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소개] 영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서페대연)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페미니즘 이야기를 대학에서 하고 싶다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현재의 서페대연을 만들게 되었다. 현재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대해서 배우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대학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부터, 페미니즘은 잘 모르지만 주변의 성차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책은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았을 때 혹은 사람들과 함께 읽어야만 할 때-그러니까 세미나, 모임 등에서 선정된 책일 때- 읽거나, 그 외에는 공부가 더 필요해서 보는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소설은 이상하게 더 손이 가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알리고, 바꾸는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뒤로는 소설이라는 픽션 장르를 멀리했던 것 같다. 그러니 『체공녀 강주룡』은 원래라면 손 대지 않았을 책이었다.
시작은 내가 소속된 모임 때문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누군가 추천했고, 너무 좋으니 꼭 읽어보라고도 덧붙였던 것 같다. 얇으니 금방 읽을 수 있다는 말에, 여행가는 길에 쓱-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고 금세 몰입했다. 그리고 이동하며 이 책을 펼친 것을 후회했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물콧물이 범벅이 되어 비행기에서 내렸다.
책을 읽기 전 강주룡(1901-1932, 일제강점기 조선의 노동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1931년 평양 지역 고무공장 여성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에 항의해 파업을 벌이다 공권력에 의해 강제 해산되자, 강주룡은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임. 경찰에 체포된 후에도 단식투쟁을 했으며 출감한 지 두 달 만에 건강 악화로 짧은 생을 마감함)의 이야기를 모르지는 않았다. 2017년 서페대연(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의 방학모임으로 여성역사기행을 준비하며 기획팀과 함께 읽었던 책에서도 그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며, 이야기 나눴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생각거니 저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거이 분명합네다. 우리가 사람인 것을, 그것도 저들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우리 손으로 보여주자면 저 강덕삼이 형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의 단결된 뜻을 총파업으로 보여주어야 됩네다. (중략) 내 동지, 내 동무, 나 자신을 위하여 죽고자 싸울 것입네다.” -박서련 저, 『체공녀 강주룡』 중
내가 페미니즘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은 일면 자유로워 보이고, 성평등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공간이지만, 사실 그 공간안에 있는 사람들은 혐오와 낙인으로부터 누구보다 위축되어 있다.
2018년 미투 운동으로 온 사회가 들썩이던 시절, 대학에서는 ‘총여학생회 폐지’가 급물살을 탔고 ‘백래시’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의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젠더, 성평등, 여성 관련 수업만 들어도 혐오의 대상이 되고, 페미니즘 행사 홍보글, 동아리 가입 안내 글만 올려도 에타(에브리타임)에는 욕설, 비하의 댓글이 달린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신상이 털리고 조리돌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며 대학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살아가며 수많은 질문에 대해 답을 찾고자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답을 찾겠다는 것조차 큰 결심이 필요하게 만든다. 의문이 생기는 것 자체를 방해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실조차 깨닫기 어렵다.
대학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때는 공포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페미니스트가 무슨 죄라고’ 하는 생각에 분노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끝까지 싸워서 뿌리 뽑겠다’는 생각도 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2019년 “N번방 사태에 분노하지 않고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던 회원들은,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매 순간, 두려움을 넘어 또 싸운다. 그리고 끝내 이기기 위해 싸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인간으로서의 삶, 평등한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다음이 있다. 총파업이 한 번 실패했다고 세상이 결딴난 것도 아니다. 또 싸우면 된다. 이길 때까지 덤비면 된다.” -『체공녀 강주룡』 중 “세상에 싸우기 좋아하는 이가 있답데까? 싸우구 싶다는 거이 순 거짓입네다. 싸움이 좋은 거이 아이라 이기구 싶은 거입네다.” -『체공녀 강주룡』 중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체공녀 강주룡』 중 “제 온 열과 성을 다 바쳐 파업에 참여하는 것이 삼이를 위하는 길이고 옥이를 위하는 길이며 저 자신을 위한 길인 것을 왜 몰랐을까.” -『체공녀 강주룡』 중
강주룡은 싸움의 이유를 곁에서 찾았다. 자신의 곁에서 자신과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의 삶 속에서. 이길 때까지 계속해서 싸울 이유가 지극히 분명하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구호를 참 좋아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함께임을 느끼기 어려운 사회에서 우리는 ‘함께’임을 느끼기 위해 애쓴다. 개인으로 흩어져 각자도생을 이야기하는 대학에서 계속해서 평등과 정의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싸우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다. 함께한다는 것만큼 지금 사회에서 추상적인 말이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대학에서 ‘함께’ 모여 해결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바꾸고 싶은 사회를 향해 가는 유력한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는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우리 역시 끝까지 싸울 이유가 지극히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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