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공포

<스텝포드 와이프>, 블랙코미디의 상상력 아쉬워

박희정 | 기사입력 2004/10/04 [02:38]

성공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공포

<스텝포드 와이프>, 블랙코미디의 상상력 아쉬워

박희정 | 입력 : 2004/10/04 [02:38]
1975년 아이라 레빈의 SF페미니즘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동명의 작품 <스텝포드 와이프>(stepford wives)가 ‘공포’라는 장르를 택한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을 말 잘 듣고, 집안 일 잘하고, 성적 서비스까지 확실한 ‘완벽한 아내’로 개조한다는 설정은 말 그대로 공포스럽지 않은가.

그러나 지난 1일 개봉한 <스텝포드 와이프>는 3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B급 코미디의 거장으로 추종 받는 프랭크 오즈의 손에서 블랙코미디로 새롭게 리메이크 되었다.

승승장구하는 방송사의 사장 조안나(니콜 키드먼 분)는 갑작스런 해고를 당하고 우울증을 겪는다. 같은 방송사의 부사장이자 남편인 월터(매튜 브로데릭 분)는 조안나를 위해 사표를 내고, 가족은 함께 코네티컷의 조용한 시골마을 ‘스텝포드’로 향한다. 그러나 스텝포드는 기이할 정도로 모두 인형 같은 외모와 상냥함을 가진 ‘완벽한’ 아내들로 가득 차 있다.

이상함을 느끼고 비밀을 캐던 조안나는 스텝포드 마을의 아내들이 이전에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여자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여자들은 자신보다 잘난 아내에게 불만을 가진 남편들에 의해 스텝포드에 와서 로봇으로 개조되었던 것이다.

영화의 소재와 원작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 성공한 여자, 남자보다 잘난 여자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콜 키드만, 글렌 클로즈, 베트 미들러 등 화려한 출연진을 내세우며 의욕적으로 진행된 리메이크 작업은 그다지 신통치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 원인은 일정부분 감독의 탓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원작과의 차이를 두기 위해 택한 코미디라는 장르 선택이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영화는 초반부터 위트 있는 대사들을 쏟아내지만, 영화의 웃음은 풍자적이기 보다 일회적 유머에서 나온다. 그나마 말장난의 재미는 번역을 통과하면서 그 힘이 많이 죽는다. 더구나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공포와 코미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구성 상의 약점을 노출시킨다.

스텝포드 와이프들에 대한 묘사도 강요되는 여성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할애되기 보다, 입에 신용카드를 긁고, 현금을 뱉어내는 ‘CG기술자랑 식’의 기괴함 연출에 더 할애됐다. 성공한 여성들에 대해 사회가 가지는 불편함과 더불어 모든 여성들의 덕목으로 강요하는 ‘완벽한 아내되기’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사라지고 얄팍한 볼거리 제공에 그치고 있다.

스텝포드 마을의 비밀은 초반부터 노출된다. 관객들은 쉽게 스텝포드 마을의 아내들이 조종되는 로봇이며 그 중심에 마이크(크리스토퍼 월켄)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스텝포드 마을의 비밀을 부수는 순간, 또 다른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해피엔딩의 느슨한 순간은 강하게 주위를 환기시키지만, 동시에 영화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스텝포드 와이프들의 비극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누구보다도 완벽한 스텝포드 와이프인 클레어(글렌 클로즈)로 밝혀진다. 클레어는 최고의 뇌의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성공한 여성이었다. 젊은 여자에게 애인을 뺏기고 상처 입은 후, ‘사랑 받는 여자’가 되기를 갈망하면서 ‘남자다운 남자’와 그들에게 사랑 받는 ‘여자다운 여자’로 가득 찬 마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스텝포드 마을의 공포는 ‘성공’으로 인해 ‘남자의 사랑’을 잃어버린 여자가 만들어냈다는 설정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현실에 대한 은유라고 가볍게 지나치기엔 맥락이 없고 뜬금없다. 과연 ‘예상치 못한 반전’ 이상의 어떤 것을 의도하고 있는지 감독의 목소리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쉬이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읽힐 여지가 다분하다.

니콜 키드만의 연기는 시종일관 과잉된 에너지로 넘친다. 완벽한 연기에 대한 강박일까. 캐릭터에 녹아 든 연기가 아닌, 기술을 자랑하는 서커스를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완벽한’ 스텝포드 와이프가 된 모습이 그녀만큼 어울리는 배우도 없을 듯 하다. 글렌 클로즈, 베트 미들러의 연기는 명불허전. 이들의 호연으로, 느슨한 구성의 코미디가 구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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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ni 2004/10/15 [11:57] 수정 | 삭제
  • 배우들을 볼만한 영화.
  • 그러나 2004/10/14 [23:08] 수정 | 삭제
  • 그러나 영화 자체는 재밌게 봤어요.
    니콜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음....
    원작영화를 보고 싶은데 한국에 없겠죠?
  • Hmm 2004/10/14 [23:07] 수정 | 삭제
  • 정말 이상했음.
  • 헬레나 2004/10/05 [04:38] 수정 | 삭제
  • SF는 SF답게 그리면 좋았으련만, 너무 헐리우드적으로 각색했다는 생각이들어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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