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 + 타투 = 레즈비언?

공포물의 어두운 꽃, 혹은 포르노로서의 레즈비언

홍문보미 | 기사입력 2003/05/21 [11:02]

장화홍련 + 타투 = 레즈비언?

공포물의 어두운 꽃, 혹은 포르노로서의 레즈비언

홍문보미 | 입력 : 2003/05/21 [11:02]
'장화 홍련+ 타투 = 레즈비언?

그 수상한 문구를 발견한 것은 며칠 전 다음넷 첫화면에서였다. VOD소개코너에서 반짝이고 있던 저 문구와 함께 <장화 홍련>의 두 소녀배우의 얼굴이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곧 개봉할 영화 <장화 홍련>의 홍보용 뮤직비디오인 듯 했다. 배경음악은 T.A.T.U의 'Clawns'. 알다시피 타투는 예쁘장한 10대 소녀들의 레즈비언 이미지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고 있다. 그렇다면 '장화 홍련'은 왜 타투의 음악을 깔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을까? 사실 답은 명확하다. '장화 홍련 + 타투 = 레즈비언?'이라는 타이틀이 이미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뮤직비디오 안에 노골적인 레즈비언 이미지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화 홍련> 뮤직비디오는 여러 모로 타투의 데뷔 타이틀 'All the things she said' 뮤직비디오를 떠올리게 한다. 'All the things she said'는 두 십대 소녀간의 농도짙은 키스신을 담은 러브스토리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daum 상영관에서 그 뮤직비디오를 올린 후 이틀 만에 조회수가 100만회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 화제의 'All the things she said'과 <장화 홍련> 뮤직비디오의 엔딩은 거의 흡사하다- 둘 다 뒷모습을 보이며 손을 잡고 화면 저 밖으로 달려가는 10대 소녀들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all the things...'에서 철창 안에서 키스를 하고 애무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장화 홍련'에서 새 장 속 서로에게 몸을 부비는 두 마리 작은 새의 모습에 겹쳐진다. 그리고 새장 안 두 새들은, 나란히 서서 휘파람을 불거나 서로 장난을 치는 두 소녀배우들의 모습과 나란히 편집됨으로서, 영화 속 두 소녀의 은유라는 것을 쉬이 알 수 있게끔 한다. 결국 '장화 홍련' 뮤직비디오는 10대 레즈비언 그룹 타투의 '노골적인' 뮤직비디오를 암시함으로서 예쁘고 어린 소녀들의 레즈비언 이미지를 마케팅에 슬쩍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전 우연히 본 패션잡지에는 '장화 홍련'의 두 주연배우 임수정, 문근영을 주인공으로 한 패션 화보가 실려있었다. 김지운 감독이 직접 썼다는 화보의 내용은, 전형적인 레즈비언 사이코 스릴러의 플롯이었다. 희생자인 듯 했던 두 예쁜 소녀들이 실은 남자들을 유혹해서 죽이는 공모자였다는 내용, 그리고 두 소녀의 레즈비언 관계에 대한 명백한 암시.

영화 <장화 홍련>이 실제로 레즈비언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말할 생각도 없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마케팅에서 레즈비언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현실의 레즈비언 소녀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타투'가 그러했듯이 이성애중심/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어리고 예쁜 소녀들을 다룬 레즈비언 환타지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타투'의 마케팅은 레즈비언 소녀에 대한 포르노그래피적 환상을 겨냥한다. 속옷과 다를 바없는 무대의상, 가능한 에로틱한 포즈를 취한 반라의 사진들. 지금 '타투'의 기획사에서는 2집 재킷 사진을 위해 타투와 함께 누드사진을 찍을 어린 소녀팬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소녀간의 사랑을 다룬 노래가사가 얼마나 애절하든, 두 소녀가 실제로 연인이든 아니든, 타투의 기획사에서 의도하는 것은 레즈비언 소녀에 대한 관음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장화 홍련> 마케팅에서 암시되는 관계는, 레즈비언 이미지가 이용되는 또다른 재현방식을 보여준다. 대중문화에서 레즈비언은 으례 죽음과 유령, 치명적인 범죄, 에로티시즘과 공포와 같은 선 위에 놓여있다. 레즈비언 관계는 매혹적인 공포를 선사하거나 가중시킨다. 레즈비언 이미지를 이용한 많은 대중소설, 영화, 만화가 그 친숙한 방식에서 맴돌고 있다. (한국영화에서 레즈비언을 다룬 영화들의 목록들만을 떠올려 보길. 여고괴담, 가위, 텔미 썸 씽, 노랑 머리....몇 안 되는 리스트들은 모두 다 호러/ 사이코 스릴러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타투 + 장화 홍련= 레즈비언?' 이라는 선전문구는 정확하다. 이 사회에서 레즈비언은 이성애 남성들의 포르노그래피, 아니면 매혹적인 공포물의 어두운 꽃으로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 시선들의 환상 너머에서 실제의 레즈비언들은 존재가 지워지는 또다른 공포를 맛본다. <장화 홍련> 속 적절한 비명소리에 맞춰 레즈비언들은 다른 음계의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디 이 비명소리가 살아있는 자신을 증명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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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티 2003/05/21 [22:45] 수정 | 삭제
  • 정말 이런 기사를 원했다.
    장화홍련이 타투랑 같이 이야기되는거 보고 정말 불쾌했다.
    김지운 감독 커밍아웃때부터 딱 저런 이미지의 레즈비언 코드를 사용하는 것 같다.
    여고괴담두번째와는 비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딱 자기들 유희하기 좋은 선까지 나오는 셈이다.
    장화홍련이 어떻게 나올런지는 모르지만
    마케팅과 크게 다를바 없으리라는 기대이다.
  • 어두운꽃 2003/05/21 [20:30] 수정 | 삭제
  • 다른 음계의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동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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