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선택의 기로에서 쓰는 글

[자기 이해 글쓰기-나를 찾아가는 여섯 개의 물음] ‘욕구’ 편

나랑 | 기사입력 2024/08/18 [10:09]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선택의 기로에서 쓰는 글

[자기 이해 글쓰기-나를 찾아가는 여섯 개의 물음] ‘욕구’ 편

나랑 | 입력 : 2024/08/18 [10:09]

살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다. 뭘 살까 말까 하는 사소한 고민부터 이사나 진로 고민 같은 중대한 결정까지... 뭐 하나를 선뜻 택하기 어려운 건, 아마 두 개의 선택지에 담겨 있는 나의 욕구들이 다 중요하기 때문일 거다. 박 터지게 고민해도 답이 잘 안 나올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럴 땐 글쓰기로 모두 경험해보고 결정하세요.” -박미라,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그래도봄, 2021)

 

그냥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정리하면 되지, 꼭 글쓰기까지 해야 돼?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머리로 몇 날 며칠 생각만 했을 때는 두 선택지가 비등비등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글을 써 보니 한쪽으로 마음이 확실하게 기우는 경험을 하고 난 뒤에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글쓰기를 하고 있다.

 

▲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글쓰기로 모두 경험해 보고 선택하길 권한다. (출처: pixabay)


글쓰기는 어렵지 않다. A의 선택을 해서 살고 있을 때와 B의 선택을 해서 살고 있을 때를 묘사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사한 뒤 그곳에서 사는 것처럼 일상을 묘사하고, 그다음엔 현재의 집에서 계속 사는 삶을 글로 써 보는 겁니다. 글로 써 보면 진정으로 원했던 선택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박미라, 같은 책

 

글쓰기로 모두 경험해보고 결정하세요

 

지인의 글쓰기를 소개한다. 그녀는 서울에 살면서 늘 귀촌을 꿈꿨다. 귀촌 후보지도 몇 군데 정해놨고 기회가 될 때마다 관련된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후보지로 삼고 있던 곳에 빈집이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근처에 작은 텃밭 경작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주변에 귀촌한 비혼 여성들도 살고 있어서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연락을 준 사람은 이 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 한동안 집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 기회를 놓쳐? 아우, 생각만 해도 너무 아까웠다.

 

그런데 서울을 떠나려니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녀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단체를 꾸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최근에 그걸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은 동료들을 알게 됐다. 자신의 재능을 이대로 묻어두기엔 좀 아깝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에 남아있다고 해도 단체를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답답한 서울살이에 지치기도 해서 떠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이걸 어쩐담? 한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나의 권유에 따라 글을 써 보기로 했다.

 

step 1. 선택한 삶을 사는 모습을 상상하며 일상의 한 장면을 묘사해 본다.

 

A: 귀촌했을 때의 삶

 

삶이 정갈하고 정렬된 느낌이다.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텃밭을 돌본다. 오전 10시쯤에는 근처 유기농 식당에 나가서 4시간 알바를 하고 돌아와서 반려견과 산책을 한다. 저녁을 직접 해 먹다 보니 요리 실력도 늘었다. 오늘 저녁에는 귀촌한 여성들의 모임이 있다. 자주 만나면서 정보도 나누고 속 얘기도 하며 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내려오기로 결정한 데에는 역시 자연이 가깝다는 게 제일 크게 작용했다. 고밀도, 고자극으로 가득한 서울은 나랑은 안 맞는 곳이었다. 여기엔 반려견과 매일 노을을 보며 산책할 수 있는 탁 트인 들판이 있다. 흙냄새를 맡으면 구겨졌던 마음이 쫙 펴지는 것만 같다.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커리어가 더 쌓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삶에 후회는 없다.

