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띨띨이” 욕설, 구타…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 왜 처벌은?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주노동자가 겪는 일상적인 폭언과 폭행“사모님은 나한테 ‘돌머리, 띨띨이, 바보’라는 말을 했어요. 사모님이 번역 어플로 캄보디아어로 번역해서 저한테 보여줬어요. ‘멍청해, 미쳤어’라는 뜻이었어요. 정말 화가 많이 났지만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어요. 도와줄 사람이 없고, 돈도 벌어야 해서 참았어요.”
쏘퍼리(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씨는 2023년 1월부터 고용허가제를 통해 경기도 연천의 한 상추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의 사업주는 김원재(가명, 60대)씨로 쏘퍼리 씨와 태국 출신의 노동자 한 명을 고용했다. 이들은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낮 12시까지 일했고, 한낮 무더위는 피하고, 오후 5시부터 보통은 오후 8시까지, 더 늦게는 오후 9시에서 10시까지 일했다. 하루에 10~11시간 이상 일을 했고, 한 달에 고작 이틀 쉬는 것이 다였다.
그는 사업주 부부로부터 거의 매일 욕설을 듣거나 머리를 맞아가면서 일을 했다.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쏘퍼리 씨는 한국어가 서툴렀고, 아직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사업주 부부는 그를 “돌머리, 띨띨이, 바보”라고 불렀다. 그리고 굳이 번역기 어플리케이션까지 동원해 한국어를 캄보디아어로 번역해서 그게 무슨 뜻인지 소퍼리 씨에게 보여주었다. 그제서야 쏘퍼리 씨는 그 말이 ‘멍청하다, 미쳤다’의 뜻이며 폭언이 자신을 향한 말임을 알게 되었다.
“돌머리, 띨띨이, 바보” 일터에서 겪는 언어 폭력 욕설에서 그치지 않고 물리적 폭력까지, 일주일에 4~5일 머리 맞아
이제 막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 쏘퍼리 씨는 그런 일상적인 폭력에 제대로 항변도 하지 못했다. 사업주에게 딱 한 번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소퍼리 씨 말대로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은 폭언을 들어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녹음을 해두곤 했다. 그 녹음기 속에는 사업주의 험한 말과 욕설이 담겨 있었다.
한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는 실수로 깻잎을 잘못 땄을 때, 사업주가 자신의 손으로 가슴을 두드려가면서 큰소리로 고함을 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그런지 사장님이 이렇게 자기 가슴에 손을 두드려가면서 큰소리로 고함을 친 적이 있어요. 말로는 만약에 때릴 수만 있으면 때리고 싶은 만큼의 그 심정이었다고 얘기했어요.”라고 말했다. 다른 노동자는 “실장님이 종종 ‘너 왜 머리 생각 없어’라고 말해요.”라고 언급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러면서 그 뜻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충북의 한 사업주는 “그것은 그렇게 큰 소리를 치면 알아듣지 못해서 직원들이 일을 좀 할까 해서 고함을 쳐요. 사실 그러면 안되죠.”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치면 이주노동자가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서로 감정만 나빠지고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사업주는 “우린 외국인한테 욕도 안해요. ‘쟤네는 한국오면서 욕부터 배울 거다, 우리나라 욕 자체를 하지 말아라, 사람으로서 기분 나쁘다’라고 늘 남편한테 말했어요. 외국인들 제일 먼저 욕부터 배울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홍정민 노무사는 사업장에서 언어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면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지금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말로 때렸잖아요. 명예훼손이잖아요. [중략] 이주 노동자들은 ‘돌머리’라든가 욕설이나 이런 것들을 듣는 게 아주 일반적이란 말이에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스트레스 지수가 확 올라갈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는 언어폭력 또한 말로 사람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언급했다.
매일 듣는 욕설로 생긴 ‘마음의 상처’, 맞아서 생긴 ‘몸의 상처’ 농촌 사업장에서 발생한 폭력, 증거 제시 어려워
2023년 6월 17일, 쏘퍼리 씨와 동료 한 명이 오전 5시에 출근해서 상추 모종을 비닐하우스 안의 밭으로 옮겨 심었다. 오전 8시 정도에 모종을 다 옮겨 심었고, 오전 9시쯤 사장이 물을 주기 위해서 물호스를 잡았다. 물호수의 맨 앞쪽을 동료가 잡았고, 가운데 부분을 쏘퍼리 씨가, 마지막 부분을 사업주가 잡았다. 물호스를 잡고 물을 주고 난 뒤, 사업주는 저 멀리서 “놔, 놔, 놓으라고” 라고 외쳤지만 한국말이 서툰 쏘퍼리 씨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한국말 잘 못해서 사장님 말 이해 못했어요. 그러자 사장님은 나를 가까이 불러서 때렸어요. 파이프를 빼가지고 바로 이렇게 세게 세 번 때렸어요. 그리고 사모님이 화가 나서 내 머리를 아주 세게 때린 적이 정말 많아요. 일주일에 4~5일 정도 이렇게 머리를 맞았어요. 머리를 때려가지고 사모님한테 하지 말라고 한 적 있어요. 딱 한 번 그랬어요. 일을 하면서 맞는 건 정말 싫어요.”
