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다섯의 고민과 방황

오랜 친구, 홍은경과의 데이트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4/03/08 [03:08]

스물 다섯의 고민과 방황

오랜 친구, 홍은경과의 데이트

김이정민 | 입력 : 2004/03/08 [03:08]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그녀의 ‘평범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평범함이란 별 특색 없는 사람이라는 뜻보다는 스물 대여섯 언저리의 여성으로, 누구나 조금씩 닮은 구석을 찾을 만한 그런 사람이라는 뜻에 가깝다. 고등학교 때부터 10여 년 가까이 옆에서 지켜본 그녀가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나이 들어감을 보며 나는 곧잘 그녀 안에서 나의 고민과 방황을 발견한다.

스물 다섯, 이제 이십 대 중반에 막 들어선 그녀의 생각과 방황과 바램과 일은 우리들 각자의 그것과 비슷하게 닿아있다는 느낌. 그러고 보면 우리 각자는 모두가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면서, 자신만의 고민과 방황으로 이십 대의 중반을 넘기고 있기도 하다. 결코 보편적인 삶의 궤도에 안착하지 못하면서 스물 다섯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친구 홍은경. 그녀와의 이틀간의 데이트가 자연스레 인터뷰로 이어졌다.

오후 7시 48분 서울역

그녀는 대구에 산다. 그 곳에서 스물 다섯 해를 살았고,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도 그 곳이었다. 같은 곳에서 오래 살아서일까 혹은 특유의 바람기 때문일까. 그녀는 어디로 떠나기를 좋아한다. 가끔 놀러 오면 재워줄 친구가 있는 덕분에 그녀는 종종 서울행 기차를 타곤 했다. 아직 학생이던 시절에는 방학이면 곧잘 여행을 하곤 했지만, 지금은 직장인이 되어 삼일절 같은 황금연휴가 3일쯤 생겨야 몸을 움직일 수가 있다. 직장을 가지면서 짐을 챙길 수 있는 날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디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여행 혹은 떠남에 대한 욕망.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눈 앞에서 '실천'하고야 마는 사람인 것이다. 프랑소아 오종의 영화제를 보기 위해 부산으로, 별의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로, 그리고 또 어딘가로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것 하고픈 것이 있는 곳으로 짐 싸기를 주저하지 않는 몸도 마음도 무척 가벼운 사람.

생각해보면 우리가 고등학교 이후 다시 친해지게 된 계기도 그녀의 여행 제안 때문이었다. 4년 전 겨울, 그녀와 함께 남도 일대를 돌아다니는 여행을 했다. 여자 친구와 떠난 그 해 겨울 여행을 나는 아직도 가장 즐거웠던 여행 중 하나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종종 제주도, 경주 등으로 여자 둘의 여행을 떠났었고, 그녀는 지금도 언제든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다음 날 오후 두 시 광화문

영화를 보기 직전 잠시 밖으로 나와 담배를 맛있게 피웠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바깥에서 피우는 담배.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는 한국에서 보수적이기로 손에 꼽히는 곳이다. 덕분에 그녀는 곧잘 담배를 피우는 행위만으로 투사가 되어버린다며 잠시 흥분했다. 대구 시내의 길거리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지나가던 아저씨들이 잘도 참견을 하곤 한다. 뭐라고 하는 사람보다 길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가 우스워지는 상황이라고 말하며 예의 특유의 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마 그럴 때마다 그녀는 담배를 뻑뻑 피우며 그녀 특유의 무표정을 지어 보이곤 할 것이다.

몇 년 전, 그녀는 나에게 페미니즘은 자신에게 어느 정도 이상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말했다. 지금 물어도 그 대답에는 변화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미 ‘여성’으로서의 그녀를 말하고 있었다.

