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www.pinks.or.kr)와 공동기획으로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 기사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필자 조혜영님은 '연분홍치마' 활동가이며, 기지촌의 성산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편집자 주>
거리가 어둑어둑해지고 네온사인이 켜지면 부대 정문 쪽에서 미군들이 하나 둘 나온다. 사복을 입은 삼삼오오 미군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화려한 클럽들로 들어간다. 클럽 계단 옆의 벽은 미군들이 매직으로 쓴 자신의 이름이나 부대, 성적인 단어와 갖가지 비속어들로 덮여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 옆에 바로 바가 있고, 바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에 마마상으로 불리는 하얀색 셔츠에 검정조끼와 바지를 입은 네다섯의 50~60대 여성들이 앉아있다. 클럽의 안쪽 한 구석에는 짧은 끈 원피스를 입은 예닐곱의 필리핀 여성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미군남성 둘이 들어오자 한 마마상이 수다를 떨고 있던 필리핀 여성들에게 눈치를 준다. 필리핀 여성 둘이 일어나 미군들의 옆자리에 앉는다. 그들의 통성명이 끝날 즈음 마마상은 자신의 스테인리스 쟁반과 행주를 들고 그들에게로 간다. 마마상이 미군에게 눈짓을 하며 “바이 허 주스”라고 하자 그 미군들은 3만원을 마마상에게 건넨다. 미군은 옆에 앉아있는 필리핀 여성들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필리핀 여성들은 그들에게 귓속말을 하며 웃는다. 다른 미군은 옆에 앉은 여성의 허리를 만지며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다. 잠시 후 마마상이 파란색 유리컵에 담긴 주스 두 잔을 여성들의 앞에, 맥주를 미군 앞에 놓고는 여성들에게 손톱 크기만한 빨간색 플라스틱(티켓)을 쥐어준다. 마마상은 미군에게 거스름돈을 주고, 그 중 천 원짜리 지폐를 흔들면서 “팁”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싸구려 주스가 만원에 팔린다? 기지촌에서는 거의 모든 클럽 시스템이 ‘주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마상으로 20년 넘게 살아온 한 여성의 증언에 의하면 이 주스시스템은 1980년대 중반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 한국여성과는 달리 선불금 없는 이주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것이 주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클럽 바의 메뉴 판에서는 ‘주스’와 ‘주스가격’을 찾을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주스를 주문하느냐”는 질문에 마마상과 클럽여성은 “손님으로 온 미군남성들은 모두가 주스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스를 주문한다”고 답한다. 주스를 주문하면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파란색 유리잔에 950L 한 팩에 5백~7백원 정도 하는 주스 약간과 얼음을 담아 나온다. 기지촌의 모든 클럽이 동일하다. 주스 한 팩으로 약 20잔 이상의 주스가 나온다고 한다. 계산해보면 대략 6백 원짜리를 300배 이상 부풀려 20만원에 파는 말도 안 되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지촌에서 거의 아무 가치도 없는 싸구려 ‘주스’를 한잔 당 만원에 판다는 것은 실제로는 주스가 아닌 미군 옆에 앉게 되는 여성들을 판다는 것을 뜻한다. 주스를 사는 남성이나 그것을 파는 업주나 그들이 주스를 통해 클럽에서 거래하는 것이 여성이라는 것과, 주스 값이 그 여성에 대한 ‘화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들은 주스를 사 주는 시간 동안 농담을 나누며 그들의 대화상대가 되는 것에서부터 키스나 애무 등의 성적서비스까지 해주며 자신의 몸을 남성들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주스는 실제 이것이 성매매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스 시스템은 성매매를 단순히 ‘주스를 팔고 사주는 행위’ 정도로 덮어씌운다. 그래서 성 구매자나 기지촌 여성 모두에게 성매매를 더욱 일상적이고 익숙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 이주여성과 마마상은 기만적인 주스 시스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주스만큼 세상에 멍청한 것이 어디에 있냐? 주스야말로 정말 넌센스지”, “주스, 그 자체는 실제 아무 것도(nothing) 아닌 거야.” ‘주스 쿼터제’로 강요되는 2차 주스 한잔을 살 수 있는 1만 원짜리 티켓은 클럽에서 손님들이 한 여성을 사는 최소 거래단위다. 주스 한잔을 사주면 여성은 약 10분간을 앉는다. 만약 그가 그 여성과 더 있기를 원하면 계속해서 주스를 사야 한다. 실제로 클럽의 가장 큰 주 수입원은 주스 판매기 때문에 업주는 더 많은 주스를 팔기 위해 다양한 술수를 쓴다. 그들은 더 많은 주스, 즉 여성을 팔기 위해 여성들을 전시한다. 대부분 클럽 앞쪽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봉이 있는 무대가 있다. 그곳에서 번쩍이는 조명아래 비키니를 입은 필리핀 여성 한 명이 리드미컬한 댄스 곡에 맞춰 몸을 흔든다. 한 곡이 끝나면 다른 여성이 나와 춤을 춘다. 이런 식의 짧은 로테이션 방식으로 업주들은 손님들의 선택을 위해 다양한 상품들을 전시하듯 더 많은 여성들을 보여준다. 