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밀리터리룩 바람

군복의 이미지를 입는다는 것

박희정 | 기사입력 2003/07/01 [20:34]

다시 부는 밀리터리룩 바람

군복의 이미지를 입는다는 것

박희정 | 입력 : 2003/07/01 [20:34]
올해의 주요 패션테마로 꼽히는 ‘밀리터리룩’, 미국이 일으킨 대 이라크전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해지지만, 동시에 패션사에서 ‘밀리터리룩’은 큰 전쟁과 상관없이 3~5년 주기로 유행을 반복해 오고 있는 익숙한 테마다.

전쟁과 밀리터리룩의 유행

서구 복식사에서 ‘밀리터리룩’의 시작은 1, 2차 세계대전과 함께한다. 이 시기의 밀리터리룩은 ‘기능성’에 집중된다. 모든 물자는 군수품에 우선 조달되었고, 언제 긴박한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옷은 ‘움직이기 편해야’ 한다는 1차적 기능에 충실해야 했다. 동시에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일상적인 의복은 군복의 모습을 따라가게 되었다.

치마를 입던 여성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모자라는 옷감 때문에 치마의 길이도 짧아졌으며 장식적인 부분도 배제되었다. 테일러드 칼라(남성정장에 흔히 쓰이는 칼라 모양을 생각하시라), 각진 어깨, 포켓, 견장, 베레모 등이 기존의 ‘여성스러운’ 장식을 대체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 전쟁은 국지전으로 전개되어 왔다.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전쟁은 ‘특별한 뉴스’가 되었다. 크던, 작던 ‘지구촌’의 사람들은 전쟁의 직, 간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인다. 그러나 동시에 전쟁의 ‘잔혹함’ 혹은 ‘끔찍함’으로부터 한발 짝 멀리 떨어져 지켜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틈에서 ‘전쟁’이 아닌 ‘전쟁(의 이미지)’를 입는 밀리터리룩의 유행이 고개를 디민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옷의 유행’은 수용자보다는 만들어 파는 사람들에 의해 이끌리는 측면이 강하다. 올 여름에 유행 스타일은 이미 작년에 컬렉션을 통해 발표되고, 색채(color)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결정된다. 물론 디자이너들이 준비한 모든 스타일들이 대중적으로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 선택이라는 것도 이미 주어진 것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전쟁은 혹여 표면적으로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의 시선도 집중시키는 특별한 사건이다. 그 속에서 군복은 전쟁이 가지는 ‘힘’의 논리의 시각적 집합체이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관심은 군복패션으로 치환되기 쉽다. 이목이 집중되는 곳엔 돈이 몰린다. 관심이 집중되는 이미지를 디자이너들이 넋 놓고 바라보겠는가.

1970년대 베트남전, 1990년대 걸프전을 통해 전쟁이 있을 때 밀리터리 이미지가 잘 팔린다는 사실을 체감한 그들은 이제 의례히 커다란 전쟁이 있으면 밀리터리룩을 준비한다. 이라크전이 끝나고는 밀리터리에 덧붙여 하렘룩이 등장했다. 이른 바 아랍패션이다.

밀리터리든 하렘이든, 그 이미지를 사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놀이’다. 이야깃거리의 한 복판에 서 있고 싶은 욕망이건, 강력한 대상에 자신을 투사시키고 싶어하는 것이든 자신을 전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고 여기고 있기에 가능한 행위이다. 그 속에는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집단적 살인행위도,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힘 없는 이라크 민간인들의 모습도 끼어들 틈이 없다.

밀리터리룩 마니아-힘에 대한 동경

일시적인 밀리터리의 유행과 다르게 일상적으로 밀리터리룩에 대한 선호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유행패션으로서의 밀리터리룩이 아니라 ‘밀리터리’룩 자체에 대한 지속적인 선호이다. 이러한 밀리터리룩 마니아들은 군대 혹은 군사문화와 좀 더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밀리터리룩 매니아들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의 메뉴가 군대 관련 용어로 장식되어 있다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군복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옷을 걸치는 것이 아니라 ‘군복의 이미지’를 입는 것이다. 군복은 캐릭터가 강한 옷이다. 그것은 군대 혹은 전쟁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이미지에서 기인한다. 군복이 가지는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는 ‘힘’이다. 남성적(육체적) 힘, 강함이다. 그래서 강해 보이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밀리터리룩을 입는다. 반대로 그 강함에 기대어 역으로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 입기도 한다.

2001년 미국에 몰아 닥친 거의 광적이랄 수 있는 밀리터리룩 유행(침대보, 커튼, 화장지에까지 군복 무늬가 쓰일 정도였다)의 원인을 경기침체에서 찾는 것도 밀리터리룩이 ‘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밀리터리룩 마니아들은 군복을 응용한 패션이 아닌 ‘군복’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다. 군수품을 구해서 입거나 밀리터리 동영상, 서바이벌 게임을 통한 ‘전쟁놀이’를 즐긴다. 이들이 군복에서 찾는 것은 결국 힘이고, 터프함이며, 권위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약함은 곧 죽음과 동의어이다.’ 그것이 바로 전쟁 안에 내포된 힘의 논리이며, 밀리터리에 대한 선호는 이러한 힘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다.

그리 멀지 않은 전쟁과 군사 독재의 경험. 징병제… 이를 통해 군사문화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밀리터리룩에 대한 선호나 유행이 특히 위험하게 보이는 것은 일상화된 군사문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힘의 논리에 사회가 젖어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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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아유 2003/07/02 [21:52] 수정 | 삭제
  • 하렘이군요.
    많이들 걸치고 다니는 이슬람 분위기의 패션이요.
    밀리터리룩도 그렇고 패션은 놀이고 마케팅이고.
    이미지란 거 무섭죠.
    그들이 선택한 것들 중에서만 선택권이 있다는 거 실감합니다.
    저두 기사 재밌게 보았어요.
  • 시원한바람 2003/07/01 [21:54] 수정 | 삭제
  • 패션에 얽힌 얘기들은 언제 봐도 재밌어요.
    밀리터리룩의 유행과 관련된 역사를 함께 보여주셔서 더 좋았습니다.
  • 하나 2003/07/01 [21:27] 수정 | 삭제
  • 다른 곳에서 잘 볼 수 없는 글이네요.

    앞으로도 알찬 기사 계속 써주세요.
    이왕이면 패션 기사를 씨리즈로 써주시면 어떨까요?
    글 또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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