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독립은 실현가능한 꿈인가

강진영 | 기사입력 2003/06/23 [03:39]

[취재수첩] 독립은 실현가능한 꿈인가

강진영 | 입력 : 2003/06/23 [03:39]
독립? 독립은 내게 아직도 멀리 있는,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다. 일단 경제력이 없다 보니 말 그대로 독립을 ‘꿈꿀 뿐’이다. 우리 나라의 대부분 여성들이 독립을 원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지만 독립에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장애여성의 독립에 대해 기사를 쓰면서 독립이란 것에 대해, 여성들의 독립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됐다. 비장애여성들에게도 독립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비혼 상태의 딸이 독립하겠다고 하면 순순히 ‘내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결혼할 때까지 잘 보호해두었다가 ‘시집에 무사히 넘겨주려는’ 생각을 한다. 지금 편안히 살고 있는데 굳이 따로 나가서 좋을 게 뭐가 있냐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여성들의 독립은 지연되거나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모들의 ‘허락’을 얻는다 해도 독립을 하기 위한 실질적인 ‘능력’을 갖추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노동현장에서 여성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어느 세월에 돈 모아서 독립하나 싶다.

‘혼자 사는 여자의 집’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아파트는 위험이 조금 덜 하겠다 싶지만 아파트를 마련할 만큼의 돈을 모으기란 매우 어렵다. 혼자 사는 여자를 대하는 주변의 시선도 뭔가 불편하다.

장애여성들이 가지는 독립의 어려움은 비장애여성이 가지는 것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론 또 다르다. 장애여성들의 삶이 진행되는 속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북이 시스터즈>의 ‘이사 이야기’는 이러한 장애여성들의 삶의 속도를 잘 보여준다. 난 얼마 전에 책상 주변과 책꽂이, 서랍 등을 완전히 새로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고, 3일에 걸쳐 그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거북이 시스터즈>에서는 집에 다시 들여온 물건들을 제자리로 옮기는데 만도 1년이 넘게 걸릴 거라고 한다.

장애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집에서만 지내는 경우가 많아서 가족들 외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시기가 늦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곧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중에 집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이동의 어려움에 부딪친다. 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의 언어적·신체적 폭력에 시달리기 일쑤다. 교육권과 이동권에서의 배제와 그 외의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일자리를 얻는 것도 하늘에 별 따기다.

비장애여성은 특별한 경우를 제하고는, 아무리 늦어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또래들과 어울리게 되고, 여러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장애여성들은 집 밖의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한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해봤을 때, 장애여성이 독립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이며, ‘독립할 결심’을 해서 그것을 준비해나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짐작을 하게 된다.

여성들에게 독립이란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지향하는 목표점에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또 혼자서 이리저리 노력한다고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문제는 언제쯤 실마리가 풀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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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됨 2003/06/23 [23:17] 수정 | 삭제
  • 장애여성의 일상과, 비장애여성으로서 나의 일상과, 독립에 대해,
    여러가지로 살펴보게 해주는 기사였어요.

    우리 부모님도 결혼하기 전에 딸이 나가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시는 분이죠.
    어떻게 도망쳐야하나 몇년째 고민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부모님 마음 아프게 해드리고 싶진 않은데..
    실현가능하지 않은 꿈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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