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의 비정함, 삶의 비정함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5/03/07 [23:11]

링 위의 비정함, 삶의 비정함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김윤은미 | 입력 : 2005/03/07 [23:11]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권투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상당히 고전적인 드라마다.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비정하고 천박하기까지 한 세상에 과연 구원이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그에게 구원이란 피를 나누지 않은 낯선 이들이 만나서 진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유대감을 느끼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감정을 시험 받는 상황은 관객들에게도 “과연 구원이란 있을까요?”라고 묻는 듯하다.

화려한 링 뒤의 수많은 상처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공간이 주로 등장한다. 다 쓰러져가는 변두리의 체육관과, 체육관과는 사뭇 대조적인 돈과 반칙이 난무하는 화려한 링. 이 공간들은 세상을 압축한 표본이다.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몇 가지 간단한 설정을 통해 이 공간 속에서 구원을 찾아 헤매는 세 주인공(프랭키와 스트랩, 매키)의 모습을 완벽하게 형상화한다.

변두리 체육관의 주인은 권투 선수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는 누구보다도 노련한 트레이너지만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경기를 선택해, 타이틀전을 원하는 유능한 선수들을 돈 많은 매니저에게 빼앗긴다. 관중의 환호성 속에서 타이틀전을 치르는 것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다. 그러나 선수의 부상이나 죽음마저도 아랑곳하지 않는 매니저들의 돈 놀음판과 반칙 속에서 많은 선수들은 링을 떠나야 한다. 때문에 프랭키는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프랭키는 반송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딸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부치는 한편 교회에서 ‘삼위일체가 어떻게 가능한가’ 따위의 어이없는 질문을 던져서 핀잔을 받는다. 게일어로 된 예이츠 시집을 열심히 읽는 그의 모습은 프랭키가 늘 의미 있는 삶을 찾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프랭키의 친구 스트랩(모건 프리먼)은 109회째 경기에서 매니저의 방관으로 말미암아 피를 지나치게 흘리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어버린 복서로 체육관 청소와 관리를 도맡고 있다. 현재 이들은 화려한 링 뒤로 펼쳐지는 상처들을 수없이 경험한 후 냉정하고 담담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통조림이 아닌, 직접 만든 레몬파이에 만족해하는 프랭키의 모습은 다분히 소박하고 미국적인 희망을 상징한다.

매기(힐러리 스웽크)는 이들의 관계에 들어갈 만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비극적인 남장 레즈비언의 삶을 실감나게 연기한 힐러리 스웽크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도 실제 선수 못지않은 고된 훈련 과정을 통해 여자 권투선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매기는 딸과의 관계가 소원한 프랭키에게 “혹시 체중이 많이 나가요? 우리 집 가족은 체중만큼 말썽을 피우거든요”라고 맞받아칠 줄 안다. 그녀에게는 늘 사고치는 가족들과 종업원 인생 이십 년이 전부다.

복싱이 아니라면 그녀의 삶은 변할 수 없다. 그녀가 프랭키의 선수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과정은 꽤 정석적인 플롯을 따른다. 프랭키는 여자선수를 키우지 않겠다고 거부하지만, 그녀는 열심히 훈련을 해서 스트랩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어서 프랭키의 마음까지 동하게 한다. 프랭키의 권투는 지극히 남성적이지만 남성성 이전에 성실함이 먼저다. 돈 때문에 선수들을 떠나 보낸 상처, 스트랩처럼 링 위에서 다친 선수들에 대한 아픔 등 세월이 그에게 새겨준 묵직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결국 프랭키는 매기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혈연을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

매기와 프랭키는 잇달아 게임에서 이기면서 승승장구한다. 매기의 권투 장면은 비록 간단하게 처리되지만, 여자권투를 제대로 보기 힘든 한국관객들에게는 꽤 흥미롭게 다가갈 것 같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그려지는 권투란 선수와 관중 모두 맨살에 가해지는 극렬한 폭력에 도취되는 것인데, 시종일관 낮게 깔리는 스트랩의 나레이션은 이 폭력의 비정함 위에 삶의 비정함을 겹쳐놓는다.

매기와 프랭키 사이에는 진한 애정이 싹튼다. 프랭키가 매기의 옷에 새겨준 ‘모쿠슈라’라는 말처럼, 이 애정은 일상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는 가족적이지만 서로를 깊게 신뢰한다는 점에서는 동지애와 비슷하다. 가족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를 보여주었다는 점, 딸 없는 아버지와 아버지 없는 딸이 만나서 아버지와 딸의 긍정적인 관계를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을 악인으로 모는 것은 아니다. 매기의 가족은 가족주의의 허구성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매기가 권투로 힘들게 돈을 벌어 집을 사주어도 매기를 무시하며 돈이나 뜯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냉정하게 관찰하면서,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세파에 찌든 평범한 사람들임을 잘 보여준다. 매기가 이 치졸한 가족에게 던지는 말은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다. 냉정한 세상 속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때로는 가장 나쁘게 변할 수 있다.

영화는 이들의 관계에 계속해서 장애물을 설정한다. 현실이 이렇게도 냉혹한데, 너희가 그 소박한 신뢰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냐는 식이다. 결국 매기는 치명적인 반칙을 당하고 그들의 운명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프랭키와 매기는 우직함과 변함없는 신뢰, 애정으로 맞서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스트랩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프랭키에 대해 “그의 감정은 모두 죽어버렸을 거야”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러나 영화 전체에 녹아 든 현실의 비정함과 프랭키가 매기에게 읽어주는, 평화로운 섬 이니스프리를 노래하는 예이츠의 시는 묘하게 잘 어울린다. 아마도 이 영화가 많은 관객을 울리는 것은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이 어떻게 이를 수용하는가를, 비애감을 억제한 가운데 극도로 담담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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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린 2005/03/18 [14:59] 수정 | 삭제
  • 영화의 소소한 내용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들을 건드렸나봐요.
    계속 눈물이 나는 거 있죠? 그러면서 좀 시원해지고.

    영화를 보여준 친구에게 계속 고맙다고 했죠.
  • j 2005/03/15 [20:03] 수정 | 삭제
  • 이 글을 읽으니까 좋네요...
    그녀가 유일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그리고 결국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준,,,사람은 '가족'이 아닌,,
    프랭키...
  • scene 2005/03/09 [15:15] 수정 | 삭제
  • 다시 보게 되는 배우이자 감독
    노련미가 느껴지는. 늘 성장하는 이런 배우의 모습. 보기 좋다.
  • 아트 2005/03/08 [23:01] 수정 | 삭제
  • 이런 영화 보면 저런 여성캐릭터가 있다는 게 배우로서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헐리웃도 여배우들이 좋은 배역 구하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들에 비하면 훨씬 상황이 나은 것 같아요.
    힐러리 스웽크.. 멋진 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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