 깊은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내면이 편안하고 지금 이대로 충만하다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는 설득력을 잃을 것이고, 끊임없는 경쟁과 이윤 창출과 환경 파괴와 착취의 쳇바퀴를 굴리는 자본주의는 더이상 작동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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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미 2024/06/27 [11:48] 수정 | 삭제
  • 이 책 얘기가 많더라고요. 인류의 패러다임이 지금이라도 바뀌고 있는 게 느껴져서 다행입니다.
  • 퍼슨 2024/06/20 [13:45] 수정 | 삭제
  •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독자 2024/06/17 [12:21] 수정 | 삭제
  • 책 제목만 봐도 넘 좋다!
  • 별리 2024/06/09 [16:55] 수정 | 삭제
  • 지역에 문화공간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아요.
  • 2024/06/06 [17:24] 수정 | 삭제
  • 언카인드와 카인드 사이 심오하네요 나도 다정한에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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