 

B: 서울에 계속 살 때의 삶

 

요즘은 바쁘다. 동료들과 단체 등록의 수순을 밟고 있다. 바쁘고 고되지만 즐겁다. 어쩌면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협업의 욕구가 다시 꽃 피어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답답함은 여전히 힘들다. 어느 날 귀촌하지 않은 걸 후회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내가 더 잘 쓰일 수 있는 곳, 동료들이 있는 곳, 나의 유능함을 꽃 피울 수 있는 곳에 있고 싶다.

 

step 2. 이제 자신이 쓴 글을 훑어보면서 욕구를 정리해 본다.

 

-A(귀촌)를 선택할 때 충족되는 욕구는 여유, 자연 가까이에 있음, 가족과의 일상, 몸을 챙김 등이다.

-B(서울살이)를 선택할 때 충족되는 욕구는 동료들과 함께 함, 소속감, 유능함,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 등이다.

 

쓰고 보니 다 중요한 욕구들이다. ‘그래서 그렇게 결정이 어려웠구나’ 싶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step 3. ‘지금’ 나에게 더 중요한 욕구를 골라야 한다.

 

모든 욕구를 다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이 국면에서 자신에게 더 끌리는 걸 선택해야 한다. 아마 쓰는 과정에서 이미 느낌이 왔을 것이다. 두둥, 떨리는 순간!

 

그녀는 결국 서울에 남는 걸 선택했다. 글을 쓰면서,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으쌰으쌰 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선택한 삶을 직접 살아보는 글쓰기를 하면 A라는 선택, B라는 선택 각각에서 내가 충족하고 싶은 욕구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가지 않은 길

 

그런데 하나를 선택한 후에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있다면? 자꾸 미련을 갖는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선택하지 못한 길에 담긴 나의 욕구 또한 그만큼 중요해서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남은 네 번째 스텝이 중요하다.

 

step 4. 글쓰기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욕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보는 것이다. 그들을 칭얼대는 아이처럼 여기며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이다.

 

“지금은 널 충족시키지 못해서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줘.”

 

내 안의 어떤 욕구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상황이나 조건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욕구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 실현할 수 없는 것을 충분히 슬퍼하고 애석해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얘가 언젠가 나를 충족시켜 주겠구나’하고 안심하거나 ‘얘가 나의 존재를 알고 있구나’하고 칭얼거림을 멈춘다.

 

아니면 그 욕구에게 “다른 방식으로 널 충족시켜 볼게.”라고 말할 수도 있다. B라는 길을 택한다고 해서 꼭 A에서 추구하려고 했던 욕구 자체를 포기하란 법은 없다. 맘껏 충족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수위나 방식을 달리해서 조금이나마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더 산뜻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꺼이 내가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다.

 

죄책감 없이 욕구를 인정하라

 

자기 이해 글쓰기 ‘욕구’ 파트에서는 내 안의 욕구를 ‘아이’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요즘 내 안에서 유독 칭얼대는 아이들은 누구인가?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는 아이들이 어쩔 땐 참 귀찮고 성가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줄 수는 없는 것처럼 어차피 우리는 모든 욕구를 다 채우며 살 수는 없다. 그래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일단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 자기 이해 글쓰기 한 참가자는 자신의 표현 욕구를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로 표현했다. (사진-나랑)


성욕, 식욕, 권력욕, 사람들의 관심이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무위도식하고 싶은 욕구... 욕구는 무엇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일 뿐 거기에는 어떤 옳고 그름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욕구에 대해서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욕구를 뭔가 저차원적인 것, 동물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욕구를 드러내는 것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욕구를 갖는 것에 늘 죄책감이 따라다닌다. 국제평화단체인 비폭력대화센터를 설립한 마셜 B. 로젠버그는 “자신의 욕구를 인식해서 표현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될 수 있다”(『비폭력대화』)라고 말한다. 이런 습성이 수년에 걸쳐 쌓이게 되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건 둘째치고 내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죄책감 없이 욕구를 인정할 때 오히려 욕구를 조절하기 쉽다는 것이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하면서도 오랜 시간 나의 욕구를 ‘식탐’이라고 폄하하며 억압해 왔다. 어렸을 때부터 “조금만 먹어라”, “왜 그런 걸 먹니?”라고 말했던 엄마의 잔소리가 내면화되어서일 수도 있고, 먹는 것에 욕심을 내는 건 게걸스러운 데다가 교양 없어 보인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몸에 나쁜 음식은 먹으면 안 돼’, ‘남보다 많이 먹는 것처럼 보이면 안 돼’라는 생각을 늘 달고 살았다.

