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직장 내 성희롱의 ‘구조’

영화 <노스 컨츄리>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6/05/09 [23:15]

영화로 보는 직장 내 성희롱의 ‘구조’

영화 <노스 컨츄리>

김윤은미 | 입력 : 2006/05/09 [23:15]
직장 내 성희롱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자 노동권 침해라는 지적은 이제 상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직장 내 성희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제시되지 않았으며, 수많은 여성들이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해가며 법적 투쟁을 해왔다는 사실은 잊혀지기 쉽다. 그리고 직장 내 성희롱 방지를 위한 규범들이 마련된 지금도, 성희롱을 ‘분위기 좋게 하기 위한 농담’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여전하다. 그래서 <노스 컨츄리>처럼,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성을 환기하는 교과서적인 영화를 보면 반갑다.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주인공 조시 에임스가 겪는 삶의 여정을 따라 전개된다. 조시가 후에 법적 소송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기라도 하듯, 영화는 법정에서 무례할 정도로 사생활에 대해 질문을 당하는 조시의 증언에 따라 과거의 장면들을 비춘다.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사건은 1984년에 있었던 미국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인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Jenson vs. Eveleth Mines)이다.

조시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두 자녀를 데리고 부모가 살고 있는 북부의 한 마을로 이사를 온다. 이 마을은 피어슨 철강이 운영하는 탄광에 기대어 마을의 경제가 돌아가는 곳으로,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곳이 으레 그렇듯, 보수적이다. 조시는 더 이상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식을 키우고 싶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탄광에서 일하게 된다.

조시가 일하는 탄광은 남성문화가 지배하는 전형적인 공간이다. 남성노동자들은 일면 순박하면서도, 소위 ‘수컷’의 영역을 여성이 침범했다는 생각에 소수의 여성노동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며 경멸한다. 그래서 욕설과 음담패설, 여성의 몸을 만지는 등 모욕적인 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들이 안겨주는 성적 모욕감을 이겨내야만 명예남성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특히 조시의 상관이 된 바비는 고등학교 시절 조시와 잠시 교제했던 사이로, 사사건건 조시를 괴롭힌다. 조시는 처음에는 직장을 가졌다는 기쁨에 견디려고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바비는 폭력적으로 조시를 몰아붙이고 성폭력을 하는가 하면, 아들의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러 간 날 나타난 만난 바비의 아내는 조시를 향해 ‘창녀’라고 욕을 퍼붓는다. 아들까지 자신을 무시하자 조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송을 준비하게 된다.

<노스 컨츄리>에는 여성이 성적 대상으로 치부되고 차별 받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구조가 잘 나타나 있다. 남성중심적인 문화에서 남성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은 여성을 차별하고 성적 대상으로 치부하여 모욕감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조시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항의해도 아버지는 그 고통을 알아주지 않으며 직장 상사는 ‘일하러 오라고 한 것 아니니 그만두라’고 협박하기까지 한다. 한편 조시의 여성동료들은 조시 때문에 여성노동자들 전체가 해고될까봐 두려워하며 조시와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 남성노동자들은 간이화장실 속에 여성을 가두고 뒤흔들어 똥물을 뒤집어쓰게 만들고 여성노동자의 물건에 정액을 뿌려놓는 악랄한 행동을 하면서도, 여성노동자들을 향해 ‘조시와는 달리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며 서로를 이간질한다.

영화에선 탄광 내에서 일어난 성희롱이 생생하게 그려진 반면, 법정투쟁은 상당히 간략하게 처리되는 편이다. 늘 그렇듯 회사측에서는 조시가 성생활이 ‘문란하다’고 들먹이며 사생활을 공격하지만, 조시의 진심에 주위 사람들이 감동하면서 상황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려가게 된다. 전체적으로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가 선악의 대립이 분명하고 매끄럽다. 이런 점이 한계로 보일 수 있으나, 일단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흠잡을 데 없이 조화를 이룬다.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이 조시 역을 맡았으며 그 외 프란시스 맥도먼드, 시시 스페이섹과 같은 반가운 배우들이 등장하여 매력적인 연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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