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공포 '사스' (SARS)

베이징 거리에서

조혜신 | 기사입력 2003/05/25 [22:53]

일상의 공포 '사스' (SARS)

베이징 거리에서

조혜신 | 입력 : 2003/05/25 [22:53]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중국어로 ‘페이디엔’(非典)이라는 준말로 불리는 사스는 이제 우리에게도 친숙한 단어가 되고 말았다. 홍콩과 중국 광둥성 지역에서 번지기 시작한 사스가 올해 3월, 중국 수도 베이징을 비롯한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하며, 한국 언론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스 속보를 내보냈다. 언론에서는 연일 늘어나는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자세히 보도하는가 하면, 한국에 사스가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정부의 방역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땅에서 일어나는 먼 일이었다.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말할 때 폭탄이 떨어지는 바그다드의 거리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미국이 투하한 폭탄의 종류가 더 많이 보도되었던 것처럼, 이라크 사람들의 피해와 공포감보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 분석이 앞섰던 것처럼, 중국의 사스 보도 역시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스 역시 그곳 베이징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포로 남아있는 생생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부시가 이라크 종전을 선언했다고 해서 이라크의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고, 이라크 사람들은 상처와 폭격의 잔해에서 다시 또 다른 ‘전쟁’을 이어가야 하는 것처럼, 베이징의 사스 역시 우리에겐 아직 해야 할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침묵했던 중국 언론

사스가 가져온 것은 공포였다. 처음 사스가 ‘괴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처럼, 사스 바이러스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고 당시만 해도 전염 통로가 분명치 않았다. 그 불확실성의 공포는 중국의 통제되는 언론 상황에 힘입어 더욱 가속되었다. 세계 언론에서 연일 홍콩과 광둥성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베이징까지 번졌다는 얘기가 시작되었던 3월 말까지도 중국언론은 그 심각성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한 예로, 3월 27일 베이징완빠오는 작은 박스기사로 “베이징시의 외부에서 들어온 사스는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다”를 제목으로 뽑을 정도였다. 며칠 후 4월 2일 7시 중앙 뉴스에서 위생부장관이 “괴질은 이미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아무 문제 없으니 안심하라"라는 담화를 갖기도 했다. 4월 20일 중국 정부가 사실 은폐를 공식 시인하고 감염자 수를 밝히기 시작했으나 이미 사람들은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은 후였다.

4월 23일부터 공식 감염자 수가 하루에도 대략 백명씩 늘어나는 가운데, 수많은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중관춘 지역은 절대 가면 안 된다”, “북경대에도 환자가 있다”, “하이덴취의 무슨 아파트에는 7명이 걸렸다”는 등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들은 이후에 어떤 것은 진짜로, 어떤 것은 근거 없는 말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또 유언비어인지 구별할 수 없는,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이다.

마스크, 마스크, 베이징의 거리

마스크는 사스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외국인들과 몇몇 예민한 사람들만 쓰는 것이었으나, 4월 중순이 넘어서자 북경 시내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약국 앞에서 새로 나온 18겹의 마스크를 사려고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고, 육교 위에서 잡동사니를 파는 보따리 장사 아주머니도 이전에 팔던 양말이나 핸드폰 주머니 대신 모두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팔기 시작했다. 4월의 봄 날씨에 마스크를 두세 겹씩 쓰지 않고서는 문 밖을 나설 수 없는 상황이 가져오는 압력은 상당했다.

사람들은 이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피했다. 자가용의 비율이 낮은 베이징에서 버스를 꽉 메우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밖에 나가지 않았다. 학교가 휴교하고, 직장에서는 매일 체온을 재는 한편, 아예 직장 문을 닫기도 했다. 번화한 상점가도 모두 텅 비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고, 베이징 시 어디에서나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다. 누구든 둘만 모여 앉았다 하면 사스 이야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고, 어제는 어느 학교가 휴교했다더라, 누가 죽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로 일상이 채워졌다. 베이징 시가 봉쇄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도는 것과 함께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식료품 가격은 두세 배로 뛰었고, 사람들은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긴 줄을 서서 물건을 사들였다. 외국인들은 하나 둘씩 베이징을 떠나고, 타지에서 온 중국사람들도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떠나는 사람들, 남는 사람들

일상이 파괴되는 경험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두렵다. 누구나 아침에 햇살을 받으며 거리에 발을 디딜 수 있기를 원하고, 언제 병에 걸릴지 모르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그 상황의 압력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슬픔, 그리고 도대체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막막함을 가져다 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조심하며, 만약 떠날 수 있다면 떠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남겨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누구도 가기 꺼려하는 베이징 역에서도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 있고, 그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하루 얼마의 수입을 위해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이 되도록 피하고 싶어하는 붐비는 시내버스 안에서 차표를 파는 차장들도 있다. 시골에서 몰래 기차를 숨어 타고 올라와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한 방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는 숙소에서 잠깐 잠을 청해야 하는 농촌 출신 이주노동자들(민공: 民工)은 조금 감기 기운이 있다고 병원에 가는 건 생각도 못할 것이다.

‘일상의 전쟁’이라는 말의 의미를 나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전쟁은 결코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로, 같은 기억으로 남겨지지 않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지만, 질병은 사실 전혀 공평하지 않다. 결국 죽음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돈이 없는 사람, 나이든 사람, 어린 아이, 거리의 노숙자들, 잘 먹지 못해 건강상태가 약해진 사람, 과로 노동에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사스 위기에서처럼 '국가적 위기상황'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쉽게 격리나 통제의 대상이 되고, 문제집단으로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이제 세계 언론에서 사스는 벌써 지나간 소재다. 이미 떠날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뉴스 화면이 멈추고 특파원들이 돌아올 때, 결코 그 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순간에도 베이징에서는 마스크를 몇 겹씩 쓰고 사람들은 일을 하러 나선다. 점점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믿어도 좋을지 고민하며, 예방효과가 있다는 정체 모르는 한약을 줄 서서 사기도 하고, 소독약을 뿌리면서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사스 때문에 문 닫은 직장으로 직업을 잃은 사람들도 있고, 가족이 전염되어 격리되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사스가 불러 일으킨 인종주의로 미국에서, 유럽에서, 한국에서 차별 받는 중국 사람들도 있다.

지금 베이징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을 우리는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그것은 일상의 전쟁 속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생존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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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RA 2003/05/28 [21:12] 수정 | 삭제
  •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구요.
    근데 거기서 살아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무서워졌어요.
  • 새물 2003/05/27 [11:56] 수정 | 삭제
  • 늘 그렇게 남겨지게 되는 군요.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것이 의무감도 아니요, 희생과 봉사 정신도 아니요, 오로지 버려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삶이 가끔씩 겁나게 무서운 것은 사스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좋은 기사,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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