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여성들 폭력 시달려

남편 구타, 중개업자 사기, 법적 한계…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3/06/06 [00:24]

국제결혼 여성들 폭력 시달려

남편 구타, 중개업자 사기, 법적 한계…

김이정민 | 입력 : 2003/06/06 [00:24]
필리핀 출신의 아냐(24)는 중개업자를 통해 남편을 소개받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이 그녀에게 약속한 것 중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농부였고, 술고래였고, 건강도 안 좋았다. 아냐는 그의 집에 도착해서야 이미 전 처 사이에서 낳은 네 명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 생활과 언어를 배우면서 적응하려고 노력을 했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해내려 했지만, 시어머니는 걸핏하면 아냐와 결혼하느라 쓴 돈을 들먹였고 남편은 폭력적인 말들과 함께 “필리핀에 가!”라는 말을 일삼았다.

필리핀 여성 1/3 상습구타

안양전진상복지관 이주여성쉼터 위홈(wehome) 주최로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국제결혼과 여성폭력에 관한 정책제안을 위한 원탁토론회’에서 발표된 한 피해사례다. 이 날 토론회에서는 수많은 피해 이주 여성들의 사례가 발표됐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과 결혼한 필리핀 여성의 1/3이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한다고 한다.

과거엔 중국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 농촌남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필리핀, 베트남, 태국, 러시아, 몽골여성들이 한국남성과 결혼하는 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과 결혼하려는 한국인 남성들은 대부분 농촌총각들, 재혼을 원하는 고령층 남성들이 많은데,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거나 아내폭력 등을 행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30대 초반의 한 필리핀여성은 자녀 한 명과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 남편은 술만 먹으면 이유 없이 폭행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아이도 함께 구타를 하고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등 현재 결혼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다. 토론회에서는 상업적 목적을 가진 알선업자들이 주선하는 매매혼의 경우, 한국남성들의 ‘본전빼기’ 심리도 폭력을 낳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종차별이 폭력 가중시켜

안양 전진상복지관 이주여성쉼터 ‘WeHome’ 대표 이금연씨는 “국제결혼을 하는 농어촌 배우자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늦은 나이의 결혼하고 문화사회적 활동 기회가 부족했으며 여성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역시 부족하다. 또한 음주문화, 가부장적 사고, 전통적 가족체계 유지에 대한 가족들의 요구, 타문화와 다문화에 대한 이해부족, 언어의 한계 등이 외국인 배우자와의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국제결혼 가족 내 발생하는 아내구타 및 여성폭력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업체들이 내건 ‘초혼, 재혼, 장애인, 연세 많으신 분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광고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로 내국인과 결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보다 조건이 못하다고 생각하는 동남아시아 여성’들과 결혼하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못사는 나라에서 온 힘없는 여성’이라는 생각과 인종차별적 사고들로 인해 아내를 더욱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결혼중개업체 사기 빈번

한국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들 중에는 가정 내 폭력뿐 아니라 결혼중개업자에 의해 사기를 당하거나 성폭력을 당하는 등 이중 삼중의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죠쉬(26)는 중개인이 그녀의 남편을 찾을 때까지 중개업자의 집에 한동안 머물러야 했다. 업자는 그녀에게 성관계를 강요했고, 그녀는 그가 그녀를 위해 많은 돈을 사용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중개업자들은 한국인 남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남성과 결혼할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뮤리(30)의 경우, 이웃의 권유로 한국인 남성을 소개 받았는데, 그 남자가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일 결혼을 하도록 권유받았다. 그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중개업자가 당일에 해야 한다면서 그날 오후에 결혼을 시켰다.

정부, 손 놓고 있어선 안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혼인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보여, 배우자를 국내에서 찾지 못한 남성들의 국제신부맞이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대와 인권침해를 당하는 피해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국적법에 따르면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2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거나, 혼인한 후 3년이 경과하고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1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자”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귀화 신청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결혼한 지 2년이 지나지 않으면 이 기간 중에 이혼할 경우 아이를 두고 본국으로 가야 한다. 현재 국회에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그밖에 자신의 귀책사유 없이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할 수 없었던 자 또는 그 배우자와의 혼인에 의해 출생한 미성년 자녀의 양육 등이 필요한 경우 등 위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도 귀화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이 제출되어 있는 상태다.

이금연 대표는 “결혼 중매업체들의 비리에 대해 정부가 철저히 조사하고 역기능이 속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경찰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통역을 통한 조사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선 또 국제결혼을 하는 남성들에게 가치관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고, 외국인 여성들에게 한국문화에 대한 교육을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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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리 2003/06/06 [18:08] 수정 | 삭제
  • 한국여성이 독일남성과 결혼해서 무시당하고 살다가 이혼당하고 어렵게 아이키우는 얘기 다룬 거 봤어요. 좋다고 청혼할 때는 언제고 시간이 좀 지나니까 피부색깔이 검다면서 구박을 했다더군요. 그 남편이 동양여성이라고 아내를 무시하는 모습이 짜증났죠.

    근데 유럽남자 욕할 게 아니네요. 한국남자들 못사는 나라 여자 얼마나 무시하나요. 한국여자랑 결혼해서도 패는데 말도 잘 못하고 친정도 없는 아내를 얼마나 무시하고 괴롭힐까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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