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당제가지고 ‘오버’하지 마라

총선, 여성 비례대표에 대한 언론보도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4/01/11 [21:44]

할당제가지고 ‘오버’하지 마라

총선, 여성 비례대표에 대한 언론보도

문이정민 | 입력 : 2004/01/11 [21:44]
票心의 절반…‘여성 정치’ 봄날은 온다. (주간동아, 2003-12-30)
‘여성 우대냐? 흥행 우선이냐?’ (뉴스메이커, 2004-01-02)
4월총선 레이디 파워…전국 여성 50%’ (굿데이 2004- 01- 06)


기사 제목에 선택된 어휘부터 화려하다. 2004년 4.15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비례대표 50%를 여성에게 내주겠다는 카드를 내민 것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다. 물론 여성국회의원 수가 고작 5% 근처에서 머물고 있는 현실 속에서 비례대표 50%를 여성에게 내주겠다는 각 정당의 카드는 ‘뉴스거리’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 정치인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더러 남성중심적인 정치문화가 흔들릴 기색도 없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뒤로한 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구색 맞추기’ 식으로 여성들을 넣어주는 것을 두고 ‘여인천하’니 ‘우먼파워’니, ‘여성정치 봄날’이니 소란을 떠는 것은 ‘과대포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대포장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뻥뻥 터뜨리는 식의 보도를 접하고 있으면 정치권의 여성파워가 대단해지기라도 할 듯, 대단한 변화라도 보장된 듯 보인다.

“2002년 대선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젊은 변화 주도세력이 제도권에 자리매김한 ‘사건’이었다면 2004년 17대 총선은 여성들의 정치세력화를 알리는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4년 ‘4.15’총선은 여심의 위력을 검증하는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여심의 파괴력은 얼마나 많은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하느냐로도 확인될 것 같다.” (주간동아, 票心의 절반… ‘여성 정치’ 봄날은 온다, 2003-12-30)

이 기사는 이번 총선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하느냐’가 여성들의 정치세력화를 검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여성 국회의원의 수가 많아지면 ‘여성정치’의 봄날이 올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여성정치’와 ‘여성정치인 수’의 개념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단순히 여성이 많아진다고 여성정치-여성을 위한 정치, 여성주의적인 정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할당제의 실현만으로 여성들의 파워를, 정치권의 변화를 장담할 수는 없다. 여성정치의 봄날은 아직 멀었다.

50% 운운하며 여성정치인 숫자 채우기로 부각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사실 할당제는 여성정치세력화를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 중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언론은 마치 여성정치의 시대라도 도래할 듯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언론의 이런 호들갑은 정치권의 의도와 맞아떨어진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서로 경쟁하듯 여성의원 영입을 서두르는 것은 여성들의 정치진출, 혹은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한 열망 때문이 아니다. 여성의원 영입을 통해 진보적인, 개혁적인 색깔을 입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왜 반(反)여성적일 뿐더러 보수적이기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나라당이 여성 ‘비례대표 50%’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긍정적으로 내밀었겠는가.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갑자기 가장 여성주의적인 정당이라도 됐단 말인가. ‘숫자’로만 본다면 한나라당의 여성평등지수는 여타 정당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진보적일 수도 있다.

숫자로 승부하겠다는 정당의 태도, 그리고 이 숫자에만 매달려 여성정치세력화를 논하는 언론의 태도. 실상 둘 다 여성의 정치세력화에는 별 관심도, 관점도 없어 보인다.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는 현 언론들이, 막상 '여성정치'란 무엇인지, '여성정치세력화'가 가능하려면 어떤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점검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여성 정치세력화’는 정당과 언론이 그저 필요에 의해 선정적으로 선택한 이벤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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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4/01/30 [15:30] 수정 | 삭제
  • 아에 여성이 중심으로 된 당을 만드는게 더 빠를것 같네요.
    정당내에서 주도적으로 일하기 힘들다면 아에 당을 새로 만드는건 어떻습니까?
    남다들은 걸핏하면 대선때마다 새로운 당을 잘도 만드는데 여성들은 왜 못합니까?

