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정책, 여성 저임금화 우려

“양적 확대가 능사 아니다” 지적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4/09/26 [22:58]

일자리 창출정책, 여성 저임금화 우려

“양적 확대가 능사 아니다” 지적

문이정민 | 입력 : 2004/09/26 [22:58]
“일자리 문제는 일자리 양의 문제만이 아니라 질의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난 21일,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이하 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열린 ‘실업, 빈곤 극복을 위한 여성 일자리창출 정체제언 토론회’에서 정부가 국가 최우선정책으로 공표한 일자리창출 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임윤옥 여성노동자회 정책실장은 “정부는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양적 확대에 치중한 나머지 현재 일자리 문제가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자리가 확대돼야 하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계획이나 전략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창출 참여대상, 절대다수가 여성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현재 일자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양극화 현상이다. 즉 전체 취업자를 기준으로 상위 30% 일자리와 하위 30% 일자리 증가율이 높게 나타나고, 중위 수준의 일자리 증가율은 미비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임윤옥 정책실장은 “이러한 일자리의 양극화로 인한 피해가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여성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아 항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다수의 근로빈곤층을 형성, 심각한 여성의 빈곤화 현상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발표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정책을 살펴보면 주로 교육, 보건, 복지, 환경 서비스 제공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일자리 창출에 참여하는 대상의 절대다수가 여성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임 정책실장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정책이 여성노동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양적인 일자리 확대에 그친다면 그것은 단기적인 실업률 감소라는 성과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성의 비정규직화, 저임금화만을 부채질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성노동의 저임금, 고용불안정 고착화 위험

지금까지 시범적 차원에서 추진된 사회적 일자리 만들기 사업은 2005년부터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부처별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장애아교육보조, 방과후 교실보조, 국공립유치원 종일반 지원, 지역아동센터 방과후 공부방 지원, 보육시설 연장, 휴일반 운영, 방문도우미 지원 등 여성관련업종이 대다수다.

문제는 그것이 “낮은 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것. 토론회에선 저소득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58~68만원으로 설계돼 있는 저임금 일자리 창출은 실업과 고용불안정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9~10개월의 짧은 계약기간과 퇴직금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적 일자리는 고용창출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가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적이라는 것이다.

임윤옥 정책실장은 “일자리 창출 정책의 목표가 수량적인 목표에 맞춰져 있다”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위한 숫자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업종에 따른 임금의 다양화와 근로조건 개선이 중요하며, 더불어 서비스의 질과 직결되는 참여자들의 교육, 훈련 및 사업과 연관된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에 대한 지원도 충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는 여성의 일자리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임 정책실장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일'에 대한 재인식과 재평가 과정 없이 일자리 늘리기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여성들의 고용불안, 빈곤해소에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여성노동’에 대한 성인지적 고찰이 절실함을 피력했다.

방과후 교사, ‘고용안정화’ 방향으로 가야

이례교 인천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은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 사례를 통해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 사무국장은 “노동부는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교육인적자원부는 사교육비절감대책의 일환으로, 여성부는 보육정책의 일환으로 각각 ‘방과후 교실’을 진행하고 있는데, 정부 부처에 따라 보는 시각과 관점이 다르면서 현장에 혼선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보육 확충이란 측면과 이를 통한 고용창출이란 측면을 총체적으로 고민하고 접근할 수 있는 방과후 보육관련 정책 조정기구가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부분 방과후 교사 인건비가 낮고 고용보장이 안되어 있을 뿐 아니라 방학 중 임금이 없어 교사의 근속이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례교 사무국장은 “방과후 교실은 이용자에게 정서적 안정과 안전한 생활을 담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교사의 고용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살핌 노동에 대한 재인식 필요

방미경 노동부 청년고령자고용과 사무관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일자리 만들기 정책에 대해 “유럽형 사회적 기업을 모델로 사업을 진행했는데, 현재는 공공근로와 거의 유사할 뿐 자체 시장성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 지속성이 없고 임금이 낮은 점 등은 보강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단순히 고임금 지급예산을 확보해 계속 고용하는 것은 사회적 기업 모델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드러난 한계들은 비영리 민간단체와 협력을 통해 풀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방과후 교사의 고용안정화를 강조한 이례교 사무국장의 발표에 대해 김정석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과 연구관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는 것은 사교육비 경감대책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고용’이 초점이 아니라 공교육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 연구관은 “일자리 창출은 공교육 정상화 노력 속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허영숙 여성부 인력개발담당관실 사무관은 “여성부에서 하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은 인건비 지원은 안하고 여성들이 일할 때 필요한 교재, 육아지원, 보험료 등의 지원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기존에 가진 전문성을 중심으로 재가공하는 전문성 교육, 직무교육 등에 초점을 맞춰 일자리 창출이 실제적인 생산성과 수익성을 낼 수 있을 때까지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은 “스웨덴의 경우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잘 이뤄져 공공보육 서비스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노인, 환자, 장애인에 대한 보살핌 영역 또한 여성의 일자리로 정착돼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대부분 보육 서비스를 주부에게 맡겨둔 상태”라고 지적했다. 류 소장은 “여성들이 현재 주로 맡고 있는 재생산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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