그 날 저녁 우리 집

휴학 한번 없이 착실하게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카드 회사에 취직했다.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볼 적에 괜찮은 회사였다. 아마 2년 정도면 대구에서는 원룸 전세 정도는 마련할 수도 있는 보수였고, 몇 가지 적금이나 보험도 계획할 수 있었을 곳이다. 그 곳에서 그녀는 딱 6개월을 일했다. 일도 힘들었지만, 흥미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이 일을 하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여행을 하고 도착한 지역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 영화제가 열리던 그 곳에서 나는 잠시 그녀와 조우했었다. 영화제가 끝나면 다시 부산에서 시작해 서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할 것이라 했다. 그녀의 그 여행은 노자 돈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수원에서 끝났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회사 생활, 그녀는 요즘 언제쯤 회사를 정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을,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할지를 만나지 못했다.

술을 한 잔 했다. 다시 들어간 회사는 ‘집에서 노는 꼴 못 보겠다’는 엄마가 밀어 넣어 다니게 되었다. 별 일도 없이 사무실에서 혼자 하고 싶은 거 하다 돌아오는 곳.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5년 후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그녀는 고민스럽다. 사실 회사를 다니고 돈을 모으고 미래를 설계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한 인생 계획을 그리지 않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불안과 고민이 가까이 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이 정해준 수순으로 살고 싶지 않은 우리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방황하며 걸어갈 수밖에 없음을 그녀를 통해 또 나를 통해 보곤 한다.

그녀는 얼마 전에는 기타를 하나 샀다. 음악과 영화, 그 중에서도 그녀는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인터넷으로 음악 방송도 하고 동호회 사람들과 곧잘 어울리며 직장은 인생의 덤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기타를 조금 더 잘 치게 된 어느 날, 직장인들로 구성된 여성밴드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면 반가울 게다.

다시 기차역에서

키가 크고 마른 몸에 비적비적 무표정하게 걷기를 잘하는 그녀. 크게 흥분하지도 않고 크게 분노하지도 않지만 그만큼 쉽사리 변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고픈 것에 겁내거나 주저하지도 않는다. 어릴 적부터 별말 없이 큰 사고 치기를 잘 하더니 지금까지도 별 표정도 없이 엄청난 말이며 행동을 툭툭 내뱉고 마는 친구. 그녀의 타협하지 않는 모습, 날개를 접고는 살 수 없는 마음속의 에너지가 마침내 그녀가 원하는 자리에 서게 해주리라 믿는다.

“서른은 어떨까 그 때도 지금 같으면 안 되는데.”

그녀가 중얼거린다. 나는 그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지금 같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말했다. 지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고 떠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상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산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을 거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 서른 살을 꿈꾸며 그녀는 다시 대구행 기차에 오른다. 연휴의 끝, 다시 시작되는 일상 속으로 비적비적 걸어 들어 갔지만 아직은 바람일 뿐인 그녀의 이상을 일상으로 만들어 가는 일을 천천히 해나가러, 그렇게 떠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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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2004/03/09 [11:25] 수정 | 삭제
  • 읽으며 정말 내 곁에 있는 친구를 보는 것 같았어요

    적은 나이도, 많은 나이도 아니라는 게..
    스무살 때와는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인터뷰 잘 봤습니다^^
  • 2004/03/08 [15:24] 수정 | 삭제
  • 저에겐 2분 남짓이었지만 마치 이틀 동안 지켜본 듯한 느낌이 들도록 인터뷰 잘 보았어요.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그런지 저에게는 "스물다섯부터의 고민과 방황"이라고 생각되더군요. :)
  • 유정연 2004/03/08 [12:11] 수정 | 삭제
  • 아마도 지금 내가 스물 다섯이 아니였다면 기사 조차 열어보지도 않았을 것같네요. 지긋지긋한 20살 열병도 하룻밤이 꼬박 새고는 지나가 버렸고 나이에 질질 끌려다니는 일에도 무심해 졌어요. 인생의 한 텀의 끝과 시작점에 불안히 서있는 모습만이 남아 있는 스물 다섯입니다. 마지막 부분이 가슴에 아리도록 남네요. 내가 원하는 서른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거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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