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알레르기

단추 | 기사입력 2003/05/16 [10:00]

5월 알레르기

단추 | 입력 : 2003/05/16 [10:00]
곧잘 장마가 그리워지곤 했다. 몸이 따갑도록 소나기가 줄창 내리기 시작하면 낮은 언덕을 걸어서 내려가는 길에서는 늘 무릎까지 바지를 접어 올려야 했다. 골목마다 우산을 쓴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작은 문으로 쏙쏙 들어갔다. 젊은 여자의 장바구니 가득 파는 흠뻑 젖어서 팔팔 끓는 김치찌개에 들어간 야채처럼 주눅이 들어 있다. 이렇게 비가 오면 늘 젖은 담배를 태우면서 아무 말도 없이 날적이에 이름만 가득 채우다가 훌쩍 가방을 매고 나가버리던 학교선배가 생각이 났다.

사랑이란 감정은 촌쓰럽고 유치하다고, 욕망은 욕망이고 정신적인 그리움은 그리움이다라고 주장했던 나는 어느새 그것들을 부인하면서 그때 내가 가졌던 사치스러운 고민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스물스물 시간이 지나버리면 남은 것은 생채기와 일기장뿐이었다. 그것도 다 나인데도, 좀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반지하로 내려가는 학교 안 작은 방에는 여전히 낡은 물건들과 쓸모없는 볼펜, 누덕누덕 헤져버린 날적이가 뒹굴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캐비닛을 열어보니 몇 권의 노트가 더 나왔다. 3월에는 인사를 하느라고 바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모두 어른 같아서, 그들은 모두 대범한 고민들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나는 아직 어리석은 것만 같았다. 자살과 광기와 젊음과 예술이 한없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것들이 내 생애와 어떻게 연관이 될 수 있을지 보다는, 나는 그저 결단력이 있는 모든 것이 부러웠다. 4월엔, 낯선 것들을 껴안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업시간마다 노트정리도 해야 했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깨를 마주하고 기차를 타야 했고,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해보아야 했다. 5월엔. 5월엔 노래를 불렀었다.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 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에는, 핏발 솟은 리어카꾼, 맹인부부 가수의 노래, 한낮에는 시끌거리는 시장의 풍경, 어스름 해가 지면 땀냄새만 가득히 배어있는 거리. 하나 둘 좌판이 파하고 가게 문이 내리기 시작하면 덮쳐오는 생의 끈적끈적함. 이제 시작이다, 이제 나는 세상으로 뛰어 나간다, 가슴은 뜨거운데 겁이 많아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간들에 나는 노래만 줄기차게 불렀다.



다시 돌아온 교정에, 나를 반겨주는 것은 별로 없었다. 떠난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결연한 다짐을 하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곳에서 나를 잡아당겼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변명을 했다. 나에게 노래의 기쁨을 알려준 사람은 어딘가 먼 곳으로 가버렸다. 이후에, 나도 거리에서 나갔다. 가로로 정렬되는 시간의 순차대로 인생이 살아지지 않는다고 메시지가 온 것은 그녀가 떠나버리고도, 내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도 남은 시간 뒤였다. 그녀가 담겨져 있는 시간의 그릇은 너무 넓고 깊어서, 어디쯤 와 있는지 알려줄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간의 소소한 다툼들과 오해들은 이미 훌쩍 사라져버리고, 나는 5월 안에 멈춰서 나에게 박혀버린 그녀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

그녀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이, 답답한 이 사회라기보다는, 궤도에서 벗어나버린 그녀의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떠난 곳에서는 어쩌면 그것은 또 다른 원을 그리며, 또 다른 궤도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주치지 않은 것은 다행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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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눌 2003/05/19 [21:16] 수정 | 삭제
  • 떠나는 것은 늘 동경의 대상이지요.
    현실이 칙칙할 땐 더 그래요.

    떠나는 것과 <길>을 소재로 한 짧은 글들...
    느낌이 좋네요.
    잠깐씩 여행하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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