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모험소녀

부산문화정보지 <보일라> 발행인 강선제

별리 | 기사입력 2004/04/11 [19:26]

21세기 모험소녀

부산문화정보지 <보일라> 발행인 강선제

별리 | 입력 : 2004/04/11 [19:26]
그는 부산문화의 불쏘시개다. 너무 추켜세우는 게 아니라, 이 정도 표현은 해야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액티브하며, 심지어 희생적이기까지 한지 알 수 있을 게다. 편의상 짧게 소개하자면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부산문화정보지 'VoiLa'의 발행인이자 디자이너인 ‘강선제’님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부산대앞 문화지역주의잡지 <첸지>에서다. 솔직히 썩 맘에 드는 잡지는 아니었지만, 발행할 때마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눈매가 매운 여자가 등장하는 일러스트였다. 그 일러스트의 끝에는 강선제라는 이름이 있었다. 자신이 그린 그림처럼 ‘강’한 한편, ‘선’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상대방을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이름 안에 담긴 뜻은 “편할 강, 부채 선, 이끌 제, 바람을 일으키고 그것을 다스린다라는 뜻이야. 죽이지?”란다. 사람과 이름이 어쩜 이리 잘 어울릴까?

팬으로서 왜 일러스트 안 그리냐고 화를 내듯 물어보았다. “일러스트 팬들이 꽤 되었지. 그런데, 예쁘기만 하고 금새 그려지는 그림이 쪽 팔리더라. 말하자면, 그 일러스트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의 최종산물과 같아. 내가 하고 싶은 건 속 깊은 이야기인데, 일러스트는 그게 어렵지. 그리고 <보일라> 한다고 시간도 없고.”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로만 알고 있었던 그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졸업과 함께 2년간의 <첸지> 생활을 접고 <보일라>라는 본격지역문화잡지를 어떤 대자본에 기대지 않고 쌈짓돈 털어 창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부터다. 서른도 안된 젊은이들의, 가난하지만 신선한 손때가 묻은 문화잡지가, 부산에서 만들어진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자신의 끼와 능력을 펼칠 공간이 없다는 변명 섞인 절규를 내지르며 도망치듯 서울로, 서울로 떠나는 능력자들을 많이 보아왔던 터라, 기꺼이 맨바닥에 헤딩하겠다는 그의 뚝심이 궁금해졌다. 그 결심을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부산에 재능 있고 성실한 작가들이 없는 게 아니라, 있긴 있는데 그네들이 작품을 발표할 장이 없으니까 어느 순간 제풀에 지쳐서 관두거나 다른 곳으로 도망가게 되어있거든.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 심지어 미대 다닐 때, 전공교수가 학생그림 훔쳐서 전시했던 사건이 있었거든. 학교 게시판에 올리고 나 혼자서 난리를 부렸지만 미대사람들 모두가 침묵했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학과 조교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하고. 구조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힐 수가 없는 곳이야. 내가 그렇게 설치고 나니까 선배들이 술 먹고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 미안하고 불쌍하고 열 받았어. 이것이 우리사회의 단면이라고 생각했어. 학교와 사회는 재능 있는 사람을 키워주는 공간이 아니라, 입을 막고 갉아먹는 공간이라고.”

“나는 지역주의자, 문화주의자”

그가 우스갯소리처럼 말하는 “분해서” <보일라>를 만들었다는 얘기엔 그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그런 상황에서 내 작품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할 것이고, 그래야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강선제, 송추향 두 여자가 모여 2002년 6월 창간된 <보일라>는 문화정보지 형태로 판형을 바꾸는 변화를 거쳐 19호에 이르고 있다.

그는 구체적이고 행동지향적인 사람이다. 사람과 밑그림이 눈에 보이는 것에는 굉장히 활력적이지만, 추상적이고 이념적이고 이론적인 활동과는 친하지 않다. 삶의 목표와 그 방식에 대해서는 뚜렷하되, 그것을 무슨 무슨 ‘주의’로 구분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한때 엄청난 팬을 거느렸던 멋진 일러스트를 그려낼 능력과 세상 어느 누구 못지 않은 말발과 혜안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지식인이나 예술가보다는 기술자에 가까운 사람이라 좋다는 이야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그가 ‘지역주의자’, ‘문화주의자’를 자청하며 사는 게 조금 놀랍다.