클럽업주들은 자신들은 강제로 ‘2차’를 내보낸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여성들도 클럽업주들이 강제로 2차를 내보내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여성들이 선택해서 나가는 것 같은 2차는 실제 ‘주스 쿼터제’라는 시스템을 통해 강제된다. 클럽 업주는 한 명의 필리핀 여성을 데리고 있기 위해 매달 연예기획사 매니저에게 주는 약 120만원(이 중 35~50만원 정도가 이주여성들에게 돌아간다)을 포함해 여성들의 집세와 식비, 클럽의 기본적 운영비를 모두 여성들에게서 뽑아내려 한다. 이를 위해 클럽 업주들은 여성 한 명당 한 달에 주스 2백~3백 잔의 쿼터를 채우도록 강요한다. 만약 쿼터를 채우지 못할 경우 업주와 마마상은 끊임없이 그 여성에게 압력을 가하고, 매니저에게 말해 본국으로 보내버린다고 협박한다. 이 곳에 오기 위해 많은 노력과 돈을 투자했던 여성들은 돈도 벌지 못하고 쫓겨날까봐 쿼터를 채우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쿼터를 채우기 위해선 일주일에 60~70잔, 하루 평균 8~10잔을 마셔야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다수의 여성들이 최대한 마셔도 평일에는 2~3잔, 주말에는 5~6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클럽 업주들은 여성들에게 2차를 나갈 것을 종용한다. 2백~3백 달러 정도 하는 2차를 나가게 되면 주스 20~30잔, 즉 티켓 20~30개를 파는 것으로 계산된다. 업주들은 여성들에게 “2차가 싫으면 주스쿼터를 채우라”고 하며 선택의 여지를 주는 듯하지만, 이 쿼터를 주스만으로 채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택’이라는 건 말뿐이다. 심지어 한 클럽 업주는 쿼터를 채우지 못한 여성들에게는 필리핀으로 바로 돌려보낼 것이라는 협박을 하는 반면, 한 달 쿼터를 채우면 금 한 돈을 해주겠다는 '채찍과 당근' 정책을 쓰며 여성들이 더 많은 주스를 팔도록 옭아맨다. 주스 삼각관계: 업주, 마마상, 기지촌 여성 클럽 여성들과 가장 많이 충돌하는 사람은 주로 마마상이다. 직접적으로 주스와 2차를 강요하는 것, 자유시간을 제한하는 것, ‘뒷거래’(마마상을 통하지 않고 직접 성매매를 하는 것)를 감시하는 것 모두 마마상의 역할이다. 대부분의 클럽 업주들은 직접 클럽 여성들을 대하지 않는다. 이주여성들이 들어오면서 관리가 더 힘들어진 업주들은 과거 기지촌에서 성매매 되었다가 이제는 나이가 든 여성들을 일종의 중간 포주로 고용한다. 이들은 영어소통이 가능하고 기지촌의 생리와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필리핀 여성은 인터뷰를 하던 중 한국어를 할 수 있다며 거의 완벽한 발음으로 “빨리 빨리”라고 말했다. 어디서 들었냐고 했더니 주스를 빨리 마시지 않으면 마마가 “빨리 빨리”라고 말하며 미군 몰래 자기들을 툭툭 치고 다닌다고 한다. 마마상은 필리핀에서 온 이주여성들에게 얼마간 동정의 마음을 품으면서도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때로 가혹할 정도로 여성들을 관리한다. 마마상은 주스 강요만이 아니라 클럽에 처음 여성이 오면 미군남성을 위한 에티켓(성적 서비스)을 가르친다. 어떤 마마상은 “여자애들이 그렇게 무뚝뚝하게 있으면 누가 주스를 사주고 싶겠어. 어깨에 손도 올리고 애교도 떨고 해야 주스를 사주지!”라며, 필리핀 여성들이 돈을 주는 만큼 일을 안 한다고 탓한다. 마마상은 여성들이 너무 수줍어하면 주스에 술을 섞어 넣어주기도 한다. 그들은 종종 자신들을 업주와 동일시하며 여성들에게 나가는 돈을 아까워하고, 매상이 오르지 않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피해여성을 가해자로 만드는 착취고리 클럽 업주들은 클럽 내 성매매 매커니즘을 통해 기지촌 여성이었던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여성을 착취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마마상의 삶의 조건을 보면 이주여성의 조건과 흡사하다. 이주여성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주스가 스트레스가 되는 것처럼, 마마상도 주스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클럽여성들이 적은 월급과 함께 인센티브(1만 원짜리 주스 한잔을 팔거나 2차를 나가면 업주가 70%를, 여성들이 30%를 받는다)를 받는 것처럼, 마마상도 40~50만원이라는 턱없이 적은 월급과 미군들이 주는 팁으로 생활한다. 몇몇 클럽에서는 마마상에게 주스 한 잔당 5백원을 얹어 주기도 한다. 마마상들은 주스를 많이 팔아야만 그에 딸려 나오는 팁을 받을 수 있다. 클럽여성들이 돈을 벌려면 주스를 팔아야 하는 것처럼, 마마상도 생계를 위해 주스를 강요할 수밖에 없다. 한편 마마상들이 이주여성들에게 주스를 팔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업주들도 마마상들에게 끊임없이 압력을 가한다. 이주여성들에 비해 마마상은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업주들은 클럽 손님이 조금 줄거나 마마상이 조금만 맘에 안 들면 바로 해고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마마상들은 업주 앞에서 무력하다. 업주들은 끊임없이 마마상에게 2차를 내보내고 더 높은 주스매상을 강요한다. 인터뷰 중 한 마마상이 들려준 신세한탄은 클럽 업주가 성매매 매커니즘 속에서 마마상과 이주여성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잘 드러낸다. 그녀는 “필리핀 애들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 2차를 나가기 싫거나 무대에서 춤을 추기 싫으면 생리한다고 하지, 뒷거래 하지”라고 이주여성들의 흉을 보다 금세 겸연쩍어 하며 또 이렇게 말한다. “하긴 사실 우리들도 업주들한테 거짓말 많이 하지. 업주가 자꾸만 미군한테 주스 주문 받아오라고 하면 정말 미치겠어. 진짜 스트레스 받아. 그래서 방금 갔다 왔다고 거짓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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