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중계 ‘차별’적 발언 물의

메달 수로 국가자존심 논하는 태도도 문제

박희정 | 기사입력 2004/08/30 [03:18]

올림픽 중계 ‘차별’적 발언 물의

메달 수로 국가자존심 논하는 태도도 문제

박희정 | 입력 : 2004/08/30 [03:18]

아테네 올림픽은 108년만에 근대올림픽의 발상지인 아테네에서 개최된다는 것 말고도, IOC 201개의 회원국 전부가 참석한 대회라 더욱 주목받았다. 각국에서 내 놓으라 하는 선수들이 모이고, 시청자들의 이목은 집중되었으며, 방송사들의 중계경쟁은 치열했다.

“저 선수 남자같이 생겼죠?”

스포츠 중계의 특성 상 시청자들은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가에 설명에 귀 기울이게 된다. 따라서 해설자들은 전문지식을 적절하게 전달해야 하는 스포츠 전문가로서의 의무와 동시에 언론인으로서의 책임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중계방송에선 해설자의 자질이 의심될 정도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언설과 성차별적, 인종차별적인 발언들이 나와 시청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여자양궁 8강전을 중계하던 SBS의 서향순 해설위원은 한국선수의 상대선수로 나온 대만의 위안 슈치에 대해 “남자같이 생겼죠? DNA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요. 또 여자를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스포츠 중계방송에서 여자선수의 ‘외모’를 두고 조롱에 가까운 표현을 한 것이다. 여성스럽지 않은 외모를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동시에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시선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한편 리듬체조 경기를 중계하던 KBS의 한 해설위원은 흑인선수가 나오자 “피부색은 검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표현을 했다. ‘검다’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리듬체조와 같이 소위 ‘여성적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스포츠의 경우, 해설과정에 선수의 ‘외모’에 대한 언급이 많다. 앞서 해설위원의 경우, 동구권 출전선수에 대해 “얼굴이 너무 아름답죠” 등의 찬사를 보냈다.

이처럼 성차별, 동성애자 차별, 인종차별적인 해설위원들의 발언은 ‘전문가의 해설’로써 공중파를 타고 일반인들에게 전달됐다. 스포츠 해설위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기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의식도 포함된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경기내용이 어떻든 이기면 된다?

한편 금메달을 딴 정지현 선수의 레슬링 경기가 나간 후 인터넷상에서는 소위 ‘심권호 어록’이란 것이 화제에 올랐다. 정돈되지 않은 동네 아저씨 스타일의 중계가 코믹함을 불러일으킨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웃고 넘기는 사이사이에 위험한 발언들도 흘러나왔다. 정지현 선수가 상대 편 나자리안 선수 손을 잡았을 때 심권호 해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네 좋아요. 지금 심판 안보고 있어요. 심판 안 볼 땐 저렇게 잡아야 되요.“

스포츠 중계라는 것이 무색하다. 정해진 규칙을 어기는 것도 기술의 하나인양 말하고 있다. 서투른 해설자의 실수로 넘길 수만은 없게 하는 것이 이런 표현이 ‘유머’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에 편승해 언론 또한 너나없이 ‘심권호 어록’을 기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령껏 반칙해라’는 발언을 ‘재치’있다고 박수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숱한 경기중계에서 한국선수들과 겨루는 상대편 선수를 깎아내리고, 실책을 환영하며, “또 실수할 거다”라는 식의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은 한편으로 올림픽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시선과 의식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메달에만 관심을 갖고, 기대했던 선수가 제대로 경기를 풀어내지 못했을 때 대역죄라도 지은 것처럼 비난을 하는 문화가 아직도 팽배해있다.

올림픽의 정신은 ‘아마추어리즘’이며, 많은 이들이 올림픽의 의의 중 하나로 ‘공정한 스포츠 경기를 통한 세계화합’을 이야기한다. 언론을 비롯해 스포츠 관계자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은, 메달 수로 국가자존심을 논하는 태도가 올림픽의 의의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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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롬 2004/09/04 [13:50] 수정 | 삭제
  • 기사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사족으로 이야기할 것이 있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올림픽의 정신은 ‘아마추어리즘’이며, 많은 이들이 올림픽의 의의 중 하나로 ‘공정한 스포츠 경기를 통한 세계화합’을 이야기한다."

