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성 성매매, 돌파구 절실

인신매매 ·사기 ·협박 ·폭력 ·구금 시달려

최이윤정 | 기사입력 2004/03/15 [01:42]

외국여성 성매매, 돌파구 절실

인신매매 ·사기 ·협박 ·폭력 ·구금 시달려

최이윤정 | 입력 : 2004/03/15 [01:42]
“착취, 체불임금, 고객 외 업소주인, 매니저 등에 의한 성적 서비스 강요, 강제구금, 이동의 자유 제한.”

한국의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러시아, 필리핀 여성의 실상이다. 지난 3월 1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한국사회학회 주최로 ‘외국여성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이번 연구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외국여성의 성매매 실태를 사회학, 인류학적으로 연구한 국내 최초의 시도로, 서울경기 지역, 기지촌 지역 등에서 외국인 유흥업소 종사자 여성 195명(구소련 89명, 필리핀 1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일대일 면접조사) 및 심층면접을 진행했다.

왜 그들은 한국으로 들어오는가

외국인 여성 성매매 종사자들의 국내유입은 개인적 조건과 사회경제적 상황이 맞물린 결과다. 김현미 교수(연세대 사회학)는 “구 소련의 경우 체제 붕괴로 인한 사회주의식 평등(위로부터의 평등)이 무너지며 여성 실업이 만연하게 되고 본국에서의 빈곤, 국가경제 발전의 주요한 통로로서 해외 송출을 장려하는 정부의 분위기, 국제인신매매조직의 활성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여성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은 대개 본국에서 TV, 신문 등의 공식적인 루트를 통한 광고, 리크루트 등을 통해 정보를 얻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공신력으로 인해 해외 취업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더욱 조성된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여성 대부분은 대학 재학 중이거나 대졸, 적어도 고졸 학력 이상으로 본국에서 판매원, 의상 디자이너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단순한 서빙, 노래, 춤 등 조금만 맞춰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온다. 외국인 여성들 중 90.9%가 '예술흥행'(E-6) 사증으로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는 설문조사결과는 이들이 ‘엔터테이너’의 자격으로 국내에 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현지에서 ‘공장에서 취업사증을 얻어가지고 오면 윤락으로 빠진다’는 소문이 무성해, 오히려 ‘엔터테이너’로 오는 게 안전하다고 인식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입국 이후 접하는 성매매 ‘현실’

그러나 외국인 여성들은 입국하면서부터 이러한 정보들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일례로 이들이 받는 오디션은 가창력 심사보다 캬바레 춤, 야한 옷 입어보기 등이 각각 42.0%, 30.3%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종업원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중에서 응답자의 33.5%가 ‘섹스’라고 응답하고 있다. 또 고객 외에도 27.0%가 업소주인에게 성적 서비스를 강요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설동훈 교수(전북대 사회학)는 “심층면접대상자 중 단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성매매를 강요 받은 적 있다고 말한 것으로 봐서,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들어왔다고 해도 대부분 직, 간접적인 성매매를 강요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고용계약서를 작성하지만 그 내용 파악이 전혀 안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담당 업무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43.1%에 달하고 있어, 고용계약서는 사실상 형식일 뿐임을 알 수 있다. 한건수 교수(강원대 문화인류학)는 “외국인 여성에게 모국어로 번역된 고용계약 내용을 본 경우는 37.6%에 불과해, 내용을 정확하게 숙지하지 못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계약서의 내용이 잘못 번역되거나 다르게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비디오를 통해 하는 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는데, 본 것과 실제로 하는 일이 전혀 달라서 당혹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기본적인 정보조차 점검하지 못하고 고용된 이들은 휴일 없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 저녁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휴일 없이 일하며, 손님이 있는 한 노동시간은 새벽 4, 5시까지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이 받는 임금은 얼마인지 정확히 모른다. 삽입 섹스의 경우 1회당 고객이 지불하는 금액이 약 23만원인데 비해, 종업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약 6만원에 불과할 뿐이다. 30%정도만이 본인에게 돌아갈 뿐, 나머지 70%는 업주에 의해 착취되고 있는 셈이다. 또 착취, 체불임금에 대해 응답자 중 52.9%가 ‘받지 못했다’고 대답해 기본적인 임금마저 보장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도 모르는 빚더미에 휘말려

이러한 착취구조 속에서 이들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는 부채, 빚에 의한 속박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강제구금 등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업주들은 외출 2시간이 넘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등 일상생활을 통제하고 있다. ‘업소이동’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는대 2차를 거부하거나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 업주가 불만을 갖게 되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업소이동’을 시킨다. “업소이동은 일종의 벌칙 부과로서, 여성들은 점점 ‘bad club’(노동조건이 나쁜 업소)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게 한교수의 설명이다.

