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들 ‘물 살리기’

여성의 눈으로 물 문제를 바라보다

이안소영 | 기사입력 2004/04/05 [00:14]

아시아 여성들 ‘물 살리기’

여성의 눈으로 물 문제를 바라보다

이안소영 | 입력 : 2004/04/05 [00:14]
<필자 이안소영님은 여성환경연대 연구조사위원회와 ‘꿈지모’(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물은 모든 생명이 자신의 삶을 지속시켜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며, 깨끗한 물을 얻는 것은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물 문제는 심각한 삶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시아 각 지역에서 물 문제와 관련하여 여성들이 어떠한 전략과 감수성을 가지고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지, 그 운동이 어떤 결과를 거두고 있는지, 이러한 운동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에 대해 토론하는 장이 마련됐다. 지난달 26일~28일 제주도에서 개최된 지구시민사회포럼에서는 한국의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특별포럼으로 아시아여성환경회의가 열렸다.

물과 여성 삶의 관계

중국, 일본, 한국 등지에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혹은 물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운동 사례들이 발표됐고, 물 이슈가 식생활과 건강의 주 관리자인 여성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지구시민사회포럼에 참가했던 세계 각국의 NGO 활동가들 70여명은 세 시간이 넘도록 열띤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다.

이레나 단켈만(WEDO 여성과 환경분과 자문위원)은 물 문제의 인간적 면모를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하면서 젠더(gender) 관점으로 물 문제를 파악하는 방식을 보여줬다. 대부분 사회에서 여성과 소녀들이 취사, 목욕, 청소, 건강과 위생유지, 작은 가축 사육과 작물재배를 위한 모든 물을 댄다. 시골 여성과 아이들 특히 소녀들은 물과 연료를 가져오기 위해 갖가지 폭력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지역까지 먼 거리를 걸어 다닌다. 무거운 운반 용기를 나르는 데 매일 4-5시간이 걸리고, 이로 인해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받는다.

인도의 라지스탄에서는 물을 길어오기 위해 여성들이 6킬로미터씩 걷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다. 동아프리카의 산악지역 여성들은 섭취열량의 27%까지 물을 긷는데 사용한다. 이들은 깨끗한 물을 얻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자급활동과 교육을 포함한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

“물 긷느라 학교 갈 수 없어요”

이레나 단켈만은 세계화로 인한 물 자원의 사유화가 계급적 불평등 문제와 더불어 성별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성들은 천문학적인 물가상승, 물 차단, 수질악화, 건강과 위생위험의 형태로 사유화 정책의 부담을 불공평하게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아오 쉐리(중국, 지구촌-베이징 회장)는 댐 건설 문제와 함께 중국 내몽고의 사막화 문제와 여성노동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중국의 총 토지 중 1/6은 심각한 토지침식에 의해 훼손되었으며, 중국의 삼림지 구성비는 전체 표면적의 13%도 채 되지 않는다. 매년 3000 평방 킬로미터가 사막화되어 먼지 폭풍 등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그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는다. 과도한 방목은 초지의 사막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학교 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어요.” 리아오 쉐리가 인터뷰한 한 주민의 말이다. 황사로 인한 질병에 걸리는 아이들이 대부분 남자아이들이라는 조사결과가 중국 내 지역에서 발표된 적도 있는데, 그 이유는 여자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 살리고 환경 살리는 여성들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은 물과 관련된 자신들의 관심을 강력한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은 우크라이나에서부터 볼리비아, 미국에 이르기까지 물 서비스 부족에 항의하고 있으며, 북인도 히말라야의 칩코운동에서부터 한국, 인도네시아, 케냐, 네덜란드에서는 물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

강미애(학장천살리기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직강화되면서 오염된 도시하천 학장천(부산 사상공단내)을 살리는 지역주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의 활동과 성과에 대해 발표했다. 지역하천을 살리는 운동은 지자체의 가부장적 행정처리 방식에 의해 번번이 무시당하고 좌절됐지만, 여성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서서히 성과를 얻어냈다. 이는 지역주민이 함께 하는 진정한 의미의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의 사례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강미애씨는 “하천 살리기 운동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생명 살리기’ 운동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유 테라시마(일본 가와베가와 살리기모임 코디네이터)는 ‘가와베가와 댐을 통해 본 인간정주문제’라는 발표를 통해, 일본 남서지역에 위치한 가와베가와 댐 건설의 과정과 지역주민의 댐 건설 반대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와베가와 댐 건설 계획은 주변 어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풍부한 자연환경과 전통마을의 생활모습을 파괴하며, 주민참여 및 정보공개의 부재 등의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은 이 지역에서 유기농 채소를 길러 판매하면서 지역의 생태친화적 삶의 방식을 몸소 보여주었다. 가와베가와강을 살리는 여성들의 모임은 4년 전 만들어졌는데, 독특한 방식으로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이들은 현지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판매한 돈으로 가와베가와강 살리기 자금을 마련하여 지역공동체가 지속되어야 할 이유를 설득하며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냈다.

왕용첸(녹색지구를 위한 자원활동가들)은 세계자연유산 중 하나인 누지앙강과 시츄엔 두지안관의 양리우후댐 건설 반대운동에서 보여준 여성들의 끈기와 지속적 노력에 대해 발표했다. 여성들은 생물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 간의 상호적 관계를 인식함으로써, 원주민의 삶의 방식 및 전통적 문화뿐만 아니라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자연환경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여성환경회의에 모인 세계 각국의 여성들은 각국 사례 발표 후 토론을 거쳐 정부회의에 제출할 권고안을 공동 작성했다. 권고안엔 물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인지하고 보호하며, 안전한 물과 토지에 대한 여성의 접근과 관리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모든 물, 위생정책과 기관에서 성(젠더) 주류화를 보장할 방법을 촉구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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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컬리수 2004/04/06 [09:32] 수정 | 삭제
  • 자연파괴. 환경문제는 정말 성별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엽차 2004/04/05 [11:16] 수정 | 삭제
  • 기사 잘 읽었습니다..
    물 긷는 노동을 하고 물 살리기 운동을 하는 여성들 이야기..
    전달해주셔서 고맙게 보았어요.
    여성 생태주의 관점도 배우는 것 같고..
    일다에 오면 항상 무언가를 배워가지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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