쏘퍼리 씨가 사장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화가 난 사업주는 다가와서 호스로 쏘퍼리 씨 허벅지 안쪽을 세 번 내리쳤다. 그리고 호스를 정리해두고 오전 11시 30분쯤 점심을 먹고 쉬기 위해서 숙소로 들어갔다. 너무 더워서 열기가 좀 식은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다시 상추 모종을 심는 작업을 하였다.
일이 끝난 뒤, 쏘퍼리 씨는 오전에 맞아서 생긴 허벅지 안쪽의 멍을 보고 사진을 찍어서 이주활동가에게 보냈다. 활동가는 사건이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119에 전화하여, 구급차를 쏘퍼리 씨 집에 보내달라고 하였다. 오후 10시쯤 구급차를 타고 가서 병원에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 후 경찰이 제공한 숙소에서 이틀 동안 머문 뒤, 다시 사업장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경기도 안산에 있는 이주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았다.
“손찌검과 호통 친 건 처음∙∙∙” 폭력은 인정, 그러나 상추 값 올라간다면서 “자국민 손해” 운운하는 사업주
쏘퍼리 씨의 사업주인 김원재(가명, 60대)는 전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내가 내가 얘를 갖다가 손찌검을 하거나 뭐 호통을 치거나 그건 생전 처음이란 말이에요. 6월 17일, 토요일날 모종을 했어요. 호스로 1차로 한 번 물을 주고 나서 호스를 이동해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호스를 옮겨야 하니까 동료(태국 노동자)가 알아듣고 ‘호스 놔, 놔’라고 했어요. 근데 얘는 멀거니 그냥 나만 쳐다보는 거예요. 내가 ‘놔, 놔’ 그러고 동료가 ‘놔, 놔’ 해도 안놔요. 얘를 봤어요? 정신이 어디 갔나봐요. 항상 이렇게 보면 멍청한 스타일이에요. 매일 사모랑 10시간 이상씩 일을 같이 하니까 사모한테 야단을 매일 맞는 거예요. 매일. 그걸 사모한테에서 맨날 야단 맞으니까 나라도 걔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아껴 준단 말이에요.”
처음 통화에서 쏘퍼리 씨의 사업주는 ‘손찌검을 하거나 뭐 호통을 치거나 그건 생전 처음’ 이라고 폭력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김원재 씨의 부인인 박현자(가명, 60대) 씨도 처음 통화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호스를 놓으라니까 또 안 놔. 그래가지고 우리 신랑이 호스를 어떻게 이렇게 해가지고 툭 쳤나 봐요. 다섯시에도 멀쩡히 나와서 일을 했어요. 얘가 어 다리 절룩거리지도 않고. 그러니까 우리 신랑이 ‘야 내가 좀 혼냈어’ 그러더라고.”라고 말했다.
며칠 뒤, 경찰조사가 들어가면서 김원재 씨는 말을 바꾸었다.
“이게 우리가 때린 게 아니에요. 일을 못해서 사모가 ‘너 이리로 머리 갖다 대’ 해서 주먹 쥐면은 자기가 와서 머리를 받고 그러는 거예요. 그걸 이제 구타했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호스로 이렇게 ‘놔 놔’를 못알아들어서 실수로 자기가 맞은 거예요. 근데 아무리 인권이 중요하지만 세상에 우리 자국민이 손해 보는 걸 생각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지금 일꾼이 수급이 안 돼가지고 얼마나 지금 피곤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요. 내가 사업장 변경 동의 해줄테니까, 얘 보름 만에도 와서 일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정말이지.”
