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역의 70%이상이 산림지역인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성장했다. 그렇게 자라는 동안에는 농사를 지어온 집안이었기에 많은 농산물을 논밭에서 직접 가져다 먹었고 교과서에서 배우는 환경오염문제는 그저 멀게만 느껴졌던 듯 하다. 최근의 길지 않은 외국생활 동안에도, 운이 좋아 계속 ‘좋은 환경’에서 지냈다. 한동안 넓은 정원 가득 온갖 과일나무와 채소들을 가꾸던 모녀와 함께 지내느라 방금 따온 과일과 채소들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아주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종종 인근 목장이나 과수원으로 가서 신선한 치즈나 방금 만들어낸 주스 같은 것들을 사오곤 했다.
그 이후에 지내던 기숙사 역시 다소 외딴 곳에 위치해있어서 투덜거릴 소음이란 오로지 새소리 밖에 없었다. 호숫가의 백조나 거위가 이번에 몇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지가 새소식 거리가 되던 그 곳에서 여우나 붉은 다람쥐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학교 가는 길에 수풀을 헤쳐서 산딸기를 따먹거나 이름 모를 열매를 입에 넣어보기도 했고, 잔디거나 잡초인줄만 알았던 푸른 풀들이 어느새 밀이 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돌아온 서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문으로만 듣던 ‘웰빙’ 물결이었다. 거대한 패스트푸드점들부터 동네 가게들까지 ‘해맑고’ ‘푸르른’ ‘자연의’ 식품과 메뉴들을 팔고 있다고 말하고, 각종 헬스클럽 등도 체형관리를 넘어서서 다양한 종류의 레파토리를 제공하며 ‘건강’을 말하고 있었다. 텔레비젼을 켜도, 신문을 펼쳐도 ‘녹색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제껏 살아본 곳 중에서 가장 ‘푸르르지 않고’ ‘해맑지 않은’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곳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건강할 수 없을 듯한' 이 도시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문자 그대로 웰빙의 물결이 장악한 이 거대도시 서울에 들어선 첫날부터 심한 기침과 알레르기로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안에 쌓인 먼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청소를 하고 공기 청정기를 돌리고 온갖 스프레이를 뿌려보았으나 기침은 멈추지를 않았다. 창문을 열어두어도 깨끗한 공기가 들어온다기보다는 각종 소음과 검은 먼지가 먼저 들어오는 듯 했다. 그러다 집을 나와서 버스를 타기 위해서 대로에 서있는데 숨이 탁하고 막히는 것이었다. 검고 탁한 매연이 입과 코로 화악 들어오는 듯해서 잠시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그 뒤로는 숨을 쉬고 있다는 자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는 별다른 문제없이 끼고 있었던 반지와 시계까지 풀어두어야 했다. 피부가 간지러우면서 뭔가 피부에 접촉하면 돌기가 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이 기침과 알레르기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가 한 몫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들 멀쩡하게 잘 지내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전에 서울에서 몇 년 살아본 적도 있는데 이제와 혼자 예민하게 구는가 싶어서 그저 적응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이렇게 둔감해지는 것도 서글픈 혹은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가 주는 혜택들을 받고 있기에 환경에 대해서는 그저 체념하는 수 밖에 없는가 싶은 것이다. 집에 있으려니, 아파트 전세대 해충소독을 해야 한다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개미가 있다고 했더니 요즘 날로 해충들의 면역이 강해진다며 최근에 나온 강한 약을 권해준다. 한참 공기에 예민해져 있던 판인지라, 뭔가 약을 뿌려댔다면 개미보다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절을 하려 했으나 다행히 분말 가루 같은 약이었다. 개미들을 왜 없애야 하는 건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보니, 이런 식으로 점점 더 독해지는 농산물의 농약들과 그러한 독한 무언가들에 그저 익숙해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미쳤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기침은 멎을 듯 하고, 항상 뿌연 듯한 시야도, 별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도 아마 다시 익숙해 질 것이고, 슈퍼에서 야채 한 다발을 사는데도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문제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해도 그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 터이다. 지금 서울이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지적들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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