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낌 없이 쓴 10대 로맨스물

<그놈은 멋있었다>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3/05/18 [16:19]

거리낌 없이 쓴 10대 로맨스물

<그놈은 멋있었다>

김윤은미 | 입력 : 2003/05/18 [16:19]
<그놈은 멋있었다>라니, 제목 참 잘 뽑았다. <그놈은 멋있었다>(황매출판사)는 ‘책 안 보는 젊은 세대’라는 비판을 직격탄으로 받는 중고등학생들이 교실에서 책을 돌려보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놈..>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 작가 귀여니의 작품으로, 요즘 잘나가는 여타 소설과 마찬가지로 귀여니가 여고2학년 때 다음 유머게시판에 두 달간 연재한 소설. 귀여니 소설에 대한 10대 독자들의 열광은 엄청나서, 현재 ‘다음’에만 팬 까페가 180개가 넘고 귀여니의 소설이 연재되는 사이트(guiyeoni.com)의 회원은 3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 책을 본 10대 여성독자들은 공통적으로 ‘10대의 일상이 잘 드러나 있다’고 외친다. 사실 <그놈..>은 로맨스물의 공식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여주인공 한예원은 ‘귀여운 평범녀’다. 한예원과 사귀는 냉미남 지은성은 ‘4대천황’의 짱으로 잘생기고 주먹도 잘 휘두르지만, 성격이 차갑다. 이들의 연애는 지은성의 옛 애인 효빈과의 관계 때문에 위기를 겪고, 후반에는 한예원을 좋아하는 효빈의 오빠 한성의 출현으로 또 한 차례 갈등을 빚는다. 그리고 에피소드로 예원의 친구 경원과 은성의 친구 승표의 4년간의 징한 연애담까지 있다.

바이킹을 타듯 유쾌한 연애담

2003년 귀여니가 장악한 교실에서는, 10여 년 전 <인어공주를 위하여>와 <꽃보다 남자>(해적판 제목: 오렌지 보이)가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이 돌풍을 일으킨 이유도 귀여니 소설과 비슷했다. 일상에서 포착한 가벼운 코믹적 요소가 강해서, 여자아이들이 쉽게 공감했다는 점.

 
이미라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만화계에 뛰어든 작가다.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이슬비-서지원-백장미를 둘러싼 가족사가 눈물을 펑펑 뽑지만, 조종인을 비롯한 조연들의 일상은 유치하리만큼 경쾌하다. <꽃보다 남자>는 억척걸 츠쿠시와 성격 나쁜 냉미남 츠카사의 등장으로 90년대의 새로운 순정만화 스타일로 공인 받은 바 있다.
자기 대입이 편한 로맨스물에 대한 호응은 변한 것은 없다. 단지 초등학교 때부터 사귀는 풍경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지금, 여성독자들은 무엇이 편하고 즐거운 것인지를 잘 안다. 그래서 그 이전보다 더욱 부담 없이 냉미남과 연애하는 판타지를 추구한다. 그래서 냉미남의 상처를 어르고 달래야 할 여주인공의 부담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인어공주...>의 슬비는 서지원의 동생을 보살피고, 서지원과 늘 싸운다. 츠쿠시는 상류층 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지메로 죽도록 고생한다. <그놈..>의 예원이 역시 얻어맞고 다투지만, 예원의 고생담은 인생을 바꿔놓을 만큼 무겁지 않으며, 바이킹타기처럼 짜릿한 흥분에 가깝다.

이처럼 <그놈..>이 이전 로맨스물에 비해 심각성과 거리가 멀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냉미남 지은성의 상처가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냉미남의 성격을 형성시키는 심각한 과거로 채택된 것이 절대 고칠 수 없는 병 ‘에이즈’라니, 현 10대들의 상상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은성은 아버지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서 박대 받았고, 성격이 차가워지고, 이성과의 접촉을 피한다.

 
여기에다 ‘에이즈’ 감염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든지, 그 병의 감염과 치료가 국가/인종/성별 간 권력관계에 좌우된다든지 -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이즈’는 심각하면서도 예원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상처의 소재로서 채택된 것일 뿐이니까. 결론적으로 상처가 깊지 않은 만큼 지은성에게는 냉미남의 마초적인 냄새가 줄어들었다. 스토커! 같은 김한성이나 이정민과 같은 캐릭터에서는 남성 캐릭터의 마초성이 여전히 드러나지만, 이들은 결국 나가떨어지지 않는가.

