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기존 CF를 패러디하는 광고로 눈길을 끌어온 모 속옷 회사의 2003년 여름 인쇄 광고. 이번 패러디 대상은 현재 최고 흥행을 달리고 있는 영화 <살인의 추억>이다.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어쩌면 유치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영화를 패러디하고 있는 이 광고는 살인의 추억의 이미지만을 차용하고 있다. 제목은 '팬티의 추억'. 카피는 "미치도록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달았다.
처음 광고를 지하철에 접했을 때 느껴지는 것은 불쾌감 자체였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화성에서 벌어진 연쇄강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역설적 의미를 담은 영화의 제목도 이 사건이 추억이 될 수 있느냐/결코 추억이 될 수는 없다는 대답에 이른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고는 이를 단순히 웃긴 코드로 바꾸면서 영화와 사건 모두를 우스운 이미지로 덮어버렸다. '팬티의 추억'이라는 제목은 영화가 강한 부정의 의미로 사용했던 '추억'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의미도 없이 단지 패러디의 요소로 사용한다. 때문에 이는 옛 것을 아련하게 그리는 추억이라는 의미에 그대로 노출돼 버린다. 사진 역시 영화와 흡사하게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나뭇가지에 여성의 속옷(브래지어와 팬티)가 걸려있는 장면이다.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과 유사한 배경, 마치 강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을 재현한 것 같이 팬티와 브래지어를 걸어놓은 그 장면은 당시의 사건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미치도록 보여주고 싶었다"는 카피를 사용함으로써 여성의 속옷을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라고 이야기한다. <살인의 추억>을 패러디했으니, 사진카피의 대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속옷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바로 그 사진을 찍은 장소에서 자신의 팬티를 뒤집어 쓴 채, 브래지어 끈으로 목졸림을 당해 죽었다. "미치도록 보여주고 싶다"는 카피가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얘긴지 모르겠으나 <살인의 추억>이 다루는 사건과 연결시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패러디는 그 대상을 비틀어보거나 풍자하여 해방감을 주는 저항의 쾌감을 주거나 광고에서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하여 더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웃음을 유발하는 패러디가 상품을 더 많이 팔아먹기 위해 예의도 상식도 없이 무조건 갖다 붙여도 좋은 것인가. 이 광고의 패러디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 맥락에서 이 속옷 광고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최악의 광고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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