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기사를 통해 겉으로는 그럴듯한 생각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비교육적이고 왜곡된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는 어린이 그림 동화책들을 살펴 보았다. 이런 동화책들 틈에서 진정으로 아이들의 생각을 일깨우는 책들을 고르기가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또 그렇게 힘든 것만은 아니다.
어린이 책을 고르는 어른들이 주변 문제들에 대해 보다 진보적이고 예민한 시각을 가진다면 좋은 책들이 넘치고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생각이 녹아있는 세계명작 정도의 책들도 귀해서 읽기 힘들었던 지난 시절에 비해 요즘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아지고 있으며,더불어, 우리의 삶을 일깨줘 주는 책들 역시 참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일까?” 우선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은 기존의 책들이 문제의식 없이 동물을 사랑하는 한 기제로서 동물원을 바라보고 있었던 시각에 대해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동물들의 배설물로 냄새가 지독한 코끼리 우리, 사람들이 “아무리 고함을 지르고 유리문을 탕탕 두드려도” 구석에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오랑우탄 등,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원의 동물들은 결코 행복하거나 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이야기 속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소란을 떨며 동물들에게 집중하지 않는데, 그 모습 또한 참으로 사실적이다. 물끄러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고릴라를 보면서 어머니는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을 위한 곳이지”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아이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꿈을 꾸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렇듯 이 책은 사람의 구경거리로 취급되고 동물원의 동물들의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과연 동물원이 진정 동물들을 위한 것인지를 물으며, 또 우리가 이들처럼 우리에 갇혀 있다면 어떨까 하는 문제제기를 조심스럽게 하면서 끝맺고 있다. 적어도 이 동화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마냥 즐거운 구경거리로 동물원의 동물들을 구경했던 어린이들이 그들의 처지가 되어 동물을 생각해 보게 되지 않을까? 장애, 삶의 다양성 차원에서 다뤄 두번째, J. W. 피터슨 글, D. K. 래이 그림의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는 장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이 책의 화자인 ‘나’의 청각장애인 동생을 통해 청각장애인들의 불편을, 더 나아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들을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는지를 보여 준다. 따라서 그들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소리가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점은 이들이 가진 장애가 결코 장애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어내는 사람은 나예요. 풀밭의 아주 작은 움직임까지 보아내는 사람은 내 동생이고요.”라든지, “폭풍이 불어올 때, 갑자기 우르릉 천둥 소리가 울려도, 바람에 덧문이 덜컹덜컹 흔들려도, 내 동생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요. 그 애는 색색 잘도 잔답니다. 무서워하는 사람은 바로 나고요.”라는 부분은 장애인을 특별히 불편을 지닌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일반인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시각을 갖게 한다. 장애라는 것이 모든 상황이 그렇듯 단점도 있지만, 또 장점도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들과 다르기도 하지만,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장애를 시혜나 보호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다양성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보기 드문 좋은 책이다. 이 책들 외에도 요즘 점점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혼문제를 다루고 있는 네레 마어의 <아빠는 지금 하인리히 거리에 산다>,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사색할 기회를 제공하는 미스카 마일즈의 <애니의 노래>, 마녀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 주는 패트리샤 폴라코의 <바바야가 할머니>, 또 가난과 개발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국내 저자로는 보기 드문 한성옥, 김서정의 <나의 사직동>도 감동적이다. 물론 이런 책들이 아이들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다 진지하게 세상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데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부모 수준 이상으로 성숙할 수 없다. 그들 부모들의 말들, 가치관, 또 그들이 제공하는 책과 교육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좀더 건강한 의식을 가지길 바란다면 부모부터 건강한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좋은 어린이 그림동화책들 속에는 어른들을 깨우치기에도 충분한 좋은 이야기들이 넘친다. 동화책을 고르며, 아이들과 함께 독서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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