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민주화 통해 얻고자 한 건 ‘평화’

군대와 무력으로부터 해방 원하는 네팔

송하진 | 기사입력 2006/06/21 [04:52]

네팔민주화 통해 얻고자 한 건 ‘평화’

군대와 무력으로부터 해방 원하는 네팔

송하진 | 입력 : 2006/06/21 [04:52]

지난 4월, 네팔은 유례없는 국가총파업사태가 벌어졌고, 전세계는 잠시 초유의 네팔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당시 철권통치를 벌이는 국왕에 대항해 그야말로 온 국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7개 정당 및 노동자, 시민들이 주도한 이 총파업은 15일 이상 계속됐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국왕 퇴진’과 ‘네팔의 민주화’를 부르짖었다.

네팔의 역사는 권력과 힘으로 민중을 억누르는 자들에 대한 승리의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한 달여에 걸친 투쟁 끝에 갸넨드라 국왕은 권력을 그가 지명한 새로운 총리에게 이양하고 하야를 선언했다. 그리고 5월 18일, 한국의 민주화와 인연이 깊은 이날에, 네팔 하원에서는 신의 위치에서 왕권을 휘두르던 갸넨드라 국왕의 권력을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선언을 발표했다. 힌두 왕국이었던 네팔은 세속국가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국왕의 군사권과 재정권 등을 제한했다. 네팔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라고 불리는 이 선언은 많은 네팔 국민들의 피로 이루어진 선언이었다.

국왕이 퇴진하면서 사회는 변화하고 있고, 개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맨몸으로 거리로 뛰쳐나가 부르짖은 ‘민주화’의 요구가 민중의 승리로 돌려지기에는, 현재 네팔 상황은 혼란하다. 그간 네팔은 국왕과 마오이스트(마오쩌둥의 사상을 따르는 공산 반군)간에 오랜 내전을 겪고 있었다. ‘네팔의 민주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네팔 사람들 앞에 놓여진 선결과제, 즉 어떻게 네팔 사람들이 오랜 내전과 혼란을 수습하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확보할 것인지 관건이다.

마오이스트, 반군 규모 확장하려 해

지난 6월 2일 카트만두에서는 마오이스트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마오이스트의 지도자인 프라찬다의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은 마오이스트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집회장소로 모여드는 이들의 행진으로 카트만두의 교통은 봉쇄되었다. 경찰들은 큰 소리 치는 마오이스트에게 밀려 그들을 위해 교통 봉쇄를 돕고 있었다. 집회 장소는 발 디딜 틈도 없어 사람들의 물결에 밀려다니고 아예 사람들은 주변의 육교나 건물의 옥상, 심지어 나무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몇 명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고, 그저 수십만이라고 추산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것은 프리찬다를 지지해서 모여들었다기 보다는, 지난 10년간의 정글 생활을 마치고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프라찬다를 보고자 온 사람들도 있었고,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싶어 모인 시민들도 있었다.

또한 마오이스트들이 이날 집회에 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기 위해 각 지방마다 다니면서 ‘오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폭력과 참석하지 않았을 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식으로 협박을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차출해 버스로 실어 왔다. 이것은 만천하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날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프리찬다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현재 많은 사람들은 마오이스트들이 단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면서,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서 집회를 기획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네팔 국민이 민주화를 통해 정말 바라는 것은 평화다.”

네팔 노동조합 GEFONT(General Federation of Nepalese Trade Unions)의 샤말 타파씨는 민주화운동의 목적에 대해 설명하면서, “네팔 국민들은 민주화를 통해 국왕을 몰아냄으로서 폭정에서도 벗어나고, 마오이스트와의 내전도 진정될 것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수만명의 사상자를 낳으며 지난 10년간 계속된 마오 반군과 정부군 간의 오랜 내전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갸넨드라 국왕은 오히려 내전을 빌미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며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결국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마오이스트들도 시민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각 정당들과도 손을 잡았다. 국왕의 하야 이후 사람들은 마오이스트들이 그들의 폭력적 투쟁방법을 버리기를 기대했다. 그들을 정치적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냄으로써 평화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나가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마오이스트의 행보는 이러한 시민들의 평화의 열망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진정한 네팔 민주화의 향방

최근 마오이스트들은 국가 안정을 위해 정부군과 3개월간 휴전을 선언했고, 마오이스트의 지도자들은 그동안의 오랜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공식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오이스트들은 한쪽에서는 “자신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평화”라고 말하며 정부와 평화 협상을 진행하면서, 또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그들의 군대를 훈련하며 각 가정과 공장, 회사 등을 찾아다니면서 반군의 운영을 위한 자금을 갈취하고 있다. 지속되는 납치와 협박 등의 무력행위는 ‘마오이스트들이 정말 평화협상에 관심이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하고 있다.

그러나 마오이스트들은 정부와의 협상테이블에서는 협상 전제조건으로 그동안 잡혀간 반군을 모두 석방할 것 등을 요구하며 적극적인 협상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가 지난 6월 16일, 프리찬다가 마침내 얼굴을 드러냈다. 현 총리와 만나 앞으로의 임시정부 구성 및 총선 등에 대한 정치 일정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표명했다. 네팔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는 이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평화적인 협상’으로 기록하였다.

이 협상 전에 최근 마오이스트의 한 고위 인사가 “마오이스트가 네팔 전 영토의 80%이상 지역에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마오이스트에게도 따로 세금을 내야한다”는 발언을 해 마오이스트를 비판하는 의견들이 거세게 일었던 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각 정당들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네팔의 정부와 정당들이 이미 그들 안에서 분열하고 나뉘어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민주화 투쟁을 이끌며 조금 신임을 회복하긴 했으나 이미 부정과 부패로 국민들에게 이미 실망을 안겨주었던 옛 정치인들이 대부분이라서 국민들은 정부도 쉽게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평화 없이는 어떤 권리도 소용없다

물론 긍정적인 움직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네팔 내에서 여성과 하위 카스트에 대한 차별을 조장했던 법안들을 고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려는 작업이 활발하다. 그동안 자녀들은 반드시 아버지를 통해서만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 어머니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국가 기관에서는 반드시 33% 이상 여성을 고용하도록 하는 할당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네팔 정부는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금지와 함께 “네팔은 카스트제도에 지배받지 않는 나라”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는 선언을 했다.

어린이와 여성 인권단체인 CWISH(Children-Women In Social Service & Human Rights)의 밀란 다렐씨는 “(국왕 통치 하의) 지난 2,3년은 매우 어려운 시기였지만 이제 우리는 희망을 보고 있다”라고 현재의 상황을 표현했다. 물론 법 제정에 이어 법의 집행과 실행이라는 더 큰 과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소외계층을 끌어안기 위한 국가적인 움직임만큼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네팔의 상황에서 첫 번째 과제가 평화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평화 없이는 어떤 권리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도 그 권리를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샤말 타파씨의 말이다. 이미 1990년 1차 민주화 항쟁을 통해 얻었던 권리들을 무력과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에 의해 빼앗겼던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네팔 국민들이다. 이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또한 그들이 원하는 진정한 평화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 이상 그들의 미래를 누군가에게 방기하지 않고, 스스로 지혜 있는 대처를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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