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늘 야외수업해요?”
경기도 부천시 원미고등학교 체육실. 여학생 두 명이 들어와 체육선생님에게 묻는다. 비 오는 날 야외수업을 하냐고 묻다니… “아니, 체육관에서 해야지. 운동장에서 하고 싶어?” 체육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자 한 학생이 “오늘이 그 날이잖아요~” 한다. 그 날? 학생들이 나가고 체육선생님은 ‘그 날’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 학생이 좋아하는 남학생이 고3인데 일주일에 딱 한 시간 운동장에서 볼 수 있다는 거였다. 올해 초 임용돼 현재 교사경력 3개월째인 체육선생님 송송이씨. 교실이 붕괴됐다, 교사와 학생간 의사소통이 단절됐다, 뜻을 품고 교단에 선 선생님들이 회의에 빠졌다… 이런 얘기가 무색하게 송이씨와 학생들 사이엔 친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초보 교사라 학교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도 많으련만 송이씨는 교사생활이 ‘재밌다’고 한다. 운동이라면 정신 못 차렸어요 송송이씨는 운동선수 경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타고난 체육인’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은 어릴 적부터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여자라고 운동 안 시키고 하지 않았어요. 공도 사주시고 미술학원 대신 태권도장에 보내주셨죠. 초등학교 때 남자애들이랑 축구도 하고 주먹야구도 했어요.” 여기서 ‘주먹야구’란? “‘짬뽕’이라고 하는데 테니스 공을 배트 대신 주먹으로 치는 거예요. 동네가 작으니까 정식 야구는 할 수 없었거든요.” 그러나 운동선수를 꿈꾸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도 육상대회 나가고 그랬는데요. 제가 공부도 곧잘 했거든요(웃음). 어머니가 운동 안 시킨다고 하셨죠. 그래서 체육선생님이 몰래 저를 연습시켜서 대회 나가고 그랬어요.” 송이씨가 체육 쪽으로 진로를 결정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우리 학교선 체육대회를 꽤 시끌시끌하게 했어요. 제가 대회 연습하느라 정신 못 차리고 빠져있으니까 어머니가 ‘그래, 너 좋아하는 거 해라’하셨죠. 가족들 동의 하에 체대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여학생들 교육 '땀 내면 돼' 운동이라면 거의 모든 종목을 좋아한다는 송이씨. 그러나 운동을 ‘하는 것’과 운동을 ‘가르치는 것’은 다를 텐데… “대학 3학년 때 교직 준비하면서 나중에 후회하는 거 아닌가 걱정 많이 했어요. 그런데 교생실습 나가보고 ‘딱이구나!’ 싶었죠.” 교직이 ‘딱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송이씨는 학생들의 반응에서 그 열쇠를 찾았다. 운동 안 하려고 몸을 비틀던 학생들이 나중엔 “태어나서 체육시간에 이렇게 열심히 해본 적 없어요!”라고 말할 때, 배드민턴 치면서 계속 헛스윙만 하던 학생이 “와, 선생님이 하란 대로 하니까 이제 되요!”라고 말할 때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다고 한다. 임용고시에 합격해 체육선생님이 된 지 3개월째. 아침 5시 40분에 일어나서 출근해 오후 5-6시까지 근무하는 생활이 여유롭지는 않지만 송이씨는 꾸준히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체육선생님들과 배드민턴도 치고요, 학생들 가르치려면 그 종목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니까 연습 많이 하죠. 소프트볼도 가르치고 싶고 축구도…” “여학생들도 축구 배워요?” 이렇게 물었다가 무안해졌다. “당연하죠.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여학생들도 첨엔 그렇게 묻죠. ‘우리 축구 배워요?’라고. 여학생들 운동하는 거 남학생들 못지 않아요.” 