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상력’

페미니즘 관점으로 매체읽기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5/09/26 [18:27]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상력’

페미니즘 관점으로 매체읽기

김윤은미 | 입력 : 2005/09/26 [18:27]
영화나 만화를 보다가, 주제와는 별 상관없는 부분에서 웃게 될 때가 있다. 최근에 본 <맛의 달인>이라는 만화가 그랬다. <맛의 달인>은 아버지와의 갈등과 요리대결을 다루는 만화인데, 그 중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곧 결혼할 여자에게 여자의 친구들은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는 여성의 환상’이라며 파격적이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으라고 권한다. 여자의 결혼 상대인 남자는 평소에는 ‘여권’을 내세우는 여자들이 왜 웨딩드레스 타령이냐며 ‘신부’라는 말이 여성멸시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고 비아냥거린다. 그러자 여자는 “그치만 여권론자는 아름다운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논리도 이상하네요.”라고 대답하면서 남자와의 논쟁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여권론자”와 웨딩드레스. <맛의 달인>의 전체 내용에서 빠져도 상관없는 저 자투리 장면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재미를 느꼈던 것은 페미니즘을 처음으로 접하던 시절 고민했던 부분을 (예기치 않게) 센스 있게 정리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즘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는 사회적으로 고정된 여성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다소 과도한 압박을 스스로에게 주입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의상, 특히 웨딩드레스 같은 옷은 피해야 할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 한동안 상당히 답답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몸과 의상에 대한 의식적인/무의식적인 검열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서 자유로워지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여성’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모습인지 아닌지 습관적으로 따져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지나치게 여성적인 스타일까지 제외해야 한다고 따지고 드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옷을 입든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수용되는가가 중요한데 공연한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소소한 압력과 개인의 대응

페미니즘이 던지는 여러 논쟁점들은 수많은 매체들이 다루고 있다. 최근 들어 각 매체들이 여성의 이야기, 더 나아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캐릭터나 소재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여자, 정혜>는 ‘여성의 일상’을 다룬 ‘예술영화’라는 타이틀로, 그 작품의 성과 정도는 제쳐두더라도 상당한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케이블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국민 시트콤 자리에 등극한 <프렌즈>의 경우 성차별 문제나 동성애자 인권과 같은 정치적인 이슈를 소재로 잘 차용할 뿐 아니라, 회사관료제의 문제점을 가볍게 비꼬는 데 선수였다. 물론 시트콤은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므로 꼭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답에 가까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흐름상 대체로 동감할 수 있는 내용이며, 속이 시원해지거나 감동을 느끼게 되는 부분도 많다.

<프렌즈>에서 조이가 프로이트 역할을 연기하는 연극이 그 예다. 한 여자가 눈을 감고 소파에 누워있는 가운데 프로이트 역의 조이가 무대로 튀어나와서 여성의 꿈에 대해 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우스꽝스럽게 춤을 춘다. 이 장면에서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남성중심적인 속성을 코믹하게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챈들러가 결혼 직전에 동성애자이자 여장남자인 아버지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직접 클럽으로 찾아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매우 심각한 경우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신경을 긁는 정도의 애매한 상황들도 많다. 나의 욕망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얼마나 공정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할 상황도 수없이 닥친다. “여자들은 ~해”라는 흔한 편견을 지닌 남성들과 대화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덜 불편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성형수술이 일상적인 이벤트처럼 되어버린 상황에서 수술하고 싶다는 친구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결혼을 하라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라고, 명절 때마다 가해지는 압력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개인을 향해 쏟아지는 이런 압력들이 모이고 모여서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다. 이 미묘한 사회적 압력이 쏟아지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여성 개체의 독립적인 판단과 취향을 유지해 나가느냐는 중요한 과제다.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처럼 대중매체들이 여성과 소수자 관련 아이템을 차용하게 된 이상,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매체들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눈 여겨볼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매체를 읽어낸다는 것은, 여성의 삶에서 당면하게 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태도와 상상력을 직간접적으로 얻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썩 괜찮고 멋진 처리를 볼 때면 반갑다.