    이상적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입니다만, 사회에 대한 일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이 올림픽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 대해서 아쉬움을 느낍니다.
    사실 올림픽은 세계 평화, 화합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쿠베르텡이 올림픽을 창시할 무렵 쿠베르텡의 나라 프로이센[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이 전쟁이 져서 국가 전체가 침체된 분위기였습니다. 이때 쿠베르텡은 이러한 위기 극복은 젊은이들의 건강한 육체와 정신의 단련이라고 생각하고 한 방편으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됩니다. 지금 입장에서 보면 지독한 민족주의, 국수주의지요. 세계 평화 어쩌구는 중고등학교 체육교과서[아무도 안 읽지만^^;]에서나 떠드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현재 올림픽이 국력 과시의 장이 되고, 금메달 수에 목을 매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세계 화합의 장에서 민족주의가 판치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웃긴 상황입니다. 하긴 그릇부터 썩었는데 그 속에 어떤 음식물을 담는 것은 애초부터 틀린 일이지요.

    올림픽은 초국적 기업들의 스폰서와 유치국의 엄청난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초국적 기업의 마케팅 비용은 제3세계의 노동자들[어린이, 여성 할 것없이]의 택도없는 임금노동에 의해 마련됩니다. 한달동안 축구공을 열심히 꿰매서 버는 돈이 5달러라니, 모든 것을 기계로 찍어내는 줄 아는 우리들에게는 놀라운 사실이기도 합니다.



    피에쓰. 저의 이러한 글이 물론 조야한 맑시스트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 bery 2004/08/31 [17:23] 수정 | 삭제
  • 해설자가 심판 몰래 반칙을 하라고 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심판이 몰라도 해설자는 반칙을 짚어주어야 하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런 해설이 인기라니..
  • e 2004/08/31 [03:37] 수정 | 삭제
  • 한국 여자 양궁팀이 호조를 보이자 '여자 셋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는데 더 큰 일을 저질렀어요, 지금은 그래도 돼요'와 비슷한 말을 아나운서가 던졌죠. 더 잘하라는 뜻으로 갖다 붙인거라지만 듣기 거북한거죠. (뷁)
  • 거북이 2004/08/30 [14:47] 수정 | 삭제
  • 양궁 해설하는 사람 진짜 웃기더군요.
    DNA가 어쩌구 하는 것도 황당한데
    그리고 거기서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은 또 왜 나오는지..
    그 사람은 해설할 때도 계속..
    상대팀이 못하기만을 바라는 말을 해서 짜증났어요.
    그런 해설은 우리 선수들도 들으면 기분나쁠 것 같더군요.
    해설자들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 기니 2004/08/30 [14:32] 수정 | 삭제
  • 외국에서 만약에 상대팀인 한국팀에 대해서 비하하거나, 막말로 서양 해설자가 동양선수라고 '아시안인도 나름대로 아름답죠?' 이러면 어떨까?

    한국사람들 성질에 또 우다다 인터넷으로 테러를 하지 않을까요?
    뭐 묻은 개라는 건 생각 않고 말이죠.

    이런 기사를 보니 반갑네요.

    갠적으로 일다에서 제기할 법한 문제란 생각을 했습죠. ^^
  • bear 2004/08/30 [14:16] 수정 | 삭제
  • 외국선수들 비하하고, 반칙까지 선동하면서 해설하는 건 정말 아니죠.
    양궁 해설할 땐 우리 민족이 우수해서 잘 하는 거라고 하고, --이런 뻥이 어딨습니까.
    심권호 아저씨는 경기를 코미디 프로로 만들었구요.
    이런 거 보면 민족이 우수한 게 아니라 유치한 것 같다는 생각도..
  • snufkin 2004/08/30 [08:28] 수정 | 삭제
  • 어느 방송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해설자가 이런 말을 했었죠. "여자가 5m를 넘으려면 담력이 있어야 한다." 황당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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