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속 아버지와 어머니

성별 역할분리 강화시키는 광고들

강진영 | 기사입력 2004/02/08 [17:38]

CF속 아버지와 어머니

성별 역할분리 강화시키는 광고들

강진영 | 입력 : 2004/02/08 [17:38]
소위 ‘IMF 시절’에 떠오른 화두는 ‘아버지 기 살리기’였다.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이 땅의 아버지들’에 대한 격려가 요구되던 당시였다. 회사에서도 쫓겨나고, 집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에 대한 연민을 담은 메시지가 온갖 매체와 문화 영역에도 스며들었다. 반면 경제불황으로 인해 더 빨리, 더 많이 해고되는 기혼여성들과 급속도로 비정규직화되는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난 연말, 연초에 TV와 신문을 끊임없이 장식하던 것도 ‘어려운 경제 상황'이다. 청년실업, 구직 포기자에 대한 보도가 계속됐다. 이런 와중에 새해가 되자 사람들은 ‘희망’을 말하고 싶어했다. 각종 특집 프로그램에서도 ‘이웃들과 희망을 나누는’ 내용을 만들어 내보냈다. 기업들도 발맞춰 그런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는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데 주력한다. 요즘도 TV를 보다 보면, 아버지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CF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요즘 한창 자주 등장하고 있는 모 보험회사의 광고의 모토는 ‘브라보 유어 라이프’다. 이 광고는 시리즈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새해가 되어 새롭게 선보인 아이템이 바로 ‘아버지’다.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편집하여 만든 이 CF는 “아버지 사랑합니다. OOO이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마무리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는 모 은행의 광고 역시 새해가 되면서 비슷한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바뀌었다. 편안한 음악이 깔리면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아빠가 다니는 회사가 잘 되어야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됩니다”라는 음성이 나온다. 이 차분한 음성을 듣다 보면 마치 ‘아빠’만 회사에 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식의 광고에 깔려있는 건 ‘아버지’에게 힘을 주는 것이 곧 ‘가정’에 힘을 주는 것이며, 결국 ‘나라’에 힘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위에 언급한 보험회사 CF 안내글을 봐도 잘 드러난다. “새로 선보인 브라보 유어 라이프 캠페인 광고 ‘아버지’편은 사회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누구나의 마음 속에서 응원하고 싶은 존재인 우리들의 '아버지'를 응원하는 내용으로, 고객에 대한 우리 회사의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반면 CF 속에서 유독 ‘어머니’의 역할이 강조되는 건 양육, 교육과 관련한 분야다. 분유 광고, 학습지 광고에는 “우리 아이 잘 키우자”고 말하는 엄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모 학습지 광고에서는 아예 아빠가 나와서 “엄마는 가장 좋은 선생님입니다”라고 말한다. 아이 교육은 부모가 아닌 ‘엄마’의 몫이라는 것처럼. 이 회사는 올해의 자사 광고에 대해 “가르침보다 더 큰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지혜로운 엄마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냈다”고 설명한다.

21세기가 되었지만 TV광고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은 아직도 확실히 구분된다. 그것은 사회에서,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다르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광고가 이를 더욱 강화해간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TV를 보는 많은 아이들은 이런 광고를 접하면서 ‘아빠는 회사에 가고, 엄마는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 ‘경제와 기업은 남자와 관계된 것이다’, ‘아빠의 일이 가정과 국가의 근간이다’라는 식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들이 TV광고를 일상적으로 흡수하고, 쉽게 기억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CF에 승부를 거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고의 영향력과 파급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터, 그것이 성별분업을 견고히 함과 동시에 차별을 재생산해내고 있다는 사실 역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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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허 2004/03/04 [02:07] 수정 | 삭제
  • 성역할의 굴레에서 받는 고통을 자각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그 고통을 고통으로 자각할 수 있을 때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더군요... ^^
  • kill 2004/02/20 [13:48] 수정 | 삭제
  • 나도 좀 .. 여자 먹여살리려고..열심히 공부안하고..

    그냥 장가나가서..

    여자가 벌어주는 돈 받아서..

    살림이나 하고 싶다.




    까놓고 말해서..

    여자가 돈벌어서 먹여살려준다면..

    요즘에 싫어하는 남자 몇이나 있을까...



    하다못해 여자가 가장이 안된다해도..

    맞벌이라도 해준다는걸 싫어하는남자..