 

그런데 욕구는 힘이 세다. 참고 참아도 결국은 먹게 되어 있다. 참았다가 먹으면 보상 심리 때문인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이 먹게 되고, 나는 오랜 시간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먹으면 안 되는데...’하면서 죄책감을 갖고 먹으면? 먹는 행위 자체의 기쁨과 그 맛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기 때문에 욕구가 온전히 충족되지 않는다.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또다시 고개를 들게 돼 있다. 결국 먹기는 먹으면서도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 패턴을 알아차리게 된 나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한번 마음껏 먹어보기로 했다. 통제하지 않고 몇 달을 그렇게 즐겁게, 마음껏 먹었다. 역시나 처음에는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이 알아서 먹는 양을 조절하고 있었다. 먹는 행위의 기쁨을 만끽해서인지 많이 먹지 않아도 만족감은 컸다. 전에는 파트너한테도 절대 내 몫의 음식을 양보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곧잘 양보도 하게 됐다.

 

이렇게 나의 식욕을 인정하고 죄책감 없이 충족시키면서 나는 먹는 행위가 나에게는 에로스적인 행위라는 걸, 삶의 커다란 기쁨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 올해 제주에서 ‘청년 도전 지원사업’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자기 이해 글쓰기를 진행했다. 한 참가자가 자신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적은 것. (사진-나랑)


지금, 당신 안에서는 어떤 아이들이 울고 있는가? 그 아이들은 무슨 말을 하는가? 나의 진짜 욕구를 아는 것이 자기 이해의 시작이다.

 

내 삶의 원동력이자 에너지인 욕구를 순수하게 인정하자. 그리고 (나에게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죄책감 없이, 기쁘게 욕구를 충족시키자. 삶이 더 생생해지고 즐거워질 것이다.

 

[필자 소개] 나랑.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 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기자. 14년차 인터뷰 작가. 활동가로, 페미니스트로 살아오면서 늘 한 켠에서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다. 뒤늦게 상담 심리 석사 과정에 들어섰다. 여성과 소수자들의 의식 성장을 도우며 그 길에서 나도 함께 성장하기를 꿈꾼다. 인스타그램 @hello.writing.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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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비 2024/08/28 [13:48] 수정 | 삭제
  • 선택의 기로에서 글쓰기.. 이거 진짜 좋은 방법 같다.
  • 따릉 2024/08/24 [18:19] 수정 | 삭제
  • 글쓰기를 편안하게 여겼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문득 그 때는 잘도 뜨적였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일지 같은 것에만 익숙해져서... 다시 힘 빼고 즐겁게 펜을 들 수 있을까, 싶네요. 일기라도 적어봐야겠어요.
  • 나랑 2024/08/21 [07:16] 수정 | 삭제
  • 우왓 더블유님 축하드립니다!! 선택한 길, 기쁘게 걸어가시길요~
  • 더블유 2024/08/20 [13:39] 수정 | 삭제
  • 진짜 글쓰기 시작한 지 5분도 안 걸려서 결판이 났습니다. 신기했어요!!
  • 나랑 2024/08/19 [16:45] 수정 | 삭제
  • 더블유님~ 다 쓰고 나서 어떠셨는지 후기도 남겨주세요! :)
  • 더블유 2024/08/19 [11:50] 수정 | 삭제
  • 내가 지금 선택의 기로에서 차일피일 시간만 미루고 있는 건이 있는데, 여기 적힌 방법대로 지금 바로 글쓰기에 돌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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