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이상호 기자의 양심고백으로 촉발된 일명 ‘명품핸드백’ 사건으로 방송계와 언론계를 비롯해 여론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이슈가 된 해당 프로그램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의 존폐 논란보다도,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기업 관계자들이 ‘인맥’과 ‘돈’을 통해 접근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상호 기자의 용기 있는 고백이 아니었더라면 드러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을 통해 이런 행태들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그 밑그림을 그려보아야 합니다. 이 같은 비리는 비단 언론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며, 이상호 기자가 ‘자본의 유혹’, ‘(언론인의) 도덕’이라고 말한 것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특정 사회 인사들에게만 적용되는 얘기도 아닙니다. 이상호 기자는 장문의 글을 통해 당시 상황과 이후 심정까지 상세히 전달했는데, 상당 부분 그대로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개인적으로도 많은 생각들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인맥과 돈으로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각 개인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나의 부모님을 통해 배웠고 꾸준히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 경험과 고민들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 해당 부서의 인사담당자가 되셨는데, 그로부터 아버지의 직책이 바뀌기 전까지 온 가족들이 겪었던 사연들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손님들, 그들이 내미는 봉투들, 쌓이는 소포들, 참으로 황당한 세상이더군요. 그리 높은 직책도 아니었고 월급도 변변치 않았는데, 인사권에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는 이유로 아버지 주위엔 ‘어떻게 해보려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전화기는 하루 종일 불이 났고, 집에선 ‘주소를 묻는 어떤 전화에도 절대로 알려주지 말 것’과 같은 지침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도 부처 사람들에게 연락처와 주소를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지만, 어떻게 알고 오는 것인지 저녁이 되면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집 앞이 장사 진을 이뤘습니다. 가족들의 생활은 피곤해졌습니다. 어머니도 직장에 다니셔서 낮엔 아무도 없는데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손님들이 나를 붙들고, 어머니가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하는 것까지 물어보았습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어머니였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상황에 몹시 분개했습니다. ‘모든 인사가 이런 식의 과정을 거친단 말인가’. 어린 나이에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생생히 목격하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특히 직장 일과 가사 일을 병행하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일과 관련해 이렇게 귀찮은 방문객들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애꿎게도 아버지에게 왜 이런 일을 우리가 겪어야 하느냐고 불평을 터뜨린 적도 있었죠. 나중엔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는 쪽으로 좀더 강경한(?) 방식을 택했지만, 초기엔 아버지 얼굴 볼 때까지 갈 수 없다면서 방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손님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한 시간 넘게 숨어 계신 적도 있었습니다. 무슨 빚진 사람들마냥 우리 가족들은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게 일이었죠. 손님들을 돌려보내는 것만이 고역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돈 봉투는 물론이고 모든 소포들을 다시 보내온 쪽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아마 아버지를 비롯해 해당 부서의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 이외에도 이런 뇌물과 청탁을 거절하고 처리하는 데 많은 시간과 인력이 들었을 것입니다. 나는 때때로 당시 아버지가 보여준 그 ‘철저함’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일방적으로 전달 된 선물들을 일일이 다시 부치는 일이 생각보다 귀찮은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고급 갈비상자와 같은 선물은 다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상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되돌려 보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우리 집은 과일도 못 사먹는 형편이었는데 갈비 값으로 십만 원이 넘는 돈을 부치다니, 나는 “썩던 말던 그냥 그대로 부치지 왜 돈을 보내주느냐”고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아버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또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눈물’이었습니다. 특히 아내를 동반해서 우리 가족들에게 쓰러질 듯 매달리며 애원을 하는 사람들을 뿌리치는 것은 더욱 곤혹스러웠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대면하고 있으면, 상대방은 죄지은 것도 없이 자신이 매정하고 차가운 사람이란 느낌을 받게 마련이죠. 