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www.pinks.or.kr)와 공동기획으로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 기사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필자 김일란님은 '연분홍치마' 활동가이며, 기지촌의 성산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편집자 주>
현재 우리 나라에는 인신매매를 독자적으로 규율하는 단일 법률이 없다. 다만 다양한 법 속에서 인신매매와 관련한 범죄를 규율할 수 있는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오는 9월 23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은 많은 한계점들이 있지만, 일단 사는 자와 파는 자의 관계를 넘어‘알선’하는 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는 점에선 의의가 있다. 성매매가 곧 인신매매라는 인식이 반영된 셈이다. 한국특수관광업협회는 성매매 알선단체인가 사실 ‘인신매매(trafficking in person)’ 현상은 너무나 복잡하다.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에, 맥락과 시기에 따라서 쟁점이 되는 내용도 달라진다. 다만 성 산업이 남성중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주 대상이며, 여성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타인에 의해 매매되는 것이 성매매의 특징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 성매매 시장의 여성 유입국으로 부상한 것은 1996년 즈음이다. 1999년 한국특수관광업협회의 회장이자 당시 도의원이었던 김경수는 기지촌 클럽 업주로부터 소개비를 받고 여성을 주문 받은 후, 필리핀 여성들을 입국시켜 각 업소마다 할당했다. 이러한 사실은 1999년 성 산업에 유입된 여성들의 고발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러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모집한 여성들이 1천93명이나 됐다. 1998년 5월 시사월간지 <말>에 실린 송탄 클럽 한 업주의 인터뷰를 보면, “충무로에 있는 한국특수관광업협회에 연락해서 (필리핀 여성들을) 받았다. 5명 한 팀을 받았는데, 소개비로 70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한국특수관광업협회 회장 김경수는 공연계약서 등 서류를 위조해서, 문화관광부와 출입국관리소에 제출해 인증서를 받아내고, 1억6천만원 가량의 사례비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그의 죄목은 사문서위조였다. 즉, 없는 공연을 있는 것처럼 계약서를 꾸미고 출입국관리국에 제출해 사증 인정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특수관광업협회가 성매매 알선, 즉 인신매매의 핵심에 있음을 간과한 시대착오적인 죄목이다. 이 사건이 이후, 김경수는 1999년 9월 19일 <시사매거진 2580>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연예인이 아닌 접대부로 정부에서 허가를 해준다면, 서빙을 할 수 있는 그런 여성들을 수입할 수 있게 해준다면, 현재 시가보다 더 저렴한 시가에 저희는 수입을 해 올 수가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2003년 한국특수관광업협회는 외국인관광시설업협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특수관광업협회 평택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나쁜 이미지가 있어서 이미지를 좀 좋게 바꿔보려고 명칭을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특수관광업협회는 여전히 “알선”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송탄의 한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언니는 일반업소는 아가씨를 구할 수 없어서, 미군을 상대로 장사하는 관광업소의 클럽 주인들에게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가씨가 있어야 장사를 하는데 일반업소는 아가씨를 구할 수가 없어. 그래서 관광업소의 클럽주인들에게 부탁을 해. 그러면 관광업소는 중앙이 있어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 여기서 ‘중앙’이란 한국특수관광업협회를 칭하는 것이다. 클럽 업주의 증언, 더욱 교묘해지는 인신매매 송탄 한 클럽 업주와 인터뷰를 하던 중의 일이다. 그는 며칠 전에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러시아 여성 6명이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영업이 어렵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그러다 인터뷰 도중 갑자기 “빨리 (인터뷰를) 끝내자”고 재촉했는데, “이제 곧 필리핀 여성들이 새로 온다”고 말했다. 현재 있는 필리핀 여성들만해도 이미 10명이 넘는데, 또 여성들을 더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업주는 장사가 안 된다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이전에는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을 다 합해 20명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마침 필리핀 여성 2명과 필리핀 남성 1명이 들어왔다. 최근 이들이 공연단으로 유입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남성이 매니저 혹은 밴드부이거나, 밴드부를 가장한 매니저일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관광업소 내 외국인 공연이 성매매와 연결되어 있다는 질책이 빈번해지자, 법무부는 2003년 6월부터,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이주여성 중에서 ‘댄서’ 비자발급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로 ‘댄서’의 범주가 없어지면서, ‘댄서’가 아닌 가수나 밴드 연주자나 혹은 ‘위장 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한국에 오기까지 서류를 위조하고,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 브로커들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 입국비용이 결국 일종의 ‘선불금’이 되어 매니저에게 묶인 상태가 된다. 다음날, 우리는 클럽 업주와의 인터뷰를 다시 시도했는데, 그는 선뜻 응했다. 그는 클럽의 월급사장이 되기 전에, ‘외국인 연예인기획사’를 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기지촌 경제가 번창했을 때는 아무래도 협회에 기대하는 것도 많았고. 업주들도 똘똘 뭉쳤지. 그런데 지금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돼. 사실은 나도 4-5년 전에 매니저도 했었거든. 장사 잘 됐지. 얘들 한 6명 정도 데리고 오면, 꽤 벌었지.” 그가 매니저 일을 했다고 하는 1999년 즈음에는 이주여성들의 유입이 완화되었던 때다. 