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 옮겨진 기사는 게시판이 출처?

<주간조선>의 <일다>기사 ‘도용’

정희원 | 기사입력 2006/07/18 [23:58]

게시판에 옮겨진 기사는 게시판이 출처?

<주간조선>의 <일다>기사 ‘도용’

정희원 | 입력 : 2006/07/18 [23:58]
원칙적으로는 타 저작물을 발췌할 경우 당사자간에 직접적인 허가, 계약이 있어야 한다. 현행 저작권법이 비합리적인 면이 있으며, 직접 계약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으므로 ‘출처를 밝히자’는 기본선만큼은 모두 지키고 있다. 현재는 블로거 등 인터넷 이용자들도 온라인 뉴스컨텐츠를 재개재할 때 ‘원문링크’ 규정을 지키는 등 출처를 보다 확실히 밝히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원저작물을 임의로 도용하는 표절 관행은 여전히 우려되는 수위다. 특히 뉴스를 보도하는 매체들이 다른 매체의 컨텐츠들을 ‘활용’할 경우, 이는 해당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한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므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보도에서의 인용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책임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음은 <주간조선> 2006년 7월 11자 “당신의 부인이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다면” 제하의 기사 일부다.

“지난 5월 17일 ‘프린세스 월드’ 게시판에 올라온 ‘성별규정, 강간죄 규정 틀 바꿔야’라는 글은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을 성폭행한 자에 대해,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째 숫자가 ‘1’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를 적용해 입건했다는 사건보도를 접했다”며 “피해자가 강간을 당했고 가해자가 강간을 했는데, 법의 집행과정을 거친 결과는 강간죄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현실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쓴이는 “트랜스젠더의 호적 정정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문제가 있고, 우리 형법이 강간죄를 ‘성기 삽입’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으며, 강간죄의 대상을 ‘부녀’로 상정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당신의 부인이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다면’, 주간조선 2006년 7월 11일자)


<주간조선>이 “‘프린세스 월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라고 한 것은 다름 아닌 <일다> 2006년 2월 7일자 조이여울 편집장이 쓴 “성별규정, 강간죄 규정 틀 바꿔야” 제하의 편집장칼럼이다. 그런데 <주간조선>의 기사는 많은 부분을 할애해 일다의 편집장칼럼 내용을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처를 밝히기는커녕, 한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네티즌이 쓴 글을 인용한 것처럼 둔갑시켰다.

“성확정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을 ‘성폭행’한 자에 대해,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째 숫자가 ‘1’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강간죄가 아닌 강제 추행죄를 적용해 입건했다는 사건보도를 접했습니다. 지난 1995년에도 성확정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법원은 이를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로 판결한 바 있습니다.

피해자가 강간을 당했고 가해자가 강간을 했는데, 법의 집행과정을 거친 결과는 강간죄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현실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얽혀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호적정정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문제가 있고, 우리 형법이 ‘강간죄’를 성기 삽입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으며, ‘강간죄’의 대상을 ‘부녀’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 또한 문제입니다.” (‘성별규정, 강간죄 규정 틀 바꿔야’, 일다 2006년 2월 8일자)


<주간조선> 기사에서 언급된 ‘프린세스 월드’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면, <트랜스젠더 이슈>라는 란에 일다를 비롯한 각 언론사들의 트랜스젠더 관련 뉴스들이 클리핑되어 게재되어 있다. 즉 <트랜스젠더 이슈>란은 <주간조선> 기사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자유게시판이나 토론게시판이 아니라, 해당 사이트 관계자가 트랜스젠더 관련 뉴스와 이슈를 선별해 모아놓는 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간조선>은 여러 언론 기사 중 <일다> 기사를 사용하면서도, “5월 17일 ‘프린세스 월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또한, 언론사 기사들을 올려놓은 <트랜스젠더 이슈> 란의 5월 17일자 해당 게시물에는 <일다> 기사 내용과 함께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라는 경고문, 그리고 “Copyrights ⓒwww.ildaro.com”이라는 ‘출처’와 <일다> 사이트 주소가 정확히 명시돼있다.

따라서 <주간조선> 기자가 해당 기사의 출처를 몰랐다거나, ‘프린세스 월드’의 회원이 올린 글이라고 오해해서 생긴 문제는 분명히 아닌 것이다. <주간조선> 기자가 <일다> 기사를 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언론의 표절과 도용 관행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암묵적인 표절로 인해 해당 언론이나 기사의 취지는 타의로 훼손될 수 있으며, 이는 저작인격권을 포함한 심각한 권리침해다.

뉴스컨텐츠 정보 공유도 신뢰에 기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여러 관점을 다루기 위한 분석적인 보도도 마찬가지다. 저작권자가 자신의 저작물이 어디서 어떻게 인용하는지에 있어 무방비로 노출되고,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변형되거나 도용되어 게재된다면 문제가 있다. 지적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의 허술한 규정들도 문제지만, 이와 맞물린 전체적인 불신 속에서는 장기적으로 공적인 정보의 질 자체가 저하될 것이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나, 언론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 그리고 저작권과 표절에 대한 개념을 상실해버린 <주간조선>의 보도에 대해 <일다>측이 정정보도를 요구하자,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정정보도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관계는 맞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아직 <주간조선> 차원의 입장이나 대응은 나오지 않은 상태라 지켜보아야 할 일이지만, 이러한 사례와 같이 언론이 타 매체의 공들인 기사를 도용하는 한 매체환경의 신뢰를 쌓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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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 2006/07/22 [14:53] 수정 | 삭제
  • 정말 언론인으로서 기본 윤리도 없군요. 그런 식으로 슬쩍 기사나 훔치고 말이죠. 참 어이가 없습니다.
  • 바다 2006/07/21 [15:48] 수정 | 삭제
  • 어쩐지 조선일보 쪽으로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큰 언론일수록 타 언론 기사에서 따가지고 오면서도 출처를 밝히는 걸 꺼려한다는데 (그게 무슨 심보인지--) 게시판에서 봤다는 식으루 인용하는 싸가지는 조선 특허일 듯함.
  • H 2006/07/20 [14:26] 수정 | 삭제
  • 한다는 짓이 참.. 끌끌...
  • .... 2006/07/19 [14:20] 수정 | 삭제
  • 가장 악의적인 도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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