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역군인들, 무지개 깃발 찢다

차이의 거부냐, 차이의 포용이냐

황보신 | 기사입력 2003/06/19 [11:15]

퇴역군인들, 무지개 깃발 찢다

차이의 거부냐, 차이의 포용이냐

황보신 | 입력 : 2003/06/19 [11:15]
다르다는 것이 그토록 두렵고 불쾌한 일일까? 다르기에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미국 레이크우드시에서 퇴역군인들이 보여줬던 차이에 대한 원색적인 거부의 몸짓에 시당국은 차이의 미학으로 응수했다.

미국 레이크우드시 무지개 깃발의 수난

‘게이컴’의 6월 17일자 기사에 의하면, 미국 오하이오주 레이크우드시의 시청사에서 펄럭이던 무지개 깃발이 지난 월요일 퇴역군인들의 손에 의해 갈갈이 찢기는 수난을 겪었다. 이 무지개 깃발 게양은 시의회의 찬반투표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었다. 게이 프라이드(Gay Pride) 축제기간 동안 함께 축하하며 시청사에 무지개 깃발을 게양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결정에 불만을 품은 퇴역군인들은 깃발을 찢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퇴역군인들의 깃발과 무지개 깃발을 같은 자리에 게양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 목숨 건 군인들을 모욕하는 행위’라며 반발한 것이다. 그러나 시에서는 원래 결정한 대로 행사기간 동안 무지개 깃발을 다른 곳에 옮기지 않고 같은 자리에 계속 게양할 것임을 밝혔다.

서로의 차이를 거부하며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배제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서로의 차이를 포용해 평화적 공존을 희망하는 사람들 사이의 끝없는 싸움은 비단 먼 이국 땅에서 벌어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차이의 갈등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비록 이 땅에서 성소수자가 겪는 차이의 갈등이 아직 완전히 표면화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차이들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번 해프닝을 관통해서 주목하게 되는 점은 사건 자체, 즉 퇴역군인들의 호모포비아적인 집단행동과 차이에 대한 부정적 행위보다는 레이크우드 시가 내린 결정이다. 무지개 깃발을 시청사에 게양하기로 한 시의 결정은 차이의 포용, 다양성의 공존을 위한 ‘공적 차원’에서의 상징적 노력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마들린 케인 시장은 말한다. “여러분이 무지개 깃발을 바라볼 때 사람들이 다르다는 메시지를 읽게 되며, 이 차이들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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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금 2003/06/20 [02:14] 수정 | 삭제
  • 퇴역군인들의 깃발과 무지개 깃발을 같은 자리에 게양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 목숨 건 군인들을 모욕하는 행위’라며 반발한 것이다.

    아니, 왜!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흥미롭다. 전쟁을 원하는 자는 분명히 반동성애자야!
  • 보리 2003/06/19 [19:06] 수정 | 삭제
  • 부럽군요.
    며칠 뒤에 한국에서도 퀴어축제를 하는데..
  • 차이 2003/06/19 [13:03] 수정 | 삭제
  • '차이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포용하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부끄럽게도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폭력이
    이렇게까지
    심한지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좋은 기사 계속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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