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각계에서 효사상을 고취시키려는 움직임이 크게 눈에 띄인다. 두 달전 전주를 시작으로, <부모효도하기 운동본부>가 전국적으로 발대식을 가졌고, 보건복지부에서도31회 어버이날을 맞아 전국민이 부모님께 효도전화를 드리는 효 실천운동과 같은 효’관련 행사들을 개최한다. 이 밖에 심청효행상 등 갖가지 효행상도 각 지방 자치 단체들의 적극적 지원 하에 매년 선정되는 등, 우리 사회의 ‘효’ 권장하는 문화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을 받으며 이루어지고 있다.
유교적 가치관이 아직 뿌리깊은 한국 사회에서 효를 강조하는 이러한 행사들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효를 중요한 가치로 유지시키고 싶어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초 발표한 즐겁고 건강한 설 명절을 보내기 위한 ‘설 맞이 10대 건강수칙’에 포함시킨 “효 사상을 가족구성원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라는 조항은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효’를 권장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노인을 개별 가정에 책임지도록, 정부는 해당 가정을 지원 지난 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주최한 여성정책 토론회에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은 노인문제와 관련해 “효를 중시하는 사회문화를 기반으로 노인을 개별 가정에서 책임지도록 하고,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정부가 해당 가정을 지원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국민 일보 2003.3.31> 현재 보건복지부는 부모 봉양 분위기 확산 및 가족의 노인 부양 기능 강화를 위해 부모를 모시는 가정에 상속세 감면(1인당 3천만원), 소득세 공제(1인당 150만원), 양도소득세 면제, 주택자금 융자 지원(가구당 1천만원 추가 지원) 등의 혜택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근본적 대책 없이 효만 강조하는 정부 이렇듯 ‘효’를 권장하는 정부차원의 적극적 움직임은 노인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보건복지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조사를 실시한2002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7.9%인 377만명으로,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 사회(Aging Society)에 진입했다. 우리 나라의 고령 사회 진입 속도는 세계적으로 볼 때로 빠른 수준으로 향후 보건의료, 복지 등의 문제가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변화에 맞는 노인 복지 대책 마련이 시급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장관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는 노인 문제를 가정에 일차적 책임을 지우겠다는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효’ 사상을 권장해 각 가정에서 노인 부양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는 부차적인 지원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선 가정보호, 후 국가보호는 책임 회피성 대안 이와 관련해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임춘식 교수가 논문 <21세기 노인문제와 노인복지정책의 국내외적 동향>(장수사회 경남의 미래비젼과 복지정치 학술세미나 자료집, 경남복지정책연구소, 2002)을 통해 발표한 분석은 상당히 유의미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선 가정보호, 후 국가보호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가족적 가치규범과 서구사회의 사회보장 기능을 조화시킨 매우 현실적이고 발전적인 복지모델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노인들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가 단지 국민들의 경노효친 정신이 해이되어 생겨난 것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대단한 무리이며, 노인문제에 대한 정부의 책임 회피성 대안이며, 정책 자체가 주변에 있는 많은 불우 노인들의 복지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 해야만 한다.” 임교수는 이 논문에서 “우리 사회도 언제까지나 효(孝)라는 전통윤리로만 노인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인복지는 사회가 노인들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젊은 날의 근로에 대한 노년의 보상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에서부터 사회 전체가 지혜를 짜 고령화 시대에 미리 대비해 나가야 한다” 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열악한 노인 복지 수준, 근본적인 시각의 수정이 필요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노인 복지 정책은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다. 노인 복지정책이 턱없이 부족한데다가 그나마 현재 시행되는 정책들도 잘 적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복지센터 사회복지사 전영은씨는 “거의 국립, 시립 복지관을 제외하고는 예산의 국가적 지원이 없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예산이 적다 보니 복지 혜택이 돌아가는 인원의 숫자도 적고 노인분들이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하기 힘들다”고 노인복지의 열악한 상황을 말한다. 현재 한국의 노인 복지 예산은 전체 국가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노인 복지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이 전체 국가 예산의 17% 이상을 노인복지 예산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치이다. 정부에서도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 단계로 접어든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지만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영은씨는 “이제 노인들도 과거와 다르다. 노인이라고 하면 보호대상, 지원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있는데 지금의 노인들은 고학력도 많고 사회 활동도 많이 하신다. 그런 만큼 과거의 보호 차원이 아니라 노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수정되어야 하고 현실에 맞게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효를 기반으로 하는 개별 가정의 부양이 노인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효를 버려야 노인복지가 산다 보건복지부에서는 2019년에 이르면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9.8%를 차지할 것이라는 통계 자료를 내놓았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2명당 한 명 꼴로 노인을 부양하는 셈이 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노인 복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제도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변화의 흐름 속에서 정부가 효의 개념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노인복지를 회피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도덕이나 윤리를 거론하면서 개별 가정으로 노인 복지를 떠미는 것은 노인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도 없거니와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데에도 장애가 된다. 정부는 '안일한' 효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노인복지를 살려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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