송이씨는 여학생들이 체력 면에서도 남학생들에게 딸리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강단이 있어서 기합도 더 잘 받는다고. “기합 줄 땐 엎드려뻗쳐를 15분에서 20분간 시키는데 남학생들은 10분 지나면 팔을 부들부들 떨지만 여학생들은 꿋꿋이 견뎌요.” 송이씨는 여학생들이 모든 운동을 소화할 수 있지만 문제는 ‘안 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일단 여학생들은 자기가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열심히 움직이지 않게 되죠. 관건은 ‘땀’이에요. 미적 관심 때문이기도 하고. 땀을 안 흘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수업시간이 시작되면 ‘땀’을 내게 만든다고 한다. “팔벌려 뛰기를 50-60번씩 시켜요. 일단 몸에 땀이 나면 다들 포기하고 열심히 하거든요.(웃음)” 교사는 학생을 닮아간다 2003년 고등학교 분위기는 어떨까. “남녀 학생들이 손잡고 다니는 건 예사고 여학생을 남학생이 업고 계단 내려오기도 하고 그래요. 선생님들이 깜짝깜짝 놀라죠. 30명 정도가 한 반이고 반 마다 에어컨도 있어요. 제가 보기엔 ‘완벽한 환경에서 수업 받는다’ 싶죠. 생각해보면 우리 때도 선생님들이 그런 얘기 하셨는데…” 송이씨는 담임을 맡지는 않았지만 학생들과의 관계가 꽤 친밀하다. 송이씨 핸드폰엔 “선생님, 오늘 시험 망쳤어요”라는 메시지가 찍히기도 하고, 동료 교사들과 술 마시고 있는데 “선생님 지금 뭐하세요?”라는 전화가 오기도 한다. 서랍에 있는 컨디션 한 병은 그 학생이 다음 날 들고 온 것이라고. 쉬는 시간엔 보통 체육실 앞 의자에 앉아 학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애들과 대화해보면 수업시간에 보지 못했던 면들이 많이 보여요. 관심사도 영화, 음악, 사진 등 다양하죠. 저보다 키 큰 여학생들도 많고 고3 남학생들은 아저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막상 얘기를 나누다 보면 덩치만 크지 애 같아요. 아직은 선생님이 필요한 시기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학생들과 함께 있으면 학생들을 닮아가는 것 같다는 송이씨. 학생들이 유치하게 나오면 같이 유치하게 논다고. '쇼맨십'도 배워야죠 교사로서 송이씨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타성’에 젖는 것. “안주하게 되면 끝장이죠. ‘아나공’ 수업은 안 하려고요.” ‘아나공’이란? “체육선생님이 ‘아나~ 공 여기 있다’ 던져주고 1시간 때운다고 ‘아나공’이라고 하죠. 한 번은 남학생들이 자유시간 달라고 졸라서 공 던져주고 너희 맘대로 뛰어 놀아라 했는데 맘이 편치 않더라고요. 수업은 꼬박 하려고 해요.” 송이씨는 선생님들에게도 ‘쇼맨십’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여학생들 수업엔 더 그래요. 체육에 흥미 없으니까 유발해야 되요. 왜 ‘못하는 시범’ 보일 때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안돼요~’하면서 오바해서 보여주면 까르르 웃고 즐거워하죠. 농구 가르칠 땐 슬램덩크 이야기도 꺼내고요.” 종목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게 한다. 왜 이걸 배워야 하는지부터 차근차근. 그녀는 어떻게든 학생들을 ‘많이 움직이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연구하겠다는 송이씨.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종목인 ‘체조’와 ‘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다른 선생님들과 스포츠댄스를 배우는 중이다. “학교 다니면서 여자 체육선생님을 본 적이 없어요. ‘역할모델’이 없었던 거죠. 여긴 저 말고도 두 분의 여자 체육선생님이 계셔서 그 선생님들이 도움이 되요.” ‘올해 가르친 배구와 내년 가르치게 될 배구는 다른 내용일 것’이라고 말하는 송송이 선생님. 그녀는 오늘을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좋은 ‘역할모델’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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