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반검열 속 그 아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멈춰있던 시간

정연 | 기사입력 2005/05/23 [18:37]

[기고] 이반검열 속 그 아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멈춰있던 시간

정연 | 입력 : 2005/05/23 [18:37]
정확히 언제쯤의 일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몸에 꼭 맞는 교복과 비좁고 딱딱한 1인용 책상, 하루 일과가 숨쉴 틈도 없다는 듯이 네모난 시간표에 빽빽이 적혀있던 것으로 기억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시간 역시 움직이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 멎어있었다고 늘 느꼈기에. 기억을 억지로라도 더듬어 보라면 2000년, 2001년 그쯤의 일이 아닌가 싶다.

나는 고등학교 때 동성애자로 정체화를 했으며, 매우 운이 좋게도 학교에 레즈비언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요즘처럼 ‘정체성을 기반으로 인터넷에서 만나 알고 보니 같은 학교더라’ 같은 것이 아니라,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마음이 맞고 취향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이고 친해지고, 그러고 보니 모두들 이성애자는 아니더라’ 하는 식이었다.

친구들 중에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도 있었고, 고민하지 않는 친구도 있었고, 이미 고민이 끝난 친구도 있었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친구들이 더 필요한 친구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었으며, 활발하게 이반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그 중 한 친구가 어느 날 0교시 시작도 전에, 허겁지겁 우리 반에 찾아왔다. 쾅 소리가 나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복도 구석으로 불러내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너 탈퇴했어?”였다. 얘가 왜 이래 하는 표정으로 “뭐?”하고 반문했더니, 친구는 퍽 다급한 목소리로 “난리가 났는데 왜 너만 모르느냐”면서 모 사이트에 있는 10대 이반클럽에 가입해있는 사람들 아이디로 신상정보를 찾아내, 학교에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통보한다는 소문이 이미 퍼져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내 손을 끌고 다른 반에 있는 친구들을 불러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미처 설명도 듣기 전에 종이 울렸고, 우리는 각각 교실로 흩어졌다. 점심시간에 모여서 친구의 이야기를 다시 듣자니, 어떤 지역 어느 학교에서 몇몇 아이들이 이반임이 걸렸고, 선생들의 추궁을 통해 그 또래 이반들의 모임 이야기가 나오고, 일이 점점 커져서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고 들었단다. 소문은 인터넷을 타고,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빨리 또래 아이들에게 퍼졌다.

그 클럽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고, 신상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위법인데다가, 학교에서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로 학생을 자른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했던 내가 그날 저녁 문제의 모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탈퇴를 할 것인지 미처 고민하기도 전에, 늘 보이던 클럽이름 대신 “마녀사냥 혹은 이반사냥을 이유로 클럽을 폐쇄합니다” 라는 내용의 쪽지 몇 통을 확인해야 했다.

소문이 1주일 가량 혹은 그 보다 좀 더 오래 지속되는 동안 어느 지역에서는 이미 몇몇 학교에 통보가 갔다느니, 몇 명이 퇴학을 당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무성하던 소문은 시간이 지나자 사그라졌다. 나와 내 친구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났다. 지긋지긋했던 교문 그 앞에서 졸업기념사진을 친구들과 찍은 것을 마지막으로 학교에는 일절 발길을 끊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내 쪽에서 굳이 외면하지 않아도, 학교와 옛 기억들은 아스라히 사라져갔다. 학교는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변화에 제일 더딘 곳 중 하나가, 아니 절대 변하지 않을 곳 중 하나가 학교 아니던가. 그러나 학교 역시 변했다. 불과 몇 년 전 내가 ‘되도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벌어지고 있었다. 색출과 검열과 감시.

팔목에 빨간 줄을 몇 개나 가지고 있던, 영화 <이반검열> 안의 그 아이는, 그러나 다행히도 계속해서 카메라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회에서 가르쳐준 말도 아니었고, 학교나 선생의 말을 되풀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의 언어였다. 아이들은 얼마나 현실이 부조리한지를, 부당한지를 스스로 습득한, 스스로의 언어로 고발해내고 분노했다.

언어와 사유, 행동에 관한 그럴싸한 인용문을 달아 이 글을 마무리하려다가는 커서를 되돌렸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해야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사람취급도 안하고 그럼 안되지’ 하고, 어른들 말하는 어려운 단어 하나 쓰지 않고도, 문제를 꿰뚫었던 따끔한 영상 속 한 마디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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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유리 2005/07/19 [01:39] 수정 | 삭제
  • 옛 부터 마녀사냥에 사용된 명분은 항상 거창하고 당연시 되어야만 했던 궤변들이 많았어요. 현대가 되었다고 해서 그 방정식이 바뀐건 아니니까.

    학교라는 집단이 군 집단 처럼 개혁이 어려운 곳 중 하나이죠.
    그리고 변화한다는 것을 두려워 하는 집단이기도 하구요.
  • ... 2005/05/30 [11:04] 수정 | 삭제
  • 이반이라고 하면 죄인인 것처럼 안 좋게 보고..
    문제아들 처단한다는 식으로 해요.
    그럴수록 소수만 뭉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떤 선생님들은 더 심하게 하는 것 같아요.
  • 2005/05/28 [19:58] 수정 | 삭제
  • 죄도 없는 학생들에게 뭔 짓이랍니까.
  • root 2005/05/25 [17:59] 수정 | 삭제
  • 그 때 고등학생도 아니었지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휘유 얼마나 놀랐던지요.
    이 다큐 보고 싶었는데 못 봤어요.
  • sa 2005/05/24 [10:38] 수정 | 삭제
  • 여러 일들 많았지만 무사히 나와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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