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온 감정 손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자기 이해 글쓰기-나를 찾아가는 여섯 개의 물음] ‘감정’ 편“000 개새끼” 오늘 아침 내 글쓰기 노트를 펼쳤다가 깜짝 놀랐다. 아 맞다,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내가 저 문장을 썼었지. 내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OOO 때문에 며칠 동안 마음이 괴로웠던 차였다. ‘그에 대한 글을 써 봐야지’ 했다가 시간이 없어서 저 한 문장만 쓰고 더 쓰지 못한 채로 남겨 뒀었다.
그런데 한 문장만으로도 내 마음이 가벼워진 것일까? 더 이상 OOO에 대한 미움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심지어 내가 저 문장을 썼는지도 까먹고 있다가, 발견하고 나서는 깜짝 놀란 것이다.
‘부치지 않을 편지’ 쓰기- 내 감정을 인정하기
〈자기 이해 글쓰기〉 감정 파트에서는 글쓰기로 감정을 해소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름하여 ‘부치지 않을 편지’ 쓰기. 죽도록 미운 사람, 나를 오래도록 힘들게 한 사람, 얄밉거나 불편한 사람의 목록을 적어보고 한 사람을 골라 그에게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부치지 않을 편지이기에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온갖 쌍욕을 한바닥 써도 된다. 미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 가슴을 쾅쾅 두드리고 싶은 답답함, 억울함, 원망... 모두 쏟아낼 수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때 우리는 그런 감정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런 감정을 느끼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감정을 빠르게 차단한다. 하지만 미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미워하는 마음에는 죄책감까지 따라다니기에, 우리는 고통스럽다.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는 것은 일단 내가 그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죽도록 미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미워해도 괜찮아’라고 하는 자기 용서의 시작이다.” -박미라, 『상처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그래도봄, 2021)
그렇다. 중요한 건 먼저 내 감정을 인정하고 허용해 주는 것이다. 아마 내가 “OOO 개새끼”라는 단 한 문장만으로도 그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진 이유는 그 감정을 인정했기 때문일 거다.
편지를 쓰다 보면 내가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내 감정을 충분히 알아주고 나면 그때는, 아니 그때에서야 비로소 상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도 있게 되고 해결책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이해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쓴 참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마냥 밉기만 했는데, 쓰다 보니 마지막에는 그가 이해되기도 하고 좀 미안해지기도 하더라고요.”
내 감정을 몰라준 채로는, 아무리 상대를 이해하고 잘 지내려고 해 봤자 자꾸 억울한 마음만 든다. 그러니 먼저 내 감정을 충분히 알아주자. 한 번으로 부족하다면 여러 번에 걸쳐서 편지를 써도 좋다. 나의 경우, 10분씩 나흘에 걸쳐서 미움을 글로 쏟아내고 나니 그제야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이 빼꼼 고개를 든 적도 있었다.
감정의 역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분노를 자주 느끼는 편이었다. 나는 내가 분노를 ‘느끼면’ 곧 그 분노를 다 표출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분노를 쏟아내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내가 아니었기에 나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런데 분노를 참으면 표정이 굳는다거나 비아냥거린다거나, 다른 행동으로 분노가 새어나갔다. 때로는 쌓아놓은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리거나 엄한 타이밍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예 분노를 ‘느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 관대한 사람이길 바랐다. 하지만 분노를 부정하고 떨쳐버리려 할수록 분노는 내 삶의 발목을 잡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나 자신은 자꾸 ‘가해자’가 되었다. 사랑하는 동료와 멀어지고 파트너에게 버림받을(!) 위기까지 가고 나서 나는 내가 왜 분노를 느끼는지, 나의 분노를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가 내 마음공부의 스승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감정을 이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본다. 감정을 뭔가 혼란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것, 주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나누고 분노, 불안, 우울, 질투 같은 소위 ‘부정적인’ 감정은 아예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감정이 생겨나면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를 찾아오는 감정은 저마다의 기능이 있다. 지난 6월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 주인공의 마음에 새로 등장한 감정 ‘불안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 역할이 있어.”(We all have a job to do.)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 가치이자 욕구인지 알 수 있다. 분노를 자주 느끼는 나는 내 경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원칙이 훼손당했을 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인 거다. 감정은 내가 어떤 모양의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키워드인 셈이다.