    도데체 몇명이나 되는지..

    알고싶다.



    솔직히..

    그렇게..

    남자의 지위가 부러우면........그냥 제발..

    의무도 가져가...
  • 루린 2004/02/14 [12:57] 수정 | 삭제
  • 왜 그런가 생각해 보았죠.
    남편이 실직하면 위로해 주고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로 이혼하고 떠나 버리거든요...
    여자들이 못되서 그럴까요? 언뜻 생각하면 그런것 같지만 이유는 다른데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많은 여자들이 (결혼생활을) 참고 산다는 걸 알았지요.
    그나마 남자들이 돈이라도 벌어다 주니 그걸로 무마하고 살고 있다는 거지요.
    헌데 이 경우 남자가 경제력마저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참아주질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쓰다보면 내가 모든 남편들을 다 나쁘게 몰아붙이는것 같은데...
    사실 책임은 남성 개인보다 결혼제도라는 구조속에 있습니다.
    가부장제라고 하는 현재의 우리 가족제도는 남성에게만 유리하게 되어있고 여성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는 형태로 되어있죠. 그리고 여성에게 경제력을 박탈하고 결혼뿐이 선택할 수 없도록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아 그 가족제도를 유지하게 만들고 있죠.
    잘나고 똑똑한 여자들이 결혼해서 애 낳아 기르고 사장되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가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볼때라도 이것은 대단히 비 효율적인 일입니다.
    저출산으로 인구도 준다는데, 인력이라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바람직 할 것 같습니다.
  • 저런 2004/02/13 [00:24] 수정 | 삭제
  • 얼마전 리서치한거...

    여자는 남편감 고를때 경제력을 우선순위에 두는거... 알기나 아냐?

    배운 여성일수록 남편의 경제적 능력을 더욱 따진다는 리서치를 보고 너네들은

    멀 느끼냐? 다 니네 여자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이야... 남자가 가정경제를

    책임지는건...

    맨날 기댈려고만 하니... 자신들이 성공해서 돈 벌 생각은 안하고... 그니깐

    너네들이 취직도 못하고 승진도 못하지... 남 탓 하기 전에 자신들 스스로 되돌아

    봐라.. 너네들은 능력없는 남자 데리고 살 자신 있냐?
  • 저런 2004/02/13 [00:20] 수정 | 삭제
  • 저런 광고는 사회적 현상을 그냥 반영한 거 아닌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남자가 여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자나... 그래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서 저런 광고를 하는거지? 무슨 남녀차별 조장시킬

    려고 저런 광고가 생겼겠냐...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거... 그거 광고의 기본적

    인 조건이자나... 사회적으로 가정경제 책임지는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살림하는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진다면 자연스레 광고가 바뀌게 된다... 그냥

    사회적인 걸 반영할 뿐... 저 광고들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건 동의할 순 없다...

    경제가 어려워져서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많은 아버지들이 많이 힘들어 하신거

    지극히 당연한 사실아니냐? 단지 그걸 반영할 뿐인데... 머가 문제라고????
  • endend 2004/02/12 [17:31] 수정 | 삭제
  • 이건 광고 자체가 남/여 로 딱 나눠서 찍은 것도 그렇지만
    남자는 휴대폰이 당신의 경쟁력/인간관계 등등
    액티브하고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활기찬 남성의 모습..
    남자만 휴대폰으로 일과 성공을 위해 열라리 일하고,
    여자는 마치 여가를 즐겁게 아기자기하게 보내기위해 휴대폰을 쓰는 것마냥...

    여자는 당신의 영화관/장난감(기억이 잘 안나네요..-.-)
    어디 의자 같은 데 기대 가지고
    수동적이고 꿈꾸는 듯이 나른한 분위기

    맘에 안들어욧1!
  • friend 2004/02/10 [22:12] 수정 | 삭제
  •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건 여성들인데 말이에요.
  • 월요일 2004/02/09 [10:24] 수정 | 삭제
  • 대한민국 이끌어 가는 건 넥타이 부대라는 걸 알 수 있죠. -_-
  • 저도 2004/02/08 [23:21] 수정 | 삭제
  • 아빠가 “엄마는 가장 좋은 선생님입니다”라고 말하는 거 보고 기가 막혔어요.

    그러고 보믄 CF는 참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버지 기 살리기와 어머니한테 애 맡기기는 고전적인 주제인데 계속 우려먹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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