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맞아야 폭력?

은폐되는 직장 내 폭력 -1

김창연 | 기사입력 2003/07/06 [23:45]

죽도록 맞아야 폭력?

은폐되는 직장 내 폭력 -1

김창연 | 입력 : 2003/07/06 [23:45]
<직장내 성희롱뿐 아니라 폭언, 폭력도 고용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다. 그럼에도 직장에서의 폭언, 폭력은 일상화되어 있으며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고 있다. 직장내 폭력을 구조적인 문제로 보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많은 경우 폭력이 은폐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무엇이 폭력인가

“폭언, 폭행하고는 상관이 없는데 예를 들어서 종이를, 우리는 그러니까 부품을 판매하면 영수증을 이 쪽에 경리 수납하는 여직원한테 주거든요? 이렇게 던진다고 그래야 되나? 종이를. 그런 경우도 있었고. 후배가 그걸 던지지 말라고 얘기를 했더니 어린 게 싸가지 없다고 그런 얘기를 했었대요.”(A씨)

A씨가 말하는 ‘영수증을 던지듯 전달하는 행위’는 그 의도야 어찌 되었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쁘고 모욕적일 수 있는 경험이다. 여직원이 던지지 말라고 얘기했다는 것 역시 그 행위가 그녀에게 불쾌한 행위였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는 명확히 폭력이다. 그러나 A씨는 이를 ‘폭언, 폭행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이 폭력의 정도에 있어 약하기 때문에 그것을 폭력이라고 명명하는데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심하게 당한 거나 그런 게 아니라 점점 축적이 된 것’이기 때문에 ‘아주 너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여기서 ‘심하게 당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 즉 정말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욕설을 듣거나 물리적 폭력(폭행)을 당한 경우이다. 이는 폭력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한정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직장 상사로부터 폭언을 들었던 B씨 역시 자신의 경험을 폭력적인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헷갈려 하고 있다.

“근데 이런 걸 말하는 것 자체가 헷갈려요. 폭력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도 있고... 저도 좋게 말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터프하게 나오면 상대방이 폭력적으로 나오면 그 사람이 폭력적인 거죠? 나보다 나이가 어리더라도.”(B씨)

이와 같은 폭력에 대한 관대함 혹은 폭력을 폭력이라고 말하기 주저하는 것의 문제는 단지 피해 경험자의 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오랜 독재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국가에 의해 폭력이 자행되었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윗사람에 대한 공경이 당연한 미덕이자 의무로 받아들여지는 유교문화 속에서, 연장자가 그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은 나이를 매개로 한 폭력으로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일종의 ‘훈육’으로 읽혀지는 경향이 팽배하다. 이런 역사적, 사회적 분위기는 ‘폭력’이 무엇인가에 대해 상당히 둔감하도록 만들어 왔으며, 또한 어떠한 언행이 ‘폭력’인가, 아닌가의 판단에 있어 유보적인 태도를 형성해 왔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폭력을 폭력으로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직장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반말 등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여성들이 이를 폭언이나 폭력적인 어떤 것으로서 받아들이기보다는 관습처럼 여기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직장 내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어떠한 언행들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을 경우, 이를 폭력으로서 인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피해 경험자가 어떤 언행을 일단 폭력적인 것으로서 인식할지라도 직장 내에서 그것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무시될 경우, 그러한 언행에 대해 폭력이라고 끝까지 주장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는 악순환을 낳는데, 즉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어떤 언행들을 폭력으로서 이름 짓지 못함에 따라 그러한 언행들이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명명(naming), 해결책의 출발