“기꺼이 경험하지 않으면 언젠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 친구는 불안을 자주 느낀다고 한다. 아니 불안이 찾아오면 불안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바로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왜 열받지? 왜 불안하지?” 하며 원인을 찾는 것인데, 여기에는 불안한 건 괜찮지 않은 것이며, 빨리 불안하지 않은 상태, ‘긍정적인’ 상태로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 맵거나 단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술을 한잔 한다. 혹은 감정의 원인이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분석을 한다.. “다 지나갈 거야”라는 일견 초연해 보이는 태도마저도 그 순간의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는 회피일 수 있다.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는 것도 회피 행동 중 하나다. 그 감정과 접촉하기 두렵기에, 나에게 그런 감정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탓하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감정이 사라지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기꺼이 경험하지 않으면 언젠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스티븐 C. 헤이즈, 스펜서 스미스 공저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라는 말이 있다. 초인종을 누르는 손님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할 것이다. 계속 외면한다면? 언젠가는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이다.
나에게 찾아오는 감정을 ‘기꺼이 경험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결국 원치 않는 방식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두통이나 소화불량 등의 신체 증상일 수도 있고, 감정을 밖으로 터뜨리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방식일 수도 있다. 감정을 숨기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정작 내가 원하는 곳에는 에너지를 쓰지 못하면서 삶이 생동감을 잃고 시들어갈 수도 있다.
나를 찾아온 감정을 맞이하기– 감정 호텔
그렇다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자기 이해 글쓰기〉에서는 나를 찾아온 감정을 손님처럼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마침 프로그램 내용에 찰떡같이 맞는 그림책을 한 권 발견했다. 바로 리디아 브란코비치의 『감정 호텔』이라는 그림책이다.
손님에게 방을 내주는 호텔의 지배인처럼 우리는 먼저 감정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슬픔이 내 안에서 실컷 울도록, 분노가 내 안에서 맘껏 소리치게 해 주자. 감정들에게 방을 내주고 그 감정들이 자기를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자.
감정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방법이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로 내 감정을 실컷 분출하는 것이다. 글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잠시 멈춰서 신체 감각을 통해 내 감정에 머물러 보자. 감정은 반드시 어떤 신체 감각을 동반한다. 가슴이 미어지거나 손이 저릿저릿하며 차가워지거나 몸이 부들부들 떨리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체 감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감정을 기꺼이 경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에 압도당할 것만 같아 두렵다. 그걸 피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든 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거세게 일어난다. 그 충동까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 순간에 머물다 보면,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던 거센 감정의 파도가 지나간다. 그리고 고요함과 카타르시스가 찾아온다.
감정을 알아주고 기꺼이 경험해 보기를 제안하는 것은 이 방법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힘든데 억지로 인내하라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알아주고 허용하면 감정이 오히려 빠르게 누그러진다. 감정을 기꺼이 느끼면 누가 잘못했는지 원인을 찾거나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도 불필요해진다. 그렇게 한 번 감정을 통과한 후에는 같은 감정이라도 더 약하게 찾아온다. 또한 어떤 감정이 찾아와도 압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내 감정이 손님이라면 나는 그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아마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이라면 두 팔 벌려 환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내 안에 잠시 머물 수 있게 허용할 수는 있지 않을까? 감정 호텔의 손님들은 언젠가 떠나기 마련이니 말이다.
당신을 자주 찾아와 힘들게 하는 감정은 무엇인가? 그 감정 손님을 맞이하는 당신만의 방법은 무엇인가?
[필자 소개] 나랑.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 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기자. 14년차 인터뷰 작가. 활동가로, 페미니스트로 살아오면서 늘 한 켠에서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다. 뒤늦게 상담 심리 석사 과정에 들어섰다. 여성과 소수자들의 의식 성장을 도우며 그 길에서 나도 함께 성장하기를 꿈꾼다. 인스타그램 @hello.writing.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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