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한 귀퉁이의 한숨

고유영아 | 기사입력 2003/05/30 [15:19]

학교 한 귀퉁이의 한숨

고유영아 | 입력 : 2003/05/30 [15:19]
‘학교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토론회’에 참가했다가 오는 길에 집 앞 ‘학교’를 들렀다. 늦은 시각에도 밝은 모습으로 공을 차며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운동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그저 평화스러운 한 장면으로 느껴졌을 그 장면이 오늘은 무겁게 와 닿았다. 토론회에서 마주친 많은 비정규직 여성들의 탄식과 한숨이 어둠이 내린 운동장 저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학교’라는 공간을 떠올릴 때면 ‘교사-학생’ 외의 다른 존재들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비로소 오늘에야 ‘학교’라는 공간을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 영양사, 조리사, 사서, 과학실험보조원 등이 있음을 깨달았다.

학생들과 정규직 교사들이 방학을 즐기는 동안, 8만의 학교 비정규직은 발이 부르트도록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은가?

같은 학교에서 19년째 일하고 있으면서도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하고 매년 변함없는 월급을 받고 있다는 어느 조리사, 올해 임금인상이 6백원밖에 안되었다고 울분을 토로하는 조리종사원, 3년째 근무해도 방학을 빼면 560일 경력 밖에 인정 못 받아 다른 직장 옮기기도 힘들다는 사서.. 이들의 평균 일당은 2만8천원이다. 일용직이기에 방학을 제외하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날은 겨우 연간 255일 정도가 된다.

이 분들은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한다.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때로는 정규직이 아니기에 온갖 잡무를 떠맡으면서도 근로기준법에 명시한 노동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 총 정원제 실시와 예산절감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늘려왔다. 정부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에서 눈을 돌린다.

여성은 가난하다. 여성노동자의 70%이상이 비정규직, 언제 일터에서 내몰릴지 몰라 마음을 졸인다. 정규직 여성들도 언제 비정규직으로 내몰릴 지 모른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은 ‘객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며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개인적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화이트칼라건 블루칼라건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불행하다면, ‘전체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라’가 아니라 ‘최후 한 사람까지 불행하지 않도록’ 모두 노력하는 사회가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는 사회가 아닐까.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