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지었으니 벌받는 거겠죠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3/05/25 [10:34]

죄를 지었으니 벌받는 거겠죠

김이정민 | 입력 : 2003/05/25 [10:34]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거겠죠"

사건 취재를 위해 만났던 피해자 혜선씨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녀는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는 듯 보였다.

혜선씨는 처음 벌금 예납 고지서를 받았을 때 믿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용기를 내어 여성의 전화를 찾고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누구에게 쉽게 말하기조차 힘들었던 이야기, 그래도 억울하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힘겹게 결심한 신고였는데, 길었던 조사 과정보다 그녀를 더 지치게 한 것은 벌금 백만원 통보였던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를 고소했던 내가 아는 한 여성은 승소하고 나니 비로소 세상에 당당해질 수 있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딜 가든 내가 피해자였다고 말할 수 있었고, 사람들도 그제서야 인정해 주더라고 말이다. 그러니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을 때 피해자가 느끼게 되는 상실감은 오히려 커지게 된다.

옆에 있던 여성의 전화 활동가가 성매매는 범죄가 아니라고,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했지만 법이 그녀의 무죄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검사는 법조항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여 그녀에게 벌금을 내렸을 뿐이겠지만 그 결정은 혜선씨에게 부담스러운 돈의 액수보다 훨씬 더 큰, 스스로도 '죄를 지었다'는 자책감을 가지게 만든 것이다.

성매매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사회는 정말이지 성을 사는 것을 끔찍할만큼 당연하게 생각한다. 혹자는 요즘엔 돈을 쉽게 벌려고 성매매를 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 여성들로 하여금 성을 팔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는 왜 보지 못하는가. 혜선씨 말대로 "먹고 사는 게 가장 급했던" 그녀가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모른 척 해서는 안 된다.

나이 어린 여성들이 사회로 나와 자립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뻗치는 손길, 여성의 몸을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들, 너무나 오랜 세월 존재해 왔다며 필요악이라 옹호를 받는 성매매 업소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 사회의 책임은 왜 묻지 않는가. 검찰은 벌금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그렇게 물었어야 했다. 이번 결정이 피해자들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갈지 생각했어야 했다.

결국 벌금은 그녀에게 돈에 대한 부담보다 더 큰 상실감을 가져다주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책임져야할 사회가 오히려 그녀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가는 것 같아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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