이게 소설이야?

아무리 로맨스물이라고 해도, ‘소설’의 외피를 쓰고 대형서점에서 팔려나가니 귀여니 소설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가장 눈에 띄는 비판은 이것이 소설일 수 없다는 의견이다. 소설은 이모티콘과 같은 얼굴표정을 묘사해야 하는데 이모티콘을 그대로 썼으니 소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모티콘의 사용으로 한글파괴를 조장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귀여니 소설은 ‘시덥잖은’ 재미만을 주므로, 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순수문학’의 위기에 대한 고민까지 등장한다. 이모티콘과 일상체로 가득한 가벼운 소설을 보는 10대 독자들이, 무겁고 진중한 소설책을 볼 리가 없다는 것이다. 글쎄. 이건 좀 오버가 아닐까 생각된다. 순정만화와 하이틴 로맨스와 같은 대중문화는 대형서점에서 팔리지 않았을 뿐 언제나 있었으며 독서의 목적 자체가 다르니, ‘순수문학’ 위기의 원인을 이쪽으로 돌려봤자 해결책은 나지 않는다.

 
‘가벼움’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있지만, ‘가벼움’ 하나로는 비판의 근거가 약하다. 마찬가지로 <그놈은 멋있었다>의 가벼움이 ‘딱딱한 제도권 문학에 대한 비판’이라고 오버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순수문학’이 귀여니 소설에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들여다볼 이유도 없다. 문학이 추구하는 진중함을 세태에 뒤떨어지는 촌스러움과 혼돈해서는 안 될 테니.

거리낌 없는 단순함에 대한 열광

<그놈..>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예원은 5년 뒤에도 여전히 멋있는 그놈과 우연히 동거해서, 즐겁게 산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귀여니는 “그런 남자랑 결혼하면 일생 망치게요?”라고 대답했단다. 거리낌 없는 대답이다. 주먹 잘 쓰고 잘생긴 냉미남은 판타지일 뿐, 결혼하려면 경제력을 비롯한 다른 자원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독자들을 2권까지 단숨에 끌고 가는 힘은 구어체와 수많은 이모티콘으로 범벅이 된 귀여니의 거리낌 없는 단순함과 쉴 새 없이 빠른 서사 전개, ‘지은성’으로 대표되는 냉미남의 매력이다.

결국 <그놈..>에 대한 열광은 인터넷 게시판들을 뒤덮는 유머담에 대한 호응과 다르지 않다. ‘귀여니 신드롬’은 그 호응과 로맨스물에 대한 10대 여성들의 엄청난 열광이 결합해서 탄생했다. 독자들은 ‘싫으면 보지 말라’고 쏘아 붙이면서 귀여니 소설에 열광한다.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귀여니의 소설은 팬시형 문학이다. 귀엽고 간편한 펜을 고르듯 별다른 준비 없이 즐겁게 자기 대입할 수 있는 연애소설. <인어공주..>와 <꽃보다 남자>가 만화 속으로 끌고 들어온 그 일상의 단순함은, ‘소설’이라는 가장 비정형적인 양식을 통해 손쉽게 표출됐다. 그러고 보면 제2, 제3의 귀여니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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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ut 2003/05/21 [14:46] 수정 | 삭제
  • 도대체 어떤 글인가 하고 읽어봤지요.
    할 말 잃었습니다.
    이것저것 짜깁기된 그냥 신데렐라 이야기던데요.
    그들에겐 멋있다고 느껴지는 부와 권력을 가진 마초, 폭력, ...
    여자주인공에겐 별다른 매력은 없어서. 그로 인해 독자들이 자신에게 쉽게 대입할 수 있는.

    드라마 시리즈물이 통속적인 것처럼요.
    이런 종류의 글(흐름)도 있다 라는 정도에서 끝났으면 좋겠어요.
  • 캥거루 2003/05/19 [09:17] 수정 | 삭제
  • 언제였더라
    교보문고 놀러갔다가 귀여니 팬사인회에 갔었어.
    고딩에들이 주우욱 줄을 서서 사인을 받는데
    난 새치기해서
    귀여니만 보고 와야지 했는데..

    음. 그냥 그랬다구. 문득 이 글을 보니 생각이 나서.
  • 메이 2003/05/18 [18:33] 수정 | 삭제
  • 아, 이게 요즘 유행하는 귀여니 소설이었구나. ^^
    기사 재밌게 봤어요.
    '소설'은 더 재밌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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