    5%라고 해도 일단 기존 여성 의원을 규합해서 새로운 당을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여성당이라고 하던지, 그게 부담스러우면 약자와 소수를 대변한다는 당을 만들면 의석 하나 없는 민노당보다 훨씬 나을것 같군요.

    정말 여성당으로 하던지. 총재와 위원들 핵심 인력을 여성으로 하여 창당하고
    추후에 남성의원도 받을지는 알아서들 할것이고.. 일단 창당시 여성이 주축이
    되어 왜 못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한나라당도 호남포기하고 영남만 잡고있듯이 정략적으로 남성표를 포기하고
    여성표를 얻는 전략으로 가던지...
    당내 소수보단 소수의 다른 당이 효과가 더 있을것 같군요...

    이번 총선후 여성당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 퍼옴 2004/01/15 [23:20] 수정 | 삭제
  • “여성 정치인은 후궁 신세”
    [서울경제] 2004년 01월 13일 (화) 15:01

    “여성 정치인은 후궁 신세.”

    한나라당 김정숙 의원이 13일 `후궁론`을 언급하며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정치권 행태를 비판하면서 양성평등구제 도입을 촉구했다.

    한나라당 여성위원장인 김 의원은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각당이 정치개혁을 앞두고 젊은사람들ㆍ정치신인ㆍ여성들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물꼬를 트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여성들이) 제도적으로 페어플레이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우리 당(한나라당)에서 양성평등 선거구를 가져갔을 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많이 반대했다”며 “반대하면서 마치 왕이 후궁에 반색하듯이 이름 좋은 여성을 영입하면서 광고를 하고 후궁처럼 써놓고선 다시 바로 버린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어 “오세훈 의원 얘기처럼 우리 여성들도 붙였다 뗐다 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면서 “이에 대해 여성계는 많이 화가 나 있지만 (후궁) `간택`을 바라는 이들이 있어 갈라져 있다”며 여성계의 현실을 자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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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숙 의원 "소장파가 아니라 여성이야말로 액세서리"
    [오마이뉴스] 2004년 01월 13일 (화) 16:12

    김정숙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각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성인사 영입작업에 대해 '쓴소리'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은 13일 오전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선거 때만 되면 이름있는 여성들 데려와 며칠 쓰다 버린다"면서 "오세훈 의원은 소장파가 액세서리라고 했는데 여성이야말로 액세서리"라고 꼬집었다.

    각당이 평소에는 여성인사에 관심을 쏟지 않다가 선거 때만 되면 명망있는 여성들을 영입하기 위해 마구잡이 경쟁에 나선 정치현실에 불만을 토로한 것. 그는 "(정치권에서) 그런 작태를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여성인사들에 대한 '일시적 영입'이 아닌 '제도적 영입'을 강조했다. "각당이 정치신인뿐만 아니라 여성들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데 관심을 쏟아 달라"는 것.

    또한 김 의원은 "한나라당이 여성들에게 정치참여의 기회를 주기 위해 양성평등구제를 가지고 정치개혁 협상에 나섰지만 민주당과 열우당이 반대했다"며 "정개특위가 재개될텐데 재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은 전날(12일) 상임운영위 회의에 참석해 "소장파라는 이름 아래 지난해 대선에서 정병국·김영선 의원 등과 함께 이회창 후보를 수행하면서 일종의 액세서리 역할을 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오 의원은 "선거 때만 되면 30·40대를 위한 대책을 급조하느라 야단법석을 떠는데 사실상 아무 의미없는 짓"이라며 "평소에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귀담아 들어야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다"고 당 지도부 등에 '마지막 쓴소리'를 쏟아냈다.
  • 2004/01/14 [02:10] 수정 | 삭제
  • '...선정적인 이벤트일 뿐이다.'

    좋은 지적입니다.

    핵심을 잘 찌른 기사군요.

    보수화된 다수의 여성 유권자들 뿐만 아니라, 양성평등이 실천되는 정치현실이 남성들에게도 이로움을 깨달을 수 있는 남성 유권자들의 각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선이 양성평등에 있어 또 다른 발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급한 기성정치권의 저급한 선정주의에 휘말려 함께 퇴보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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