“대학 4년 동안 야학을 하면서 배운 게 ‘수신제가치국평천하’거든. 내 몸을 닦고 내 가족을 사랑하고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아끼고 사랑하는 게 삶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챙기지 못하고 큰 것만 생각하는 거야.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사는 부산에서 주인으로 사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어. 나에게 있어서는 그 방법이 문화인 것 같아.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공부나 이념이 아니라, 노래, 풍물, 글쓰기 이런 그릇을 통해서라고 생각해.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 했던 연극을 통해서 바뀌었고. 모든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만족한다면 그게 바로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이 아닐까? 그게 분명해서 <보일라> 만드는데 갈등은 없어. 죽을 때까지 할 꺼다.”

물론 명분이야 누가 봐도 그럴듯하지만,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질긴 생명 줄을 이어가는데 힘든 점은 없었을까? 그가 <디자인 보일라>를 통해 버는 수익의 대다수는 <문화정보지 보일라>를 통해 까먹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갖고 있는 단 두 개의 통장은 <보일라>의 통장이 되어있고, 비밀번호를 보일라 구성원 모두가 다 알 정도로 ‘투명경영’을 실천하고 있는데, 솔직히 이건 투명경영이 아니라 사장의 사생활침해수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위기감을 느끼는 순간은 없을까?

“위기감이라기 보다는 힘든 점이 있지. 돈. 그리고 같이 하던 사람들이 떨어져나가는 게 힘든 점이지. 사람들이 <보일라>를 훌륭하다고 하는데, 훌륭한 걸로 먹고 살 수 없잖아? 먹고 사는 걸 막연하게 생각하고 <보일라>를 함께 하다가 생활이 안되니까 떨어져나가는 거야. 나를 사업동반자로 보는 게 아니라 믿고 따르는 언니, 내지는 사장으로 보는 거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을 벌게 하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니까. 그 선까지 가기 위해서는 주인의식과 지구력이 있어야 하는데, 나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하는 건 힘들거든. 말하자면 개척자 정신(?) 같은 걸 나만 가져서는 안되거든. 근데, 조만간 그런 문제는 없어질 거야. <보일라>가 망할 회사가 아니거든.”

행복지수 만땅인 액티비스트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런 식이다. 이것 저것 자신의 상황에 대한 고민을 아무리 유도심문(?)하려 해도 대답은 너무 썰렁하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수다 떨고 얘기 들어줄 사람 있으면 된다”, “내 편 한 명만 있어도 행복한 세상이다".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이야기하듯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다.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가 자신을 갉아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상처와 분노를 통해 세상을 바꾸어낼 힘을 기르고 퍼뜨리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액티비스트’라고 칭할 것이다. 그는 그런 액티비스트 중 한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맨땅에 헤딩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

지난해부터 참여하게 된 <재미난 복수>라는 거리축제의 이름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재미있게 사는 것만큼 지상최대의 복수’가 어디 있겠냐는 뜻이란다. “재미난 복수? 취재할 게 없어서 하는 거지.” 또 이렇게 허풍스런 대답을 던지지만 사실, 그 뒤에 “부산대 앞이 그래도 부산시내에서는 제일 큰 대학로인데, 유흥문화가 너무 심하게 판치는 한편으로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공간은 전혀 없잖아. 거리의 주인이 되기 위해 차 없는 문화거리를 조성하라고 행정당국에 압력을 넣기 위해서 벌이는 잔치지”라는 대답을 숨겨놓고 있다.

옛날에 얼핏 각기 아빠가 다른 아이 10명을 낳아서 키우는 게 꿈이라는 소리를 듣고 놀란 기억을 더듬어 물어보았다. “아니 무슨 내가 용가리통뼈라고 10명이나 어떻게 다 키우노. 5명이다. 5명. 멋진 애들을 만들어서 멋지게 사는 걸 보고 싶어서겠지. 근데 그러려면 경제적으로 받쳐줘야 하니까 지금은 좀 힘들지.”