그는 매니저를 하면서 돈은 좀 벌었지만 힘들어서 그만두고, 클럽을 경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매니저도 힘들어. 아가씨들이 일 잘하고 있는지 봐야지. 불만 있으면 해결해야지. 아프면 병원 데리고 가고. 일하기 싫다고 하면, 업소도 옮겨줘야 되고. 돌아갈 때 비행기 값도 주어야 하니 어려워.” 매니저로 돈을 버는 것도 옛날이야기라면서, 요즘은 제도가 여러 가지로 복잡해져서 일하기가 힘들다고 울상을 지었다. 업주에 따르면, 2002년 무렵에 필리핀 정부가 ARB(Artist, Record, Book. 예술가, 음반 및 출판에 관한 법률)를 만들면서 유입되는 과정이 복잡해졌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과거와 달리 여러 가지 서류상으로나 제도가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필리핀 여성들의 유입이 어려워져서 “몸값만 올라가 장사하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성매매 알선 지탱하는 문광부와 영상물등급위 이주여성 성매매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책도 인신매매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연예인비자, 즉 E-6비자의 발급과 관련이 있다. 원래 E-6비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한 음악, 미술 등의 예술활동과 연주, 운동경기 등의 활동에 종사하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발급해주는 것으로,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취업할 수 있는 비자다. 외국인 연예인 수입절차는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일정한 시설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근로자 파견사업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그러한 자격을 갖춘 외국인 연예인 공연기획사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추천을 받아 그것을 재외공관에 제출, 외국인이 연예인 비자를 받도록 해서 입국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공연업소에 파견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서류심사만으로도 거의 모든 외국인 초청공연을 추천할 수 있다. 외국인 연예인에 대한 수입은 1960년대 이래 미 8군내 클럽들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연예인들로 수요를 채울 수 없어 시작됐다. 이러한 외국 연예인의 공연이 40여 년 가까이 ‘허가제’로 지속되어 오다 지난 1999년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추천제’로 바뀌게 되면서 외국 연예인의 유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파견사업허가만 있으면 누구나 외국 연예인의 공연을 신청할 수 있게 되면서 해당업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 7개였던 기획사가 2001년 103개로, 2002년 5월 157개로 증가했다. 문제는 새로 설립된 외국인 연예인 공연기획사 중에 실질적으로 외국인 공연기획을 활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P클럽 업주에 따르면, 요즈음에는 아가씨를 ‘주문’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매니저들에게 착수금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기 위해 클럽업주들이 외국인 연예인기획사를 차려서 직접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문화관광부과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대한 사회적 비난여론이 생기자, 문화관광부는 성매매 방지 관련 업무를 시작했다. 작년 한해 동안, 문화관광부가 실행한 성매매 방지 관련업무는 ‘관광업소 종사 외국연예인 고용관련 제도개선’이었다. 그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외국연예인 종사 주요대상시설인 외국인전용유흥음식점 시도별 지정현황을 파악(2003년 12월 31일 현재 전국 293개 업체 지정)하고, 외국인전용유흥음식점 지정기준을 강화해 음성적 영업환경을 차단하기 위해 홀면적 기준을 확장하고, 무대면적을 규정하고, 관광업소에 종사하는 외국연예인의 사증발급을 위한 추천서 발급업무를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위탁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 등이다. 말하자면, 관광업소에서 이주여성들이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데 주력한 셈이다. 인신매매의 속성 파악해야 성매매가 인신매매라는 사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정부 정책은 성매매를 근절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02년 국정감사에서 조배숙 의원이 문화관광부가 이주여성들의 성산업 유입과정에 대한 책임을 문책하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공연법’에 의거하여 심의하는 것이며, 입국해 활동하는 것은 법무부에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서 예술흥행사증(E-6)에 의해 관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답변은 이주여성들을 단순한 연예인으로만 규정하는 것이며, 연예인이니까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면 된다는 식이다. E-6비자가 많은 이주여성들을 합법적으로 입국시킨 뒤, 성매매를 강요하는 인신매매의 연결고리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주여성의 송출국 기획사들과 연계된 한국의 외국인 연예인 기획사들이 국내 기지촌 클럽 업소들과 검은 유착관계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예기치 않았다 하더라도 한국특수관광업협회는 인신매매 주범이며 이들을 합법화하는 문화관광부와 법무부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곧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적어도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효과는 성매매가 ‘인신매매’의 성격을 띤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고, 또한 이러한 인신매매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법의 제정과 시행 선포로만은 불가능하다. 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악용하려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성 산업 종사자인 여성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해야 하며, 성매매 알선자로부터의 인신매매를 막는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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