적절한 업소에 배치될 때까지 기다리는 '대기'(waiting) 제도가 있는데, 이 기간에는 월급이 전혀 지불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의 제약이 뒤따른다. 특히 대기 기간에 벌금과 폭언, 신체적 폭행이 이뤄지고 있어,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필리핀 여성 인신매매 피해사례를 법률적으로 지원했던 고현웅 국제이주기구 서울사무소 소장은 “현재 필리핀 현지에 있는 11명은 실질적 무직 상태이며, 일부는 한국 말고 일본 등에 엔터테이너로 가겠다고 하고 있어 여성들이 다시 인신매매 상황으로 노출되기 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산업연수생, 이주노동자 등의 적법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신매매’ 개념 넓혀야

연구결과 발표에 이어, 외국인 성매매 여성의 인권 보장과 정책적 대안 토론에 참여한 조국 교수(서울대 법학)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비(非)법적, 비(非)형법적인 고민이 더욱 중요하다. 법적 해결의 한계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중요한 것은 운동을 통한 판례, 사안을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했다.

김은실 교수(이화여대 여성학)는 외국인 성매매 여성들을 ‘인신매매된 자’로 설명하고 이에 대한 법률적 작업을 제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발점은 “그들이 갖고 있는 실상으로부터 피해여성을 범주화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신매매를 규정하는 몇 가지 기존 속성에 따르기 보다는, 이들의 현실적 조건이 얼마나 강제적이고 구조적인가에서 출발해 ‘인신매매’ 개념을 재구성하자는 입장이다.

김교수는 또 성매매 여성의 수입, 이윤의 출처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성을 강조했다. “팁이 중요한 임금으로 구성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들 자신에게 들어오는 돈은 1차적인 계약금이 아니라, ‘2차 활동’을 통한 비용이란 점에서 이윤의 출처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실상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남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성 시장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는지, 성 시장이 어떻게 인종화되고 확장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비법적, 사회적 차원에서의 해결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라고 제언했다.

김현선 새움터 대표는 “1990년대나 현재나 똑같은 장소에서 업소 이름도 그대로, 창살도 그대로”인 현실을 토로하며, 이번 조사과정에서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외국인 여성이 유입되는 경로 가운데 인력송출업체, 대중매체의 공식적 경로 외에도 친구, 아는 사람, 결혼 알선 에이전시를 통해 들어오는 사람이 더 많은데 이 부분이 누락됐다”는 것이다. 김대표는 “아는 사람, 친구, 친지를 통해 들어왔다고 해도 이를 ‘자발적’ 혹은 ‘사적 활동’으로 볼 게 아니라, 실제로 인신매매 여성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을 감안해볼 때 이 역시 ‘인신매매’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강실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이번 연구에서 “외국인 여성 성매매의 확산에 미군이 미친 영향이 별로 언급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들 중에서 외국인 여성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런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또한 “미국의 ‘인신매매및폭력피해자보호법’의 경우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에게 임시체류자격, 합법적 거주의 권리, 취업허가 등을 주는 것처럼 우리 나라도 법적인 보완이 더욱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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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ace 2004/03/17 [20:19] 수정 | 삭제
  • 못사는 나라고 또 여자라고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 몰라요.
    술집이나 나이트같은 데 있으면 더 심하겠죠? 생각하기도 무섭네요.
    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노예취급하고 그러는지 참 무섭습니다.
    성매매 피해여성들, 그리구 외국인여성들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 남기 2004/03/15 [03:36] 수정 | 삭제
  • 잘 보았습니다. 일어나는 토론이나 연구물을 대중에게 빠르고 쉽게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성매매에 대한 범주를 넓혀 고민할 필요가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법의 한계 내에서가 아니라 현실 맥락에 맞게 적용을 넓혀야 한다는 게 동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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