때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는데, 언니와 근처 식료품 점에 갔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추위를 녹이기 위해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저씨들의 무리를 목격했습니다. 그땐 화가 난다기 보단 그 사람들이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집에 들어와 어머니에게 “밖에 아저씨들이 뜀박질하고 있어요. 너무 불쌍해요. 한 번 얼굴만 보고 돌려보내지, 아빠가 너무한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죠. 어린 나의 감상적인 말에, 현명하신 어머니는 이렇게 일축했습니다. “여울아, 그 사람들 다 우리보다 잘 사는 사람들이야. 우리 집 형편 보고 아마 놀랐을 거다. 그 아저씨들 너희 아빠한텐 저렇게 구차하게 매달려도 집에 가면 다 가장이랍시고 처자식에게 큰 소리 떵떵 치는 사람들이다.” 그 말씀을 들은 이후론 쓸데없는 동정심은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 사람들을 대면하지 않으려 하는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죠.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사과정에서 그런 사연들은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자료를 통해 반영되어야지, 직접 대면을 하는 것은 ‘비리’의 길을 열어놓는 셈인 것입니다. 이번 ‘명품핸드백’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애당초 그런 자리가 마련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죠. 아버지는 직장 일을 자녀에겐 잘 말씀하지 않는 분이셨지만, 어머니와 얘기 나누는 것을 귀동냥해서 들은 것으로는 당시 인사 발령과 관련해 주위에서 욕도 무척 많이 먹었고 그러나 그만큼 신뢰도 많이 쌓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당시엔 가족들 모두 큰 홍역을 치렀지만 그것도 다 값진 사회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로부터 또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공직사회도 예전과는 달라져서, 집에 들어오는 신년 선물들의 수도 많이 줄었고 그 규모도 법이 정한 금액을 초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연과 학연 등의 인맥을 통한 인사가 얼마나 단절됐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언론계를 비롯해 일반사회에선 여전히 인맥과 금품 등의 외압이 기세 등등한 현실입니다. 다시 ‘명품핸드백’ 사건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보면, 이번 사건을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 실천해야 할 윤리를 성찰해보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 구성원 대부분 크고 작은 ‘명품핸드백’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문사에 있었을 때 모 기업의 잘못을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가, 기사가 나가기도 전에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냈는지 해당 기업이 신문사 광고국에 연락을 해 갑자기 광고를 주겠다고 제안을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최근엔 취업문이 더욱 좁아지면서 ‘인맥’이 최고의 전략이자 심지어 능력이라고까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병원마다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의 가족들은 “의사에게 돈을 바치지 않으면 수술날짜도 못 잡는다”는 말을 합니다. 예전의 나는 거짓과 비리에 휘둘리지 않고 살기 위해선 기본적인 상식과 양심이 있으면 된다고, 즉 악의 없이 평범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직까지 이 사회에서 비리 없이 살아가려면 평범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 ‘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그냥 저냥 살다간 예기치 않게 온갖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고, 이것쯤은 되겠지 했다간 금새 일정 ‘선’을 넘어버리게 됩니다. 한 번 경계가 무너지면 다시 그 선을 세우기란 어려운 일이죠. 오랜 기간 관행으로 자리해 온 비리를, 그 안의 같은 구성원으로는 끊어내기 어렵다는 걸 정치판을 보면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사회가 이러하기에 우리에겐 매 순간 특별한 다짐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언론인, 공직자, 정치인, 교육자에겐 더욱 무거운 과제일 것입니다. 살면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의 모델을 어린 시절 부모님을 통해 발견했지만, 병원에서 환자 가족들이 주는 과일바구니조차 “우린 어떤 것도 일절 받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거절하는 간호사들에게서도 발견했습니다. ‘명품핸드백’ 사건을 둘러싼 지금의 고민들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가 아니어야 하는 이유, 늘 지금의 행동의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넓게 생각하며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을 점검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일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는 부당한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며,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더욱 못 살게 만들고, 또한 그 악순환이 끝없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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