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에서 350만. 국제 구호단체와 '좋은벗들'이 북한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추산한 숫자다. 북한인구의 거의 15%에 달한다. 인류 역사상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의 굶주림과 비인간적인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한 인권침해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어린이와 여성들의 굶주림에 대해서는 얘기해도 북한의 여성과 아동, 소수자들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언론도 시민운동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 확인이 어려워서 그렇다 한다. 300만이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탈북자의 증언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사실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우리의 무관심과 외면은 어쩌면 그 실상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의 경험으로는 믿기 어렵거나, 아니면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가족 먹여살리려고 두만강 건너는 여성들 좋은벗들 자료에 의하면, 1999년 6월 현재 연변 지역 및 중국 동북부 지역 3개 성에 분포되어 있는 북한에서 온 식량 난민들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식량난민 가운데 여성이 75.5%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동북 3개성에서의 난민 가운데 90.9%가 여성이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조순경 교수(이화여대)는 "식량난 속에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짐이 여성에게 우선적으로 지워져 있다. 여성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원거리 여행을 해야 하고, 그 여행길에서 죽거나, (성)폭행과 강도, 절도의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제농업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1995년 이후 북한은 매년 130만-230만톤의 식량이 부족, 식량 공급량은 최저 수요량의 1/2-2/3 수준 정도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노인과 장애인들. 좋은벗들 조사에 의하면 6세 이하 유아 및 어린이 사망률은 49%에 달한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수백만이 죽어가고, 잘 곳도 먹을 것도 없는 수많는 아이들이 거리에서 떠돌고, 수십만의 여성이 단지 먹기 위해 원하지 않는 남성에게 팔려나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국경을 넘은 여성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때로부터 정착하여 발 붙일 곳 없는 나로서는 그 누가 밥 한끼 주며는, 그 누가 하룻밤 잘 곳을 마련해 주며는 무작정 그 사람한테 몸을 바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를 배게 되었는데 누가 애 아버지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자 혼자서, 그것도 잘 곳도 없는 내가 무슨 방도로 애를 낳고 살아가겠습니까” (26세 여성, 함북 온성군 삼봉. 좋은 벗들 자료) "중국에 가 시집가서 제 집을 도와 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친구 둘과 함께 중국으로 넘어왔다. 지금 우리들은 한 음식점에서 아가씨질하고 있다. 후에 우연히 우리 셋이 한 사람에 2천원에 팔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상에서 손님들과도 같이 술을 마셔야 하며 한 상에서 20원씩 팁을 받고 한 자리에 들면 50원씩도 받는다. 제 조국 버리고 타국 땅에서 기실 매음녀 생활을 하니 어떤 때는 자다가도 꿈틀 하며 내가 왜 이래야만 되는가 하면서 눈물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26세 여자 함경북도 청진시. 좋은 벗들, 두만강을 건너 온 사람들 , 1999. 24쪽) 그러나 이 여성들은 다시 ‘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폭력의 대상이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중국에 팔려 나갔다 붙잡혀 송환된 여성은 “다른 나라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비난 받고, 폭행을 당하고, 강제 낙태를 당한다. 일상적으로 거래되는 여성의 몸 지난 6월 18일 민주평통 북한연구회와 좋은벗들이 공동 주최한 심포지움, <북한여성의 삶, 꿈, 한>에서 좋은 벗들의 노옥재 사무국장은 식량난의 와중에서 북한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역할을 떠맡고 있다고 하면서 현재 북한여성들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극단적인” 상태에 있으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여성인권 침해” 상황에 있다고 전하고 있다. 노옥재씨는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회에서 끼니와 바꾸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거래된다”고 하면서 북한에서 '생존형 성매매'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고, 얼굴도 모르는 중국 남성에게 팔려나가고 하는 것뿐 아니라, 북한 내에서도 일상적으로 여성의 몸이 끼니를 잇는 수단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할 수 밖에 없는 ‘생존형 성매매’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식량난이 가장 심했다고 하는 1998년-99년도에 북한 여러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던 권혁씨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가을 농촌에서... 밤에는 도둑을 지켜야 할 군인이 식량을 채고, 낮에는 밭을 지키는 농민들이 돌아가면서 강냉이를 채고... 시내에서 농촌으로 장사하러 온 여자들이나 처녀들도 가을철을 놓치지 않고 자기들의 솜씨를 발휘했다 한다. 그 솜씨란 밤에 경비를 서는 군인들에게 몸을 주거나 또 처녀들인 경우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몸을 주고 그 대가로 식량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고난의 강행군, 136쪽) 권혁씨는 또한 평양에서 만난 한 여대생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여대생은 공부하자면 배가 고파서 머리에 글이 들어가지 않고, 먹을 생각만 나고 눈 앞에 음식이 아물거리기 때문에 머리에 글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돈 많은 부잣집 자식들이 돈을 흔들면서 매일 식당에 데리고 가서 먹여주고는 그 대가로 몸을 요구하는데, 연약한 여자들은 먹을 것이 생기니 할 수 없이 몸을 준다”는 것이다. “하루는 어머님께서 저를 불러 놓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헤매며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바뿌니 인제는 방법이 없다.” 나는 처음에 달통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어머님의 그 말씀을 생각하니 옳았습니다. 하여 나는 어머님과 약속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가서 소개하는 사람에게서 돈 1만원을 받고 저를 팔은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제 자식을 타국에 팔겠습니까? 나는 그 심정을 리해합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나를 떠나 보내면서 하시는 말씀이 집 근심은 하지 말고 너 하나만 가서 잘 살아라 하시고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모녀는 이렇게 눈물로 작별하였습니다“ (24세 여자 함경북도 회령시. 좋은벗들, 북한 식량 난민의 실태 및 인권 보고서. 1999. 14쪽) 식량난으로 인해 생존형 범죄와 그들에 대한 처벌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또한 일차적 대상이 되고 있다. “공개처형은 11시에 시작되었다.... 처형 대상들은 역전동 5반에 사는 61살 된 할머니와 동명동에 사는 58살된 아주머니, 유선에 사는 37살 남자였다. 61살된 할머니 죄목은 중국돈 4,500원 받고 중국에 여자 5, 6명을 팔아 먹은 것이다. 58살된 아주머니의 죄목은 조선돈 800원을 받고 61살된 할머니에게 여자를 소개시켜 준 것이다. 37살 남자의 죄목은 중국돈 400원 받고 여자 2명을 중국에 판 것이었다.”(권혁, 고난의 강행군, 261쪽) 식량난 속에서 모성과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 미화되고 있다. 30%에도 못 미치는 낮은 공장 가동율과 경제위기 상황에서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강요받고 있으며, 전통적 여성상과 성역할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1999년도 [조선여성]에 따르면,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무겁고도 중요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1997년 7월 30일자 [로동신문] 사설은, “녀성들은 창조적 로동으로 부강한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에 나라의 꽃이며, 가정의 화목과 사회의 단합을 이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사회의 꽃"임을 강조하고 있다. 조순경 교수(이화여대)는 심포지움에서 이러한 모성을 미화하는 움직임이 식량난으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 교육자체가 가능하지 않게 되고, 학교와 집을 이탈하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북한의 식량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식량난과 맞물린 북한여성들의 인권 상황이 어떠한 조건에서 개선될 것인가. 남한에서는 ‘자주 국방’의 이름으로, 북한에서는 ‘선군정치’라는 이름아래 군비증강과 군사주의의 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특히 북한여성의 굶주림과 인권에 대한 발언이 그들을 위한 ‘해방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남한여성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나 그렇다고 피해 갈 수 있는 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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