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기 근대화와 여성의 삶 재조명

<여성의 근대, 근대의…>과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4/08/08 [17:12]

식민지 시기 근대화와 여성의 삶 재조명

<여성의 근대, 근대의…>과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김윤은미 | 입력 : 2004/08/08 [17:12]
식민지 시기를 재조명한 책들이 몇 년 새 많이 등장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일제의 압박,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 혹은 친일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 식민지 시기를 다루지 않는다. 어찌됐든 간에 일본을 통해 이식된, 복잡할 수밖에 없는 근대화 과정을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은 식민지 시기에 근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이 어떠했는가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 두 책도 위 관점을 따르고 있다. 두 책은 모두 식민지 시기 여성들의 변화를 주제로 삼고 있다.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된 1920년대, 여성들은 ‘신여성’, ‘모던걸’ 등의 이름으로 근대화의 표상이자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명칭들은 표피적인 이미지에 불과했다. 여성들이 실제로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급진적 자유주의 신여성’ 등 세 범주화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펴낸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태혜숙 지음)은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당대 신여성들에 대해, 그리고 근대화가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신여성들을 둘러싼 담론들을 중심으로 여성들을 분석하고 있으며, 논쟁적인 의견이 많이 제시된 편이다. ‘신여성의 범주화를 시론’에서 임옥희는 신여성들을 세 가지 갈래로 범주화한다.

신여성이란, 보통 근대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어떤 근대 교육을 받았으며 어떤 영역에서 활동했는가에 따라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나혜석 등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한, 잘 알려진 여성들의 경우 봉건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윤리를 거부하고 사적 영역에서 여성의 자유를 외쳤다는 점에서 ‘급진적 자유주의 신여성’으로 볼 수 있으며, 계급철폐와 여성해방을 동시에 외친 여성들은 ‘맑스주의 신여성’이라 할 수 있다. 김활란 등 여성교육자들의 경우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계몽주의 신여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신여성들은 전적으로 서구와 일본의 영향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들의 행로는 만만치 않다. 급진적 자유주의 신여성들의 경우, 국가가 없기에 자신의 남성적인 정체성을 제대로 세울 수 없었던 ‘거세된’ 식민지 남성지식인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다.

한편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노골적으로 친일행위를 했던 김활란, 모윤숙, 노천명의 경우, 그녀들에게 민족/국가가 어떤 작동을 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임우경은 김활란처럼 기독교와 서구를 지향하는 경우나, 모윤숙이나 노천명처럼 일본 제국주의와의 동일시를 지향하던 경우 모두 근대적 체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했으므로 이들이 근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친일행위를 했다고 주장한다. 일종의 ‘의사 국민화’인 것이다.

분열적 정체성과, 이들에게 쏟아진 비난

한편 김경일의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푸른역사 펴냄)은 신여성들과 그들의 경험에 대해 노동과 직업, 교육, 소비 등 영역별로 접근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여성들의 생활에 큰 변화가 일었다. 소비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소수의 여성들이 유행을 주도했으며, 제한적이긴 했지만 교육을 받는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고, 여성들이 도시에서 직업을 가지는 것 역시 세속적인 현상이 되었다.

물론 많은 한계가 있었다. 여성교육의 경우 그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고 차별적이었으며, 식민지 전반기에는 황국의 어머니로서 가업을 책임지는 의무를, 후반기에는 전쟁을 위한 노동력 동원을 위해 실시됐다. 직업 역시 193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경제적 독립이 자유의 무기임을 깨달은 신여성들이 개인적인 동기에 의해 직업을 가지기 시작했으나, 취업은 임시직이 많았으며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 그리고 성희롱에 노출되어 있었다.

김경일은 신여성이 시대적으로 다른 변화를 겪었음을 분석한다. 여성들이 성 평등과 여성정체성을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19세기 말 기독교 교육의 영향이었다. 때문에 소수의, 근대적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여성들에게 서구는 하나의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나혜석의 경우가 보여주듯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서구를 동경하면서도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생각하는 분열적인 정체성을 가진다.

이들은, 특히 자유주의적 신여성들은 1920년대에 성적 자유를 외치며 소설과 칼럼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급진적인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곱지 않았으며, 1930년대 공황으로 말미암은 빈곤과 실업, 일본 군국주의의 심화 등으로 말미암아 진행된 사회 전반적인 보수화 물결 속에서 그녀들은 공개적으로 비판 받으면서, 공적 영역에서 사라진다.

여성들의 근대화 ‘수용’과 ‘저항’

이처럼 여성들의 변화는 사회적으로 큰 관심거리였다. 특히 신여성의 신체적 변화는 전통과 근대, 남성과 여성의 의식 면에서 첨예한 대립의식을 불러왔다. 예컨대 단발에 대해 남성들은 여성들이 단발하는 것을 일종의 남성모방이자 과시심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단발은 편리했으며 해방감을 가져다 줬다.

여성들의 단발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했는데, 첫 번째는 근대적 합리성과 능률을 따른다는 점에서 전통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두 번째로 맑스주의자 여성은 단발이 남성지배의 자본주의 사회 비판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맑스주의자 여성들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가 여전히 길었던 전통적인 여성들과 친하기 위해서는 다시 장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근대화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저항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식민지 교육은 가사를 중심으로 ‘현모양처’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여학생들은 교육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있다고 비판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새롭게 출현한 여성공간 중 하나인 공장 기숙사의 경우 남성에 비해 착취하기 쉬운, 순응적인 여성노동자를 만들려고 근대적인 시간표와 규범을 통해 여성훈육을 시도했지만 이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 같은 면모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상황과 상당 부분 연결된다. 때문에 여성의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은, 현재의 불평등한 구조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작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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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둥 2004/08/13 [11:13] 수정 | 삭제
  • 대개 근대라는 공간 속에서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은 소위 "신여성" 이라는 존재잖아요?

    하지만 근대 속에는 신여성 뿐만 아니라 "구여성"도 엄연히 존재했죠..
    (아, 물론 신여성/구여성이라는 구분(혹은 언어?)도 문제적..)

    여튼
    '신여성'을 조명하면서 아울러 동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구여성'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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