그러고 보니, 개나 고양이도 굉장히 많이 키웠다. <보일라> 사무실에서 6마리까지 키워 모두 출가(?)시켰고, 지금은 보동이라는 이쁜 똥개를 키우고 있다. “개나 고양이 무지 좋아하지. 내가 직접 사본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사람들이 갖고 와서 키워달라고 하고, 또 더러는 직접 찾아오기도 하고 했어. 신기한 게, 걔들이 나를 졸졸졸 따라다니더라. 원래 고양이들을 절대 따라 다니는 습성이 아닌데 말이지. 참 신기해.”

남들이 보기엔 대단한 여자군 하겠지만, 정작 본인은 매력적인 여자들만 실린다는 일다 인터뷰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에 좀 겸연쩍은 듯 하다. “나는 진짜 안 훌륭한 거 같아. 나보다 멋진 여자들이 너무 많고 그 여자들이 성장할 수 있게 뒷받침해주고 싶다”는 이 여자, 보통 사람보다 모성애(?)가 10배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 부산이라는 지역과 문화 현실 뭐 이런 것들을 기꺼이 책임지고 키우겠다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애정과 몸에 밴 참견정신(?)이 ‘강선제의 힘’ 아닐까?

요즘 그는 <보일라>의 수익구조를 보다 적극적으로 창출하기 위해서 사무실을 한 켠에 둔 ‘보일락(報一樂: 신문 하나로 즐겁다)’ 카페 오픈 준비로 무지 바쁘다. 한복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익힌 재봉기술로 커튼도 만들고 공구상자를 옆에 두고 책장도 짠다.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예뻐 보이는 그가 더욱 오래오래 <보일라>를 만들 수 있도록 건강도 좀 챙겼으면 좋겠다.

보일라 www.voilamania.com
재미난 복수 funnystreet.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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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4/15 [11:38] 수정 | 삭제
  • 아직 글은 읽지 앟았지만, 일러스트와 표지가 맘에 듭니다.
    강선젬씨에게 그림 배우고 싶어요.
  • 해진 2004/04/15 [00:27] 수정 | 삭제
  • 저도 지역에서 여성 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지역이라는 핑계하에 졸업하고 제 뜻을 좀 더 자유롭게
    펼치고 더 많이 배우고 자극 받고 싶어서 서울로 가고 싶었고,
    그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

    강선제님의 삶을 들여다 보지 않았을 때,
    지역의 한계점을 극복하려는, 개척하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았는데요.

    그렇지만 더 의미있는 운동은 이미 개척된 땅에 가지를
    뻗는 게 아니라,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려 땅이 풍요로워
    져 숲이 생길 수 있도록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저의 틀을 깰 수 있는
    좀 더 실험할 수 있는 곳에서 좀 더 배워서 다시 지역으로
    발돋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지역은 자극과 모험과 배움에 있어 열악하거든요.

    예! 힘차게 달려나가는 당신께
    버거워 힘든 일이 많았을 당신께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같은 지역에 산다면, 한 번 뵙고 싶네요!
    건강하세요!
  • 멋져요 2004/04/13 [03:51] 수정 | 삭제
  • 집이 원래 부산인지라 그 때 부산대 앞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천원 내고 샀었는데 대자본에 기대지 않고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멋진 잡지더군요. 하하 그 때 보일러 팬이 됬었는데 요즘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도록 한 듯 하더군요. 근데 책이 무료로 바뀐건지?
  • coco 2004/04/12 [15:14] 수정 | 삭제
  • 일러스트에 대한 설명이 인상 싶어요. 저도 일러스트 그리거든요. 아직 전문적이지는 않지만요. 제 고민도 그런 부분이 있는데 속 시원히 말씀해버리시는 거 보고 왠지 창피한 맘이 들었어요. 옛말인지 어떤 교휸에 용기기 았으면 길이 있다고 했는데, 강선제님은 용기가 있는 분 같아서 부럽네요.
  • 나도 2004/04/12 [14:13] 수정 | 삭제
  • 지역을 떠나지 않고 거기서 활동을 펼쳐나가는 사람들 멋집니다. 맨땅에 헤딩 정신도 훌륭합니다. 여기가 부산이 아니라 잡지를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재밌을 것 같네요. 부디 오래 발간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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