페미니즘 혹은 여성학의 역사는 명명(naming)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문제시되지 않았던 성차별, 남성권력, 가부장제 등에 이름을 부여하면서 그것이 여성에게 가하는 통제와 억압을 규명해 왔기 때문이다. 명명의 문제, 명명의 힘에 대한 중요성은 직장 내 폭력의 문제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사실 주관적인 개념이며 구성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면 그것에 대한 인식은 만들어질 수 없다.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인 함의가 담긴 말을 하거나 함부로 몸에 손을 대는 등의 행위에 대해 ‘성희롱’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다면 성희롱이나 성폭력 논의가 지금처럼 축적될 수 없었을 것이며 위법한 행위로서 규제되는 결과 또한 낳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언어는 인식을 만들어내며 또한 인식의 한계를 깬다. 이와 같은 명명의 과정이 없다면 문제는 존재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때의 이름이란 단순히 어떠한 언행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성희롱’이라는 이름은 소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함의를 담고 있는 개념이다. 즉 그 이름 안에는 그것이 성별권력관계에 의한 구조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으로서의 이름이 존재하기에 이에 대한 제도적인 규제와 예방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는 직장 내 폭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직장 내 폭력이 구조적인 맥락을 갖는 문제이며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차별이라는 의미를 갖지 않는 한 이는 적절하고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질 수 없다. 직장 내 폭력을 정확하게 의미화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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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다 2003/07/11 [22:06] 수정 | 삭제
  • 몇년전에 직장 여성들을 만나면서 직장폭력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고 일반화 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적이 있었지요.
    사실 차근 생각해보면 이 사회 곳곳에 폭력이 일상화 되어 있으니 가정이든 회사이든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일 진대 '가정폭력'은 머릿속에 강하게 인지하고 있으면서 직장관련해서는 '직장내성희롱'만 인지하고 있었어요.
    (뭐 폭력이 젠더와 광범위하게 얽혀있으니 넓게보면 성폭력으로 개념지을수도 있지만.. 암튼 네이밍의 중요성..)
    암튼 저도 '직장폭력'이란 말을 '가정폭력'이나 '직장내성희롱'이란 말처럼 일반화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작년즈음에 글을 끄적이기도 했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파일 어디에 두었던게 이제야 기억이 나네요. 일다에서 이렇게 직장폭력 글을 만나니 반갑네요.
    직장폭력에 대해서도 사례제시로 개념도 구체적으로 형성하고, 대응방안도 구체화 시켜야 할것 같아요.
    일종의 직장폭력 메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거죠.
    흐음.. 다음 글 기대할께요. '0'
  • 홍길동 2003/07/07 [18:59] 수정 | 삭제
  • 폭력을 폭력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자꾸만 예의니 관습이니 관례니
    하는 말들로 바꾸어 부르라 하시니
    차라리 저 이제 애비를 애비라 부르지 않겠사옵니다.
  • 찌르라기 2003/07/07 [16:18] 수정 | 삭제
  • 기사에서 터프하게 말한다는 얘기 나왔잖아요.
    남자랑 여자는 말투부터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여자는 부드럽고 공손하게 말하고 남자는 딱딱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안 그런 사람도 많지만요.
    여자상사는 아무리 기분나쁘게 굴어도 남자상사만큼 무례하지 않거든요.
    그 말투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야, ****못해?" 이런 말을 부하직원에게 하는 남자들도 있거든요.
    여자가 그런 말 하면 사람들이 성질 더럽다고 이상하게 볼거예요.
    근데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고 봐주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소리 듣고 직장생활 해보세요.
    얼마나 기분 나쁜데요.
  • Doll 2003/07/07 [00:34] 수정 | 삭제
  • 때리지 않는다 해도 소리 버럭버럭 질러대면서 사람 무시하면요. 남자들 그런 사람들 많아요. 모욕감도 느껴지고 무섭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회사 가기 싫어지죠. 여직원들은 재수없는 상사만났구나 하고 포기하는데요. 일대일로 상대해야 하는 경우는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예의가 없어요. 아랫사람들 막대하는 게 자기들 특권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봐요. 윽박지르는 것에 질렸어요. 그 사람 한 명 때문에 직원들이 회사가 싫어진다면 그 사람이 나가야 맞는데 직장은 그 반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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