여성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캐릭터

그래서일까, 여성의 삶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평생 가족에게 모든 것을 바쳤는데 남편의 외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를 보면, 그녀가 불치병에 이르는 극단적인 수난을 당하는 이유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가진 것 없는 ‘맹순이’를 통해 자신의 한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여성수난’ 드라마가 현실에서 여성들이 부닥칠 문제와 얼마나 조응할지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장밋빛 인생>은 집요할 정도로 상황을 잘 그려냈지만, ‘맹순이’의 한스러운 인생에 현실 여성의 삶을 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편 이미 돌풍을 일으킨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최근 단행본으로 나온 톰톰의 만화 <캠퍼스>는 여성들과 관련된 여러 소재들을 일상과 교차시키면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삼순이>는 일상적으로는 목소리 한 번 크게 내기 힘든 처지에 놓인 20대 후반 여성을 재치 있게 그려냈다. <캠퍼스>는 ‘소림여자대학교’를 무대로, 모든 것을 야오이 만화의 공식대로 해석하는 ‘동인녀’와 ‘짠순이’, 젊은 세대와 교감을 원하나 촌스럽기 그지없는 노교수 등 일상에서 마주칠 법 하지만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할 캐릭터들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주변화된 일상에 대한 가감 없는 관찰력이 돋보인다.

올해 개봉한 공포영화들은 한결같이 여성의 페티시즘적 욕망에서 공포의 근원을 찾았지만 공감을 끌어내는 데 대체로 실패했다. ‘여자들은 구두를 좋아하고, 가발을 좋아하더라’는 표피적인 인식에 착안했을 뿐, 여성의 일상과 감성에 대해 관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일본영화 <불량공주 모모코>가 로리타풍 드레스와 카미카제 군복이라는 상반되는 아이템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대조적이다. 두 의상은 근원을 따지자면 둘 다 좋게 봐주기 어렵지만, 여주인공들은 그 옷들을 충분히 즐기고 또 좋아하면서 집단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행복한 삶을 꾸려나간다.

모모코들의 삶이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만족의 뿌듯함에 감동까지 느끼게 되는 건 개체의 행복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영화의 주제 덕분이다. 이 주제는 누구나 아는 보편적이고 진부할 수 있는 것이지만, 옷이라는 아이템과 소녀성장의 테마를 가지고 새롭게 그려내 여성관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말해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삶을 풍요롭게 하면서, 아울러 사는데 유용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매체가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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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8/09/19 [17:22] 수정 | 삭제
  •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죠. 페미니스트는 주로 남자같고, 거칠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페미닌한 옷과는 담을 쌓고, 공격적이고..... 뭐 굳이 페미니스트에 대한 고정관념 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고정관념이 존재하는데... 전 개인적으로 그런 고정관념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아요. 왜 여성주의자들은 그래야 하나요? 이건 어디까지나 여성주의 라는 이념이나 사고방식의 문제이지 옷을 어떻게 입는다, 생활방식이 어떻다 이런 문제가 아니지 않나요? 여성주의자여도 얼마든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여성스럽게 옷도 입고 그럴수 있는건데, 또 여성스럽게 옷 입고, 스타벅스 커피 마시면 된장녀라고 욕하고... -_-;;; 제발 디테일한 것들에서 타인을 깎아내일 생각을 하지 말고 본질을 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넌OOO니까 넌 이래야지~ 이런 고정관념 정말 답답합니다... 그런 고정관념은 대체 애초에 누가 만들었답니까? 그리고 누구르 위한 고정관념입니까? 세상엔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고, 여성주의자 면서도 페미닌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얼마든지 다양한 유형들이 있을 수 있는데 전혀 논리적인 이유가 없는 고정관념이라는 잣대로 사람을 이렇다 저렇다 쉽게 판단하는 것.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밖에도 여기 여성주의 저널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미혼모나 이반 여성들, 여성노동자들.... 그들을 도우려면 가장 먼저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 버리기 아닌가 합니다...
  • ^^ 2005/09/29 [10:29] 수정 | 삭제
  • 만화는 거의 본 게 없지만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 맹순이 2005/09/28 [05:21] 수정 | 삭제
  • 개인에게 쏟아지는 미묘한 사회적 압력들이 모여서 보수적인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참 시원하네요. 독립적인 판단과 취향이 중요해지기를 표방하는 것-인권의 문제죠, 우리에겐 아직 '고급'인권 문제지만.-이 공동체성 고사나 이기주의로 오독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충분히 선택의 자유가 있는 상황에서 무엇때문에 안 하는 것과.. 애초에 가로막혀 있는 건 다르니까요. 공감되는 기사.. 잘 봤습니다.
  • 뮤즈 2005/09/28 [01:01] 수정 | 삭제
  •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프랜즈나 앨리맥빌같은 외국 시트콤에선 여성주의적인 매체라고 만든 것들 보다 더 통쾌하고 공감이 가는 그런 장면들이 있었어요. 전반적으론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요. 그런 즐거움을 찾는 것도 수용자의 몫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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