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이 생각한 ‘어머니와 밥’의 관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밥 안하는 엄마…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6/05/30 [17:39]

제작진이 생각한 ‘어머니와 밥’의 관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밥 안하는 엄마…

김이정민 | 입력 : 2006/05/30 [17:39]
지난 5월 27일 방영된 SBS 시사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밥 안하는 엄마 & 외식으로 크는 아이들>편이 외식이 늘어가는 식생활 문화와 아이들의 정서적, 신체적 건강의 문제를 ‘밥 안하는 엄마’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접근해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엄마들이여, 밥상차려라?

해당 프로그램은 외식이 아이들의 성장 발육에 문제를 가져오고, 정서적 안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기 어렵게 한다는 등의 근거를 들며 외식의 문제를 지적했다. 방송 중 몇 차례 ‘단지 외식을 비판하거나 모든 어머니에게 밥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라고 언급했지만, 방송 이후 수많은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고 하니 그 의도를 전달하는 데 실패한 것 같다.

제작진이 진행자의 코멘트를 통해 밝힌 대로 프로그램의 의도가 ‘엄마든 아빠든 맞벌이든 아니든 어떤 부모로 기억될 것인지 밥을 계기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라면 <밥 안하는 엄마 & 외식으로 크는 아이들>이라는 제목부터 잘못된 것이다. 밥 ‘못’해주는 부모도 아니고, 밥 안하는 ‘엄마’라니? 인터뷰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엄마’가 해준 밥과 밖에서 사먹는 밥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냐고 질문한 것도, 또, 초등학생들에게 <‘어머니’와 밥>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시키는 것도 부적절해 보인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직장을 그만두고 15년 만에 밥을 해준 어머니께 보내는 초등학생 아들의 편지로 장식한 것도 편집의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 가정에서 ‘밥’과 관련된 모든 질문을 어머니와 연결짓고,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식사준비를 전담하는 사람이 여성인 가정만을 사례로 보여주면서, ‘모든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가 밥을 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제작진의 말대로 이것이 여성만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면, 그들이 사례로 소개한 맞벌이 가정에서 최소한 부모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부재했다. 한부모 가정 중에서도 어머니와 함께 사는 가정의 사례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부모 가정에서는 밥상을 차리지 않고 외식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이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모습만 보이는 것은 해당 가정의 ‘밥상’을 맞벌이 여성이 전담하고 있거나, 그 여성이 할 일로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작진이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은 채 한 두 번의 진행자 멘트로 ‘(밥상을 차리는 것이) 어머니든 아버지든 상관없다’고 하는 것은 기만에 가까운 비겁한 태도다. 아이들은 이러한 인터뷰를 통해 ‘엄마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어머니를 비난하거나 밥은 ‘원래 엄마가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하게 된다.

외식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사실 이는 부모에게 ‘할 바를 다 하라’며 그들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가정의 일을 여성이 전담해야 한다는 차별적 통념의 변화와 더불어, 제도적 지원이나 정책의 개입이 필요한 문제를 개별 가정에 전가하여 ‘사적’인 문제로, 그래서 개인들이 해결할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맞벌이 가정이든 한부모 가정이든 실질적으로 집에서 밥을 해먹을 수 없는 구조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는)마땅히 해야 할 일은 있기 마련‘이라는 외침은 공허하다.

모든 회사에서 성별에 관계없이 직원들의 가사노동과 육아 등을 위해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정책을 편다든지,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 단위로 공동 육아나 공동 밥상 운영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아이들에게 영양이 잡힌 식단을 마련해주고, 더 큰 단위의 ‘가족’이나 또래 집단을 만나는 기회를 주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며 현실적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해볼 것은 외식 자체가 영양불균형과 성장 발육에 문제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영양불균형은 외식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편식의 문제다. 집에서 먹는다고 해서 항상 영양이 고루 갖춰진 식사를 할 수 없으며, 외식을 통해 집에서보다 좋은 식사를 더 적은 수고와 비용으로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성과 남성 모두 가사노동을 하는 문화를 가진 중국에선, 가족 단위로 서서 아침을 사먹는 풍경이 익숙하다.

가족 간의 유대를 느끼기 위해, 식사예절을 배우기 위해 매일 밥상을 차려야 할 이유도 없다. ‘밥상공동체’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횟수’의 문제는 아니다. 한 달에 한 끼를 같이 먹더라도 ‘밥상공동체’의 의미를 나누는 가족이 있는 반면, 매일 밥상에 같이 앉더라도 유대감이나 애정을 교류하지 못하는 가족도 있다.

‘밥상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에서 분명히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러한 밥상은 여성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밥상공동체란 단지 ‘다 차려진’ 밥을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함께 먹고,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모든 과정을 식사에 함께 하는 이들이 알고 참여해야 한다.

해당 프로그램에서처럼 여성이, 엄마가, 아내가 식사를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서는 한 끼 식사를 위한 수고로움과 감사함,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친밀성을 키우는 밥상공동체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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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2006/06/22 [20:30] 수정 | 삭제
  •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죠?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건 여성이고 그렇다면 가족의 영양관리를 위해 엄마는 늘 가사에 매여 있으라는 말인가요. 시대가 변하면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시대착오적인 프로라니...
  • free 2006/06/04 [20:31] 수정 | 삭제
  • 수많은, 그러나 묵묵히 일어나는 노동에 대해 가정 안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책임져야 하고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받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한국사회는 이래서 가부장적인 사회인 것 같습니다.
  • 아... 2006/06/04 [16:19] 수정 | 삭제
  • 저 프로그램을 보고 울었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버지가
    "딱 너네. 게을러빠져서 숨은 어찌 쉬고 사냐."라고 하셨다더군요.
    (전 부모님과 같이 안 살고 있어서 나중에 어머니께 들었어요.)

    9시간 밖에서 일하고, 돌아가서 청소 빨래에 설거지 등등 집안일 다 하고 나면
    잠 잘 시간도 없다는데.
    무슨 가사일 하는 로보트도 아니고, 어떻게 저 많은 일을 다 하면서
    삼시세끼 따끈한 밥까지 지어내라고 요구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어머니 외쳐대면서
    실제로 그 공허한 구호 속에 '어머니'라는 인간이 존재하는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어쩌고,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 하면서
    사실은 그 희생과 사랑 위에 제 한 몸만 편하게 눕혀보려는 이기심...
    정말 지긋지긋 합니다.
  • 새소리 2006/06/03 [00:07] 수정 | 삭제
  • 남자들 머리엔 뭐가 들었는지.
  • 2006/06/01 [15:55] 수정 | 삭제
  • ella님 물음이 참으로 지당하네요.
    남성들 중에 한끼라도 자기 입에 들어가는 걸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차려본 적이 있을까요????"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도, 자기 손으로 못하는데 말입니다.
  • ella 2006/05/31 [09:35] 수정 | 삭제
  • 개인이 그렇게 생각하는것 하고 공중파에서 대놓고 밥않하는 엄마 문제있다는식은 엄연히 다르지요.
    밥은 여자만, 딸만, 엄마만, 할머니만 해야 하는식의 구태한 사고방식에 신물이 납니다. 과연 우리나라 남성들중에 한끼라도 가족을 위해 차려본적이 있을까????
  • 독자 2006/05/31 [04:50] 수정 | 삭제
  • 그것이 알고 싶다는 너무 심했습니다.
  • kangkang 2006/05/30 [22:06] 수정 | 삭제
  • 그 프로 만든 사람들은 밥상을 한 번도 직접 차려서 가족들 먹여본 경험이 없을 거예요. '엄마'가 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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