사업주는 일부로 구타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호스를 놓으라고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쏘퍼리 씨가 알아듣지 못하고 멍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상추값은 올라가는데 일손이 없어서 상추를 딸 사람이 필요하다며 쏘퍼리 씨가 단 보름이라도 와서 일을 해주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인권이 중요하지만 자국민 손해”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농번기에는 일손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사업주는 열흘 넘게 필자에게 전화를 해서 “덜 혼낼테니까 와서 일해달라”고 쏘퍼리 씨를 설득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쏘퍼리 씨를 때려서 미안하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쏘퍼리 씨는 일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기 위해서 꾸며낸 일”이라고 주장
사업주가 일부로 때린 것이 아니라는 말을 전하자, 쏘퍼리 씨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세게 세 번 내려치면서 “사모님이 나 이렇게 때렸어요”라고 한 글자 한 글자 강조하면서 말했다.
“만약에 사장이 이렇게 실수로 때렸다면 이렇게 그 정도 멍이 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날, 사장님이 파이프를 빼가지고 이렇게 세게 때렸어요. 만약에 실수로 그랬다면 문제삼지 않을 거예요. 근데 일부러 사장님이 저를 가까이 불러와서 바로 때렸어요. 그 사업장에 다시 안 가고 싶어요.”
한국에 입국한 지 4~5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일이 서툴다는 이유로 너무나 자주 맞았다고 그는 말했다. 머리를 때렸다는 부분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모두 인정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허벅지 안쪽에 멍이 든 사건에 대해서는 사업주와 사업주의 부인이 처음에는 인정했다가 나중에는 말을 바꾸었다. 즉,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사업주가 분명 처음 통화에서는 “혼을 냈다”라고 말을 했다가, 나중에는 “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기 위해서 꾸며낸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홍정민 노무사는 “요즘 많은 사업주들이 하는 논리”라고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인 노동자들도 일하다 다치면 사업주의 책임이라는 것들을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하죠. 그러면 이주노동자들은 아예 그런 걸 꿈도 못 꾼다는 거죠. 한국 사회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지위가 아주 바닥이잖아요. 이들은 누구의 책임인지 아예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그냥 당연히 그냥 내가 모든 걸 책임져야 된다고 생각하죠. [중략] 근데 농촌이라는 곳이 누가 목격자도 없고 사고가 났을 때 증명할 방법이 없는 거죠. 또 누구의 말을 더 믿어주겠어요? 그런 부분들도 있죠. 어쨌든 이 사건이 고소가 되어 있는 상황이니까 경찰이 조사해야 결과가 나오는 건데요. 설사 누구의 말이 맞는가 하더라도 사업주가 고의든 아니든 인정하잖아요. 호스를 흔들어서 다쳤다고요. 그럼 어쨌든 그것도 일하다 다친 거잖아요. 근로자 4인 이하 사업장이더라도 적어도 병원비는 보상받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럼 일 못한 것에 대해서는 60%도 받고요. 이거는 노동청에 진정을 할 수가 있어요.”
홍정민 노무사는 사업주가 고의든 아니든 본인이 들고 있던 호스로 쏘퍼리 씨의 허벅지를 멍들게 했으니 이것은 일을 하다가 다친 것이기 때문에 사업주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폭행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 19조 3항에는 ‘사용자의 임금체불 또는 그 밖의 노동관계법 위반’ 행위에 해당되며, 고용허가 취소 및 고용제한이 된다.
농촌 특성상, 사업주와 노동자 이외 목격자 없어 폭행 증명 힘들어
사업주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에 대해 이를 인정하기 보다는 이주노동자의 탓으로 돌리며, 사업장을 바꾸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농촌의 특성상 사고가 나더라도 사업주와 노동자 이외에는 목격자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따라서 증명하기가 어렵다. 이는 이주노동자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었다. 쏘퍼리 씨처럼 대부분 그냥 참고 일했다.
쏘퍼리 씨는 최소한의 치료비를 사업주가 주었으면 했으며 사업장을 바꾸길 원했다. 사업주는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업장 변경 해주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쏘퍼리 씨가 사업장에 복귀하지 않으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해서 불법 조치를 만들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쏘퍼리 씨는 사업주의 폭행이 아닌 가설 건축물에 살면서 기준 이상의 기숙사비를 낸 것으로 인해 사업장 변경이 되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지 언어 및 물리적 폭력에 대해서 사업주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폭력이 발생한 사업장에는 여전히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취업을 알선했다. 그 사업장에는 며칠 뒤면 또 다른 캄보디아 노동자가 배정되어 올 예정이다. 폭력은 발생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말이다.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썼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현장 연구를 했다. 지금은 한국으로 이주한 캄보디아 이주농업노동자들에 관해서 논문을 쓰고 있다. 먹